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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울진군민의 핵폐기물 처분장 반대투쟁을 지지하며

[성명서] 울진군민의 핵폐기물 처분장 반대투쟁을 지지하며

경남 양산에 이어, 경북 울진에서도 핵폐기장 건설 반대 투쟁이 강력하게
일어나고 있다. 5월 25일, KBS와 중앙 일간지에서 울진군 기성면 주민 1150
명이 핵폐기장 유치신청을 냈으며, 이는 총 유권자의 57%라는 보도 이후, 울
진군 원전반대투쟁위(위원장 임원식)는 즉각적으로 전군민의 반대 투쟁을 결
의하고 30일 울진군의회와 공동으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기
성면 핵폐기물 반대투쟁위(위원장 임방갑)와 인접면인 후포면 핵폐기물 반대
투쟁위 역시 “4월부터 계속 핵폐기물 처분장 반대 집회를 연이어 개최해 왔
는데도 마치 지역주민이 핵폐기장 건설에 찬성하는 것처럼 알려지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울분을 토했다.

사건의 진상은 이러했다. 지난 2월부터 과학기술처는 울진군 기성면에서
다방이나 상점 등에 핵폐기장 건설과 관련된 홍보물을 배포해왔다. 지역주민
을 대상으로 설명회나 공청회를 개최하려다, 지역 청년들에게 몇 번 쫓겨난
이후로는 아예 밤에 몰래 내려와 유치에 찬성하는 사람들 몇명을 만나고 가
기도 했다. 과학기술처의 활동은 경남 양산의 경우와 다르지 않았다. 지역
개발을 미끼로 몇몇 인사를 유치추진세력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지역의 무직
자, 포커꾼 등을 중심으로 찬성 여론을 퍼뜨려나가는 것이었다. 과학기술처
가 주로 접촉한 대상은 크게 셋으로 분류된다. 하나는 과기처가 핵폐기장 건
설 지역으로 내심 생각하고 있던 삼산리 주민들, 하나는 농협조합장, 토목,
건축업자 등 핵폐기장 건설 사업에 금융, 건설 사업 등으로 이권 개입을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근에서 상업에 종사하거나 직업이 없
는 사람들이 초반에 유치추진에 나선 사람들이었다. 150여 가구 남짓 되는
삼산리는 대부분이 서울 등 외지인이 땅을 소유하고 있으며, 주거주자가 고
령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삼산리 주민들은 이주비용 등으로 큰 돈을 받
을 수 있다면 정부 사업에 협조해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에 찬성 명부에 도장
을 찍었으며, 농협조합장, 토목,건축업자는 이권에 개입할 수 있는 조건을
내세우며 과학기술처와 협상 테이블을 만들었으며, 혈연,지연,안면을 무기로
조건부 찬성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 500억을 무상으로
지원하겠다는 과학기술처 직원의 말은 어느새 유치에 찬성하면 각 가구마다
3500만원씩을 주겠다는 선전으로 바뀌었고, 이러한 선전을 무기로 협박 반
회유 반으로 찬성 서명을 받은 것이 2150명이었다. 이미 언론에 보도된 대
로, 찬성 서명자와 반대서명자를 합하면 기성면 전체 유권자보다 훨씬 많은
등 중복 서명이 상당수 있었고, 외지에 나가 사는 사람의 서명이 있는가 하
면, 한 사람이 여러개의 서명을 하기도 했으며, 멋모르고 도장을 내준 경우
도 상당수 있었다. 한마디로 2150명의 서명은 과학기술처와 유치추진위 몇몇
의 허위 선전과 지역내의 혈연, 지연, 위계 질서를 이용한 온갖 불법적 수단
을 동원해 이루어진 것이다.

과기처는 일단 지역발전기금 500억을 집집마다 3500만원씩 나누어가질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2150명의 서명을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유치여론
이 있는한 ‘법대로’ 일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과기처의 태도에 대
한 울진 군민의 분노는 클 수 밖에 없다. 이미 핵발전소 문제로 많은 물리
적, 심리적 피해를 받고 있으며, 지난 91년 핵폐기장 후보지로 지정됐을 때
다수의 구속자를 내면서 한달 내내 격렬하게 핵폐기장 반대투쟁을 해온 울진
군민들은 사실 “과학기술처나 핵 소리만 들어도 신경질증후군에 걸린다”고
할 정도로 이 문제에 민감하다. 하기에 지난 대선 때 “이미 핵발전소가 있는
울진군에는 핵폐기장만은 건설하지 않겠다.”는 김영삼 현 대통령과 당시 과
기처 장관의 말을 믿고 표를 몰아주었다고까지 했다. 따라서 이번 유치 신청
파문과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과기처의 태도는 군민의 배신감과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울진군민은 이제 이구동성으로 누구도 믿
을 수 없다며, ‘강경한 행동’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하지 않으면, 정부나 언론
이 자신들의 반대 의사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울진 군의회의 반대결의를 비롯해 지역주민이 여러차례 반대 의사를 표명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았던 정부의 책임이라 할 수 밖에 없
다.

환경운동연합은 지금 이시점에서 정부가 핵폐기물 처분장 문제를 비롯한
정부 정책을 정말로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정부는 지역마다 강력한 반핵여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핵폐기장은 안전하
다는 일방적인 홍보와 정부 정책이라는 권위로 이를 제압하려 해왔다. 핵폐
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으며, 따라서 대책
없는 핵발전소 건설을 당장 중단하는 것만이 핵폐기물 문제를 풀 수 있는 유
일한 길이라는 반핵, 환경단체의 강력한 주장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과기처
는 “방사성폐기물 관리와 지역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면단위로 해당지
역을 축소하고, 지역지원금을 확대하면, 핵폐기물 반대여론을 쉽사리 무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지역개발이라는 미끼가 쉽게 통할 수 있는 소외
된 지역, 그 소외된 지역 중에서도 당장 1,200만원이 급한 힘없는 주민을 유
혹해, 그들의 무지 위에 핵폐기장을 건설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핵폐기장 건설에 이권 개입을 할 수 있는 지역 인
사 몇몇을 등에 업고, 땅과 바다에 뿌리박고 사는 농민, 어민의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사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것 또한 엄청난 착각이다. 정부가
이미 경험했듯 어느 지역이든지 핵폐기물의 위험성을 깨닫고 핵폐기장 건설
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나서게 되어 있다. 핵폐기물,핵발전소에 관한 국민적
합의는 이처럼 일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제3자’인 양 핵폐기장 건설에 따른 지역지원책
을 공고하고,’유치 신청’을 하는 지역이 있으면, 그곳에 핵폐기장을 건설하
겠다는 현 과기처의 정책은 지역민들간의 갈등과 충돌을 야기시킬 뿐이다.
애초에 폐기물 처리기술도 없는 핵발전소를 무턱대고 지어온 정부의 실책이
왜 오늘 지역민들간의 갈등과 상처로 이어져야 하는가? 어제는 양산, 오늘은
울진, 내일은 또 어디인가? 안면도인가? 영일인가? 그도 아니면 또 새로운
후보지인가?
더이상 지역간의 갈등, 지역주민들의 상처를 골깊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처가 과감히 ‘유치신청’을 받아 올해 안에 핵폐기장을 선정하겠다는
정책을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핵에 관한 국민적 합의가 일천하다면, 이는
핵정책을 주도해온 정부부처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정부 부처는
먼저 핵발전소, 핵폐기장 건설을 일관되게 반대해온 환경운동연합과 이에 동
참하고 있는 전문가들과 공개적으로 토론에 임해야 할 것이다. 매스컴을 이
용하면, 핵문제에 대한 논쟁을 보다 더 객관적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KBS의 심야토론 프로 등 생방송 공개토론을 통해, 핵
문제에 대한 논쟁을 공론화시키자고 여러차례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
는 이를 번번히 거부해 왔다. 핵은 안전하다는 일방적인 TV 광고나 낼 뿐이
었다.

이제 정부는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정부가 항상 떠들어온 공개행정이란
핵폐기물 유치신청 공고를 일간지에 내는 것이 아니다. 공개 행정이란 정부
시책과 관련된 찬과 반을 국민에게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찬과 반의 토
론을 통해 국민이 반을 선택한다면 과감히 정부 시책을 수정하는 것이다. 환
경운동연합은 다시한번 정부가 핵폐기장 선정을 포기하고 핵문제에 관한 국
민적 토론에 임할 것을 임할 것을 요구하는 바이다. 이것은 핵폐기물 처분장
선정과 관련된 몇몇 지역의 문제만도 아니며, 현재 살고 있는 우리 세대만의
문제도 아니다. 후손까지 관련된 중차대한 국가사안이다. 정부는 더이상 이
러한 문제를 지역에 전가하지 말라고 공개적 토론에 임하라!

– 우리의 주장 –

1. 핵폐기물 양산하는 핵발전소 건설 중단하라!
1. 과기처는 지역주민 기만으로 점철된 핵폐기장 선정 시도를 중단하라!
1. 정부 당국은 핵폐기장 문제를 비롯한 핵정책 일반에 관한 공개토론에
응하라!
1. 정부당국은 처리기술도 없는 핵폐기물을 양산하는 핵에너지 의존 정
책을 수정하라!

1994년 5월 30일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최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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