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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삽질을 이제 그만 멈추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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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2라운드가 시작됐다. 17개월 동안 5억m3 가량의 준설, 16개 보 공사의 공정률 80%대 달성이라는 신기록을 세운데 이어 20조원대의 4대강 지류사업이 세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급기야는 4대강 주변지역의 난개발을 촉진할 친수구역특별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22조원의 4대강 사업은 20조원의 지천사업, 그리고 최소규모 600조원(8조원의 수자원공사 선투자 사업비 회수가능 사업규모로 추산된 금액, 강기갑의원 송산그린시티 분석자료 인용)의 친수도시개발사업비를 합쳐 총규모 642조원대의 천문학적 사업이 되었다. 정부가 4대강 사업과 비용을 처음 내놨을 때 수십조원을 넘어 수백조원에 이르게 될 것이라던 시민사회의 우려는 기우가 아니었던 것이다.

 

재정규모를 뭐 그렇게까지 과장할 게 있느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규모 국책사업의 구조를 아는 사람은 헛된 주장이 아님을 알 것이다. 본류사업비와 지천사업비는 줄어들 수 없는 비용이다. 사업비에 포함돼있지 않은 유지관리비에 지류사업비까지 포함하면 재정규모는 예상보다 훨씬 커진다. 게다가 수공이 선투자한 사업비는 개발이익으로 확보되지 않으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의 주머니로 돌아온다. 그러니 4대강 사업비의 기하급수적 증가는 곧 우리 국민의 책임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4대강사업에서 비롯된 국민의 책임은 또 있다. 바로 통제불능의 속도로 진행되는 4대강 사업으로 인하여 희생된 사람들의 죽음에 답할 책임이다. 2009년 11월 4대강 공사가 시작된 이래 2011년 4월까지 4대강 공사장에서 사망한 노동자와 4대강 사업과 연관해 목숨을 잃은 국민은 모두 30명이다. 2012년 정권재창출을 위해 올해 말까지 완공을 목표로 공사를 채근하는 정부와 대통령 때문에 시공사도 정부도 공사장의 안전관리는 뒷전이었다. 때문에 달리는 공사차량에 운전자가 치여 죽고, 준설중인 굴삭기와 준설선에서 노동자가 물에 빠져 죽었다. 공도교에서 떨어진 거푸집에 맞아 죽고 덜 마른 발전소지붕이 무너져 내려 죽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4일간 4명의 노동자가 공사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는데 4대강 사업은 공사중단은 커녕 친수구역개발사업으로 규모와 영역이 훨씬 커졌다. 그러나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대통령과 정부는 그 흔한 애도의 말 한마디 없다. 오히려 일이 더 커질까 쉬쉬하는 모양새다. 교통사고도, 익사도, 추락도 조심하지 않은 개인탓이라 한다. 어찌 이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 탐욕스러울 수 있을까?

 

정부가 4대강 사업을 통해 해결하고 싶었던 것은 물 부족과 홍수예방, 수질개선, 그리고 과도한 개발로 황폐화된 하천생태계의 복원과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은 16개의 보와 준설로 4대강 본류의 수질을 악화시켰고 침수지역을 지천까지 넓혔다. 강물은 탁수와 함께 녹조로 속이 보이지 않는다. 생물 종은 절반으로 줄었고, 4대강사업이 올려놓은 땅값은 지역주민이 아닌 외지인에게 대부분 돌아갔다. 그 사이 강변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 4대강 공사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는 생존기반을 잃었고, 쌓이는 피로와 허술한 안전조치 때문에 죽어갔다.

 

사업의 목적과 결과가 너무 다르고 잘못된 사업 때문에 치러야할 댓가가 너무도 크다. 법조인들은 이 불일치를 소송을 통해 바로잡겠다 하고, 정치권은 선거로 바로잡겠다 한다. 그러면 4대강 사업강행을 보고만 있었던 국민은 어떡해야 하나? 잘못된 방향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4대강 사업, 최근 4개월 동안 11명의 목숨을 앗아간 4대강 사업, 지천사업까지 더 커질 4대강 죽음의 행렬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온정신이라면 멈추라 해야 한다. 사태가 이 지경이면 노동자의 가족이, 시민사회가 그리고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국민의 안전과 생존을 지켜야할 정부에 책임을 엄중히 물어 공사를 중단하고 잘못된 부분을 고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도 4대강 현장에선 광기어린 공사가 한창이다. 공기를 맞추라는 독촉과 시행사들의 경쟁에 떠밀려 깊은 밤에도 사지로 내몰리는 노동자가 있다. 그는 내 형제요 아버지이며 아들이다.

 

(이 글은 4월 22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기고의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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