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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남서쪽 98킬로미터, 덕적도에서 13킬로미터를 달린 3시간의 뱃길 끝에 굴업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면적 1.7제곱킬로미터에 12킬로미터의 해안선을 가진 이 작은 섬은 계절마다 아름다운 경관의 능선과 고운 모래해변이 있어 조용한 여행지를 찾는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줍니다.
하늘에서 내려본 굴업도 전경
가을을 알리는 수크렁 군락이 펼쳐진 굴업도 능선 ⓒ인천환경연합
아름다운 경관만이 아닙니다. 인룡이 번성했던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만들어진 화산섬이며 오랜 시간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이 섬에는 신석기 패총과 민어 파시 흔적 등 문화사적 유적들이 곳곳에서 발견되는가 하면 오랜 풍화를 거친 특이한 암반 구조는 그 자체로 지형학 교과서라 할 정도의 지질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굴업도의 명물 코끼리 바위 ⓒ인천환경연합
기이한 섬에 깃든 생명들 또한 범상치 않습니다. 이젠 옛날이야기에나 나오는 신세가 되어버린 멸종위기종 1급 먹구렁이의 국내 최대 서식지이며 내륙에서 연간 1,2 개체만 발견되는 멸종위기종 2급인 왕은점표범나비가 하루 조사에 31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한 지역에서 2쌍 이상 발견되는 경우가 드문 매가 3~4쌍 이상 머물며 번식하며 내륙에서 거의 멸종되다시피 한 애기뿔소똥구리가 쉽게 발견되는 것은 풍부한 굴업도의 생태환경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지금 굴업도는 골프장과 대규모 리조트라는 개발사업 앞에 풍전등화 상태입니다. CJ 그룹의 계열사이 C&I레저산업(주)이 섬 평당 2~10만원에 불과한 토지를 평당 25만원에 사들이면서 현재 굴업도 전체의 98.5%를 소유한 상태입니다. 중국시장을 겨냥해 18홀 골프장 및 호텔, 수영장을 갖춘 리조트인 ‘오션파크’를 조성하겠다는 것입니다. 사업계획대로라면 골프장 조성을 위해 7개의 산봉우리로 이루어진 굴업도에서 1,500만 톤 분량을 깎아내야 하기 때문에 섬의 경관이나 생태환경이 파괴될 것은 자명합니다. 작년 6.2 지방선거 이후 이 사업을 적극 지지해온 시장이 바뀌면서 CJ는 사업을 철회하는 듯 했지만 이후 섬에 진입하는 여름철 관광객들을 앞에 위협적인 푯말을 내걸더니 이제 다시 2014 아시안게임 등을 이유로 슬금슬금 사업계획을 다시 내밀고 있는 중입니다.
굴업도 개발로 인한 산지훼손 예상도 ⓒ한국녹색회
2010년 6월 사업철회를 밝힌 CJ측에서 7월부터 내건 푯말. ‘서면승인’을 위한 연락처조차 없다. ⓒ인천환경연합
지난 5월 12일, 굴업도를 문화·예술·자연이 살아있는 섬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 모인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이 출범했습니다. 90년대에 시민사회와 문화예술인들, 지역 주민들이 단합해 굴업도 핵폐기장 건설계획을 백지화 시켰던 굴업도에 대기업의 돈벌이를 위한 골프장을 들인다는 것은 그 누구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5월 12일 고궁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출범식에서 발언중인 건축가 김원 ⓒ환경연합
일본에는 100년 역사의 간장기념관과 올리브공원으로 다양한 문화체험 관광지로 보전되고 있는 소도시마 섬과 세계적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가 참여한 지중미술관이 들어서면서 자연과 예술의 섬으로 거듭난 나오시마 섬처럼 굴업도에겐 일부계층과 대기업만을 위한 골프장이 아닌 대안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날 모인 120인의 문화예술인들이 시작할 <굴업도 문화예술 프로젝트>는 문화예술인 6월 초 굴업도 현장답사를 시작으로 설치미술전 및 예술제 등을 기획중이며 국내외 사례를 수집 후 예술섬설계(Art Island Plan)를 본격화 할 예정입니다.
이날 발언한 소설가 이호철씨의 말처럼 굴업도는 지금 이대로의 모습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예술섬이며 생태문화 박물관입니다. 인천환경연합 조강희 처장이 굴업도에 대한 대화마다 빠뜨리지 않는다는 한마디를 다시 전합니다.
“굴업도에 일단 한 번 오세요. 그럼 왜 우리가 이곳을 지키려는지 알게 될 겁니다.”
해무가 내려앉은 굴업도. 이 섬이 이대로의 모습으로 지켜질 수 있기를 ⓒ인천환경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