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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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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고 – 야! 한국사회] 뜨거운 맛 / 김규항

 

한국처럼 보수정치와 진보정치의 구분이 저마다인 사회도 없지만, 보수정치와 진보정치의 가장 보편적인 구분 지점은 역시 대변하는 계급이다. 보수정치는 부자들의 삶을 대변하고, 진보정치는 서민대중의 삶을 대변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부자들이 지배하는 사회이기에 서민대중의 처지에서 얼마나 살만한 사회인가는 대개 진보정치가 얼마나 센가에 달려 있다. 서민대중의 처지에서 한국이 참으로 나쁜 사회인 이유는 진보정치가 약하기 때문이고, 서유럽이나 북유럽 사회가 한국보다 살만한 사회인 이유는 진보정치가 세기 때문이다.

 

극우반공독재 정권이 지배하는 동안 진보정치는 아예 씨가 말랐다.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절차를 요구하는 김대중씨 같은 보수정치인이 간첩으로 몰리는 판이었으니 그럴밖에. 그런 사회, 즉 제도정치가 서민대중들의 삶을 대변할 수 없는 사회에선 주요한 사회적 변화는 결국 정치권 밖에서 인민들의 직접 행동으로 일어나게 된다. 4·19, 광주민중항쟁, 6월항쟁 등 한국 사회의 변화와 관련한 주요한 국면들이 모두 그랬다.

 

2000년 1월 민주노동당이 창당함으로써 비로소 한국에도 진보정당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진보정당(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의석수는 전체 296석 가운데 고작 6석이다. 부자의 삶을 대변하는 290명의 의원과 서민대중의 삶을 대변하는 6명의 의원이 만들어내는 정치가 ‘부자의 무한천국’을 만들어내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대중들의 사회의식은 갈수록 진전되고 있는데 여전히 진보정치가 이토록 미미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제도정치권 밖의 진보적인 정치세력들이 대거 보수정치로 투항했기 때문이다. 지금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에 있는 이른바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적어도 극우정치인들과 비교해서 훨씬 상식적이고 인간적인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정치 역시 부자들을 대변한다. 그들의 정권 10년 동안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화하고, 농민은 국가로부터 버려졌고, 삼성은 한국 사회의 절대군주가 되었다.

 

둘째는 그나마 남은 진보정치의 세를 싹쓸이하는 ‘비판적 지지’라는 것이다. 비판적 지지는 ‘최악을 막기 위한 연대’다. 최악을 막는 일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어떤 일의 양면을 함께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비판적 지지는 최악을 막는 데 도움을 주지만, 동시에 실재하는 진보정치의 씨앗을 보수정치로 흡수하는 진보정치의 미래를 없애버리는 굿판이기도 하다.

 

이번 지자체 선거에서 최악인가 차악인가, 이를테면 오세훈인가 한명숙인가 혹은 김문수인가 유시민인가는 허투루 볼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서민대중의 삶에서 노회찬과 심상정의 득표율은 최악인가 차악인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진보후보의 득표율은 그 자체로 진보정치의 세와 힘으로 작동하며 그게 얼마나 느는가에 한국 정치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당선과 무관한 표는 ‘사표’라거나 비판적 지지를 반대하는 건 근본주의적 태도라는 주장은 매우 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실은 사기다.

 

그래서 최악이 이겨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그거야말로 이미 우리가 잘 아는 문제다. 중앙정치든 지방정치든 그 안에서 도무지 해결이 안 되면 언제든 촛불을 들고 짱돌을 들고 나가면 된다. 나가서 직접민주주의의 뜨거운 맛을 보여주면 된다. 앞서 말했듯 한국의 진짜 정치는 오히려 제도정치권 밖에서 존재했으며 290 대 6의 정치구조를 가진 지금도 그럴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권의 패악질을 잠시나마 멈추게 한 건 한명숙도 유시민도 아닌, 촛불을 든 시민들이었다.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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