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보전 활동소식

기름유출 3년, 태안을 돌아보다 -삼성중공업 기름유출사고 진단토론회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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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다. 그리스어 ‘망각의 강(lethe)’에서 유래한 말로 레테의 강을 건널 때 인간은 너무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고 지난 기억을 모두 잊어버린다고 한다. 삶의 기쁨과 슬픔, 괴로움, 노여움이 교차되며, 희노애락은 추억되지만 곧 망각해 희미한 기억 속에 묻어버린다는 것이다.  

 

인간이 보고 듣고 경험한 삶의 편린들 중 기억하는 것은 아마도 각자 내면 깊이 숨긴 의지가 선택한 것들일 것이다. 삶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만을 기억하는 것,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본능일지 모른다. 혹자는 이 망각의 위대함 속에서 새로운 창조 작업, 새 생명의 길이 시작된다고도 했지만 바꾸어 그 망각의 대상에게는 무엇이 남을지, 생명과 창조라는 얘기가 지속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태안 앞바다에서 일어난 삼성중공업 크레인과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의 충돌사고로 서남해안 일대가 검게 물든지 벌써 3년이 지났다. 천 이백여 일이 지나는 세월 속에서 우리가 이 사고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검은 기름의 악몽, 그리고 흰 방제복의 물결, 그 다음은 또 어떤 것이 남아있을까. 지난 26일 한국건강연대 <지금여기홀>에서 열린 토론회는 삼성중공업 기름유출사고 이후 최대 피해지역인 태안을 조사해온 여러 주체들과 관련 전문가들이 지난 3년간의 태안의 현황을 공유하고 남은 과제 해결을 향한 서로의 역할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첫 번째 발제에 나선 박재묵 충남대 교수는 2010년에 방문한 알래스카의 프린스윌리엄사운드지역시민자문위원회(PWSRCAC)의 사례를 통해 1989년 엑손발데즈 사고 이후 구축된 생태계 복원과 사고 예방 및 대응 체제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했다. 특히 시민자문위원회의 활동이 이루어낸 이중선체 유조선 도입, 선장과 선원, 선박 운항 감시 체제 등의 강화에 추가된 예인선 2대를 이용한 유조선 에스코트 시스템은 다소 과하다 싶을 수도 있지만 단 한 번의 사고로 엄청난 환경재앙을 초래하는 기름유출사고를 철저히 예방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의지가 정책화한 것으로, 2007년 사고 이후 이중선체 도입 외에는 사고 발생 예방 시스템 구축에 소홀한 한국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알래스카 사례를 소개하는 박재묵 교수   ⓒ환경연합 안철  

 

두 번째로 발표된 매년 한 차례씩 태안 및 충남 전라지역 기름피해지역의 기름흔적을 집중 조사하고 있는 생태지평 연구소의 조사 결과는 예상대로 심각했다. 매년 태안의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모두 걷고, 충남과 전라 도서지역을 배로 이동하며 바위에 매달리는 힘든 조사를 통해 3년이 되어가는 작년 여름까지도 기름흔적은 무수히 발견되었다. 그것도 휘발성분이 날아간 고체 상태 뿐 아니라 여전히 사고 초기와 마찬가지인 액상 형태로 해안선 곳곳과 갯벌 사이에 남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역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사고 발생 이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청정지역을 선언하며 몇 곳을 뺀 태안지역 해수욕장을 모두 개방하고 수산물의 유류성분이 기준치 이하라며 조업을 재개하고 섭취를 장려했던 정부, ‘청정’, ‘안전’, ‘회복’, ‘기준치’라는 단어의 뜻을 알고나 사용하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한국 정부의 모습은 현재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모든 것을 ‘기준치 이하’라는 한 마디로 ‘안전하다’ 단정하는 모습과도 겹쳐졌다.

 

유징분포 조사결과를 발표중인 생태지평 이승화 연구원 ⓒ환경연합 안철  

 

이어서 검진 일정으로 토론회에 참석이 이루어지지 못한 태안환경보건센터에서 제공한 영상을 보며 작년 11월에 발표된 1차 중장기 건강영향 조사 결과와 암발생 현황 등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2010년 초에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태안지역 암 발생 주민의 급증 소식은 이미 대략의 내용을 알고 있었던 참가자들에게도 영상을 통해 더욱 절박하게 다가왔다.  

 

해안선 바로 뒤에 마을이 있고 사고 직후 제대로 된 방제복과 마스크 하나 없이 집에 있는 청소도구를 들고 삶의 터전을 지키려 바다로 나간 주민들에게 남은 결과는 몸과 마음의 질병, 그리고 또 미래에 대한 절망이었다. 그 끝에서 삶을 놓은 네 분 주민의 소식이 있었다. 파도리라는 300여 세대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은 사고 이전 매년 한두 명이던 암환자가 사고 이후 급증해 지난 2년간 32명이 암으로 사망했고 14명의 암으로 투병 중이다. 파도리 뿐 아니라 의항2리 등 기름유출사고의 가장 큰 피해지역인 태안군 소원면 곳곳은 암 환자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암 투병 중인 파도리 주민 인터뷰 화면  <출처-대전 MBC 특집다큐 '끝나지 않은 재앙'>

 

젊은 40~50대 성인에게까지 다가온 암의 공포가 끝이 아니었다. 매일같이 놀던 해변과 바다가 검게 물들었다. 거기에 어른들의 불안과 걱정, 납득하기 어려운 보상과 생계대책을 제시하고 책임을 외면하는 정부와 삼성을 향한 분노를 몇 년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던 기름피해지역 아이들에겐 어느새 지우기 힘든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기름사고로 인한 재앙의 그림자가 아이들에게까지 미치는 것을 어느 누구도 바라지 않았지만 이것을 막을 힘은 주민들에게 없었다.

 

문제는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기름피해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건강영향조사와 암조기 발견 및 치료를 위한 정밀장비를 갖추고자 제출한 태안환경보건센터의 2011년 예산이 지난 2010년 12월 국회에서 날치기로 삭감되었다는 것이다. 태안주민들의 건강영향조사와 지원을 중장기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태안군 보건의료원을 태안환경보건센터로 격상시킨 것이 불과 3년도 되지 않아 당장 시급한 주민들의 암 진단 장비와 진료지원예산을 기획재정부 심의에서부터 삭감한 배경에는 2011년에도 막대한 예산이 투입될 4대강 사업이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면서 지역 주민들과 언론은 들끓었지만 날치기된 예산을 살릴 수는 없었다.

 

중앙정부로부터의 예산이 전액 삭감된 이후 현재 충남도와 태안군이 추경예산으로 3억을 책정해 그간 해왔던 중장기 건강영향조사는 진행 중이다. 그러나 작년부터 가속화된 암 검진 시설에 대한 의료진과 지역주민들의 염원은 결국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에 혈안이 된 토목정권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지역주민들의 건강상태를 직접 확인한 센터 의료진들은 추적조사를 위해 모아둔 수많은 혈액과 소변시료들이 무용지물이 되지는 않을지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2010-2011년 겨울 태안의 풍경   ⓒ환경연합 정나래

 

 

3년 4개월간 태안을 지켜본 이들이 전하는 현실은 참혹했다. 기름유출사고 이후 무엇이라도 해줄 듯 피해지역 마을을 휘젓고 다니며 파란 로고 찍힌 천막 아래에서 자매결연식을 맺고 다니던 삼성중공업, 자국민의 피해를 스스로 나서서 조사하지 않고 국제유류기금(IOPC)이라는 국제기구의 손에만 맡겨둔 채 3년간 단 7%의 보상만을 받게 한 무능한 정부가 태안의 현실 앞에서 ‘법적인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는 말만 반복하며 버티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가리고 있는 태안의 현재를 어느새 잊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기엔 잊혀져가는 이들의 삶의 영속성과 그만큼의 고통이 너무 크다.

 

 

<삼성중공업 기름유출사고 진단 토론회 ②>에서 이어집니다.

발제4 시민의 눈으로 본 태안의 3년 (환경운동연합 태안시민생태조사단)

발제5 기름유출사고의 주민보상체계와 책임제한제도의 법적 문제점 (우경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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