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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칼럼] 지도자의 위기 관리

[복거일 칼럼] 지도자의 위기 관리

이번‘광우병 파동’은 느닷없이 닥쳤다. 지진해일(tsunami)처럼. 그것을 예측한 사람들은 드물었을 터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고백했듯이,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를 놓고 미국과 협상하면서, 현 정권은 주로 우리 축산 농가들이 입을 손해와 그들의 반발을 걱정했다.

그런 판단이 크게 글렀다고 하기도 어렵다. 애초에 노무현 정권이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중단한 일은 합리적 조치가 못 되었다. 일부 상품들에서 뼈 조각들이 나왔다고 아예 모든 미국산 쇠고기를 막은 조치는 어떤 기준으로도 지나치다는 국제적 여론이 일었다. 질병의 위험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한국 정부가 실제로 겨냥한 것은 한국의 축산업의 보호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그래서 그 조치로 우리 소비자들이 본 경제적 손실도 엄청났지만, 보는 줄도 모르고 본 무형적 손실도 무척 컸다. 노무현 정권이 곧 수입 금지를 풀겠다는 뜻을 미국 정부에 밝혔고“우리는 설거지를 했다”는 현 정권의 볼멘 소리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 정권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가 얼마나 폭발적인 문제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특히, 인간 광우병에 대한 시민들의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미국과의 협상에서 준비가 부족했고, 부처들 사이의 협조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서 가뜩이나 모자란 협상 능력이 더욱 낮아졌으며, 이 대통령의 미국 방문 일정에 맞추느라 챙길 사항들을 찬찬히 챙기지 못했다.

미국산 쇠고기를 통해서 우리 시민들이 인간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은, 객관적으로 살피면, 아주 작다. 그래서, 여느 때라면, 그런 위험에 대한 논의는 과학적 지식에 바탕을 두고 논의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의 정치적 상황이 여느 때와는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이 점은 ‘한반도 대운하’ 사업과 비교하면 이내 드러난다. 운하는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큰 짐이 되었고 총선에선 아예 한나라당의 공약에서 빠졌을 만큼 비판을 받았다. 경부 운하가 경제성은 없으면서 환경을 파괴하며 먹는 물까지 더럽힌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나왔다. 그러나 운하는 시민들의 집단적 저항을 부르지 않았다. 이처럼 다른 반응이 나온 까닭은 무엇인가?

그런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근본적 요소는 이 대통령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다. 운하에 대한 논의는 그에 대한 지지가 높았을 때 시작되었다. 반면에,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는 그에 대한 지지가 아주 낮아졌을 때 추진되었다.

정권은 흔히 민심이라는 물 위에 뜬 배에 비겨진다. 낡았지만 적절한 비유다. 정권이 민심을 얻어 수위가 높으면, 바닥에 있는 바위들이 아무리 커도, 배는 안전하게 나아간다. 그러나 정권이 민심을 잃어 수위가 낮아지면, 여느 때는 있는 줄도 몰랐던 바위들이 배를 위협하게 된다.

이 대통령의 인기가 높았다면, 쇠고기 수입 재개에 관한 미국과의 협상은 한미 동맹의 복원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체결이라는 큰 틀 속에서 평가되었을 터이다. 비록 협상에서 정부가 서툴렀지만, 방송의 편향된 보도가 이내 시민들의 거센 시위를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자연히, 정부는 상황을 차분히 설명하고 시민들의 뜻을 실질적으로 반영할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 정권은 민심을 많이 잃었고 배는 갑자기 나타난 암초에 부딪쳤다.

이처럼 민심을 얻지 못하면, 작은 일도 배를 위협하는 암초가 된다.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당분간 낮을 터이므로, 해도(海圖)에 나오지 않은 바위들이 잇따라 배를 위협할 것이다. 무척 걱정스럽다.

따라서 선장인 이 대통령은 늘 그런 위험을 살펴야 한다. 아쉽게도, 그는 위험에 대한 감각이 무디다. 그래서 그 동안 피할 수 있었던 위험들로 크고 작은 상처들을 입었다.

그는 재산이 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비서실과 내각이 부를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자신의 대표적 위임사항이면서도 시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한반도 대운하’사업이 제기하는 위험을 그냥 버려두었다. 이념적으로 가까운 박근혜 의원과 이회창 총재를 무시하면 자신의 지지 기반이 분열된다는 위험을 가볍게 여겼다. 반대당이 장악한 국회와 상대할 때 맞을 위험도 너무 작게 여긴 듯하다. 근본적으로, 사회주의 이념을 따르는 좌파 세력이 자신에게 제기하는 본질적 위험을 깨닫지 못했다.

이 대통령이 그렇게 위험에 무딘 까닭은 그의 경력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평생 기업가로서 일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기업가’라 불리는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는 기업가가 아니다. 원래 기업가(entrepreneur)라는 말은 스스로 위험을 지면서 기업을 일으키고 관리하는 사람을 뜻한다. 우리 사회에서 그런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흔히 ‘오너’라 불리는 대주주들이다. 일반적으로 기업가라 불리는 사람들은 그런 기능을 수행하지 않으며 그저‘오너’가 발탁한 고용인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을 경영하는 최고경영자의 직무에서 본질적 부분은 위험 관리(risk management)다. 다른 것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할 수 있지만, 위험 관리만은 최고경영자 자신이 해야 한다. 우리처럼 기업의 생존에 정치적 영향이 결정적 중요성을 지닌 사회에선 특히 그렇다.

이 대통령은 정주영 회장 아래서 기업을 경영했다. 그리고 정 회장이 결정한 사항들을 충실히 집행했다. 현대 그룹에서 위험을 평가해서 최종적 결정을 내린 사람은 정 회장이었다. 이 대통령은 위험 관리를 한 적이 없었다. 자연히, 그는 위험에 대한 감각을 다듬을 기회가 없었다. 그가 자신의 첫 사업에서 김경준 씨와 같은 애송이 사기꾼에게 쉽게 걸려든 것은 그런 사정을 고려해야 비로소 설명될 수 있다.

지도자의 본질적 임무는 정치적 위험을 판단하고 관리하는 일이다. 그 일은 궁극적으로 부차적 효과들을 예측하는 일이다. 정부의 정책들은 많은 부차적 효과들을 낳고 그런 부차적 효과들은 다시 나름으로 부차적 효과들을 낳는다. 그런 2차 및 3차 효과들은 물론 많고 예측하기 힘들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의 법칙(law of unintended consequences)’이 가리키는 현상이 바로 이것이다. 생존 능력이 뛰어난 정치가들은 자신들이 내리는 결정이 낳을 부차적 효과들을 잘 예측한다. 그들은 타고난 능력과 오랜 경험으로 그런 부차적 효과들이 품은 위험과 기회를 거의 본능적으로 느낀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위험 관리에서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자신의 부족을 채워줄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 어떤 결정이나 정책이 부를 부차적 효과들을 찬찬히 예측하고 분석해서 정치적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사람들을 가까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2008.06.02  뉴시스 |  복거일(사회평론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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