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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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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에서 시작되는 저자의 서술은 상식에 의한 상식의 파괴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상식이 파괴될 때의 당혹감과 거부감이 없다.

 저자의 상식 파괴의 서술은 언어학적 논리에서 시작하지만 역사적 실증을 거쳐 새로운 명제로 마무리되곤 한다.

 이번 책읽기 모임에서는 지난 번에 이어 3장을 강독하고 토론했다.

3장, “자연이 남아있다면 더 발전할 수 있는가”

저자는 “발전”이란 단어에 대한 고찰에서 출발한다. 인류역사에서 발전이란 단어는 언제부터 지금과 같이 쓰였는가? 그리고 그 의미는 어떻게 변해왔는가?

“발전”이란 이데올로기는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자신을 다른 사회와 구별짓기 위해 태어났다. 미국은 자신은 “발전”한 국가이고 다른 사회, 특히 식민지에서 막 독립한 사회를 “미발전” 혹은 “미개발” 국가로 규정했다.

 하지만 “발전”이란 단어는 미국 외의 다른 사회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는 각 사회의 공통된 특성을 짚어내는 의미가 없다. 다만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제국주의 수탈과 다른 방식으로 다른 사회와 그 주민들을 수탈하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일뿐이다.

 이전까지 “발전”은 작은 싹이 울창한 나무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였다면 2차세계대전 후의 새로운 미제국주의는 나무가 책상이나 가구가 되는 것을 “발전”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사회, 예컨데 숲에서 살며 숲에서 자신들이 필요한 것들을 모두 얻고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이국인의 옷, 라디오, 안경, 나침반, 펜 등은 신기한 것일 수는 있어도 필요한 것은 아니었고 그것들을 얻기 위해 이국인들의 공장에 들어가 하루 여덟에서 열 시간씩 일할 필요를 느낄 수 없었다. 원주민들의 노동을 통한 잉여가치를 원했던 제국주의는 “발전” 이데올로기가 원주민들에게 먹혀들지 않자 숲을 태워 원주민들이 자신들이 가져 간 상품들을 필요로하게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사전의 페이지에서 “착취”와 “강제노동”이란 단어가 사라져 갔다. 더 이상 세상에 그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발전”국가의 “미발전”사회에 대한 문명의 보급만 역사적 기록으로 새겨진다.

 제국주의의 “발전”, “문명”, “세계화” 이데올로기는 세계를 휘저으며 제국주의 착취의 발자국을 따라다녔다. 그들의 말하는 “발전”과 “문명”의 본질은 “부(rich)”였는데 “부”의 어원은 “국왕”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착취의 대상인 신민이 있어야 “국왕”은 “국왕”일 수 있지 모두가 “국왕”이 된다면 모두가 “국왕”이 아닌 것과 다를 바 없다. 제국주의의 끝없는 탐욕의 대상인 “부”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는 부자가 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면서 첫째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고 둘째는 다른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제국주의의 “부”는 상대적 개념이며 권력이지 풍요가 아니기 때문에 모두가 많은 돈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모두가 풍요로운 것이 아니라 단지 인플레이션일뿐이며 제국주의가 발전한 문명 사회, 국가, 도시라고 가리키는 곳은 어김없이 사회 구성원 사이의 극심한 빈부 격차, 권력의 격차가 있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우리는 누군가 시장에 내놓은 컴퓨터, 자동차, 스마트폰이 없으면 살아가기 어렵도록 되어있는 사회에 내동댕이쳐져 그것들을 얻기 위해 하루 여덟 시간, 열 시간 공장과 직장에 얽매이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그런 것들을 필요로하고 갖고 싶어하게 됐는가? 그것이 정말 우리 스스로의 필요 때문이고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 왔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복원해야 할 숲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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