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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벌초의 변동에 관한 사회학적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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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력 8월 초하루는 벌초하는 날이다. 예전에는 이날을 위해 학교나 직장에서는 특별히 벌초 방학 또는 휴가가 있기도 하였다. 지금은 대부분 이 날을 앞 뒤로한 일요일에 모여서 벌초를 하러 간다. 따라서 벌초철에 공동묘지에 가면, 주차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나는 1983년 생으로 어린 시절부터 중.고등학교때 까지 제주에 살던 때에는 빠짐없이 벌초에 따라가곤 했다. 그러나 잠시 5년 간 육지에서 대학생활을 할 때는 뜨거운 여름을 보내느라 거의 가지 못했다.

  다시 제주로 내려와, 사회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벌초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특히 사회변동에 따라 벌초를 하는 행위도 바뀌어가고 있는 점이 눈에 띄었고, 또한 우리 집안의 모습에 대해서도 참여관찰을 통해 비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삼촌들 말씀에 의하면,  예전에는 벌초를 하러 가기 위해서는 아침일찍, 점심도시락을 챙긴 후, 걸어서 갔다고 한다. 곳곳에 묘자리가 분포되어 있어서 모든 친척이 함께 갈 수 없었기에, 몇몇 씩 무리를 지어주고, 갈라서 가곤 했다. 이런 과정에서 한 가지 에피소드도 있었다. 

  새벽녘 부터 출발해 막상 도착해보니, 무덤이 2개나 있어서, 어느 것이 우리 조상의 것인지 헷갈렸던 것이다. 물론 비석도 세우지 않은 때였기에, 위에 것인지, 아래 것인지 몰랐던 것이다. 그래도 이왕 이렇게 왔으니 어느 하나라도 하고 가자라고 했던 삼촌네들은 나중에 집에 돌아가서야 다른 무덤에서 작업을 한 것을 알았고, 어른들께 엄청 혼이 났다고 한다.

  하지만 조금씩 농촌에 경운기가 보급되고 난 이후부터는 굳이 따로 가지 않아도 되었다. 걸음보다 빠른 경운기에 모든 친척일행들이 타서 함께 다녔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도 동새벽에 일어나 산으로 향하곤 했으며, 그들의 점심도시락은 꼭 챙겨서 가곤했다. 밥이 나왔으니 또 한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예전에 벌초를 하러 가서 돌담옆에 점심도시락을 뒀는데, 어느 새 보니 소 한마리가 와서 그것을 몽땅 다 먹어치워버렸다는 것이다. 울 어머니가 해준 말씀이다. 그래서 배가 고픈 채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암튼 먹는 문제는 중요한 것이다.

  이런 일들도 이제는 다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사회변동에 따라 벌초의 기계화, 상품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농촌에 트럭 뿐 만 아니라, 예초기가 보급되고 난 이후, 몇날 며칠에 걸려서 하던 벌초는 불과 하루에 끝장내버릴 수 있는 것이 되었다. 트럭은 이동시간의 축소, 예초기는 노동시간 뿐 만 아니라 노동력의 축소를 발생시킨다. 엄청난 변동이다.  이제는 내가 벌초하러 가면 할일이 거의 없다. 풀을 베는 흉내, 시늉 혹은 말 그대로 연기라도 해야할 판이다. 특히 문중벌초라도 가면 장정 10여 명 중 예초기를 든 2~3명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풀 몇번 나르고는 절하는 시간이 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벌초를 일찍 마칠 수 있기에, 이제는 도시락을 챙기지 않는다. 그저 과일과 술 등 간단한 제사음식  몇개만 챙기고 떠난다. 그리고 점심은 근처 식당에서 사먹는다. 여인네들은 새벽부터 점심도시락을 챙기지 않아도 되었다.

   이처럼  기계화는 벌초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런 것 때문에 우리 아버지는 예초기를 거부하고, 아직도 큰 낫으로 벌초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물론 1년에 단 하루를 위해 예초기를 사는 것은 비합리적이긴 하다 ㅎㅎ).
  
 벌초의 기계화로 인한 폐해도 크다. 공동묘지가 풀베기 작업장이 되어 버린 듯, 시끄러운 기계 소리와 매캐한 연기와 무참히 갈려버린 풀과 기름냄새만이 진동할 뿐이다. 마치 누가 먼저 작업을 마치고 절 하는 것을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벌초를 하는 행위가 탈주술화 되고 있는 것일까?

  더불어 이제는  기계화보다도 더 무서운 ‘벌초의 상품화’가 출현하고 있다. 예전에는 벌초때만은 해외에서 찾아오곤 했다는데,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최근에는 벌초 대행 서비스가 유행하고 있다. 이는 물론 무연고분묘 벌초봉사와는 개념적으로 다른 것이다. 벌초라는  조상을 기리는 의례적 행위가 ‘상품’이 되어 팔리고 있는 것이다.

  상품화는 앞서 말한 기계화를 바탕으로 한 서비스다. 자신들의 벌초를 미리 마칠 수 있기에, 나머지 시간들을 이용해 타인의 벌초를 대신해 주는 것. 기계화 없이는 벌초 봉사도 매우 힘겨운 일일 수 밖에 없다. ( 나는 이 상품을 구매할 일이 없으므로 잘 모르겠지만, 경험자를 통해 더 자세한 사항을 알아봐야 겠다.)

 벌초의  기계화와 상품화는 제주사회의 변동에 따라 벌초라는 전통적 행위가 어떻게 변동에 적응하면서 스스로 변동되어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행위가 지속되는 것은 조상을 기리고 가족과 친척들이 잘 살아보자는 기본적인 의식이 남아있기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장묘문화가 ‘납골당’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속에서 벌초가 언제까지 남아있을지도 또 다른 토론의 주제가 될 듯싶다. 하지만 오름과 들판에서 산담에 둘러싸인 제주의 무덤은 그 자체로 제주의 독특한 풍경을 만들었고, 그와 관련된 제주인의 삶과 문화를 보여줬다. 음력 8월 초하루가 지나서  ‘스포츠형 머리’처럼 깔끔하게 정리된 무덤들을 매년 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 일 것이다.[2008.09.08. 끝]

 아직도 낫을 사용하는 우리 아버지



여럿이 벌초를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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