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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수경스님 말씀은 ‘선동’입니다”









이재오 “수경스님 말씀은 ‘선동’입니다”
‘한반도 대운하’ 당위성 강조하며 대운하 살리기 ‘올인’

 




‘대운하 전도사’를 자처하는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이 19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대운하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장문의 글을 올려, 이 의원이 범국민적 반대로 소멸 위기를 맞고 있는 대운하를 부활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존경하는 수경스님께 드립니다’라는 장문의 글은 이 의원이 총선 낙선후 지리산에 칩거하던 지난달 24일 화계사 주지인 수경스님이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대운하 비판 글을 보고 쓴 것으로 대운하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수경스님의 글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수경스님은 당시 글에서 이 의원의 낙선을 은근히 희망했다고 적기도 했었다.

이 의원은 대운하 당위성을 주장하며 가능한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곳곳에서 수경스님을 향한 독설을 퍼부었다.

그는 “영산강물이 썩고 썩어서, 그물로 농사짓는 영산강 유역 일대의 농업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라며 “스님께서 바지 걷어 부치시고, 맨발로 썩은 영산강물에 한번이라도 들어가 보셨습니까? 영산강변에 널려있는 쓰레기더미를 보셨습니까?”라며 스님의 비판을 탁상비판으로 몰아갔다.

그는 또 “어떻게 스님의 가치만 지고지순하고, 저의 가치는 낙선의 대상이 되어야합니까?”라며 “세상 사람들이 정치적 이유로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만, 스님께서 가치를 혼란시킨다면, 그것이 진정 스님의 뜻이옵니까? 인간의 도리입니까?”라고 자신의 낙선을 바랬다는 수경스님을 질타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찬성의 이유는 들어보지도 않거나,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운하자체를 국가의 잘못된 행위로 규정하고, 그것을 반대하는 것은 양심이고, 그것을 찬성하는 것은 갈등의 유발로 본다면 이것은 처음부터 운하의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를 뿌리채 흔들려는 정치적 반대자들의 계산된 정치행위로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대운하 반대를 이명박 정권을 흔들기 위한 정치공세로 규정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스님의 말씀을 속인들의 용어로 삼는다면, 그것은 ‘선동’입니다”라고까지 규정한 뒤, “도대체 4대강을 복원하는데 무엇 때문에 국가적 안위가 위태로워지겠습니까? 경부고속도로를 개설할 때 반대자들이 국민을 선동하는 말 가운데 ‘국가의 안보가 위태롭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안보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언제 어디서고, 스님과 한번 끝장토론을 하고 싶습니다”며 “그것을 공개해도 좋고, 비공개 하여도 좋습니다”라고 맞짱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 의원의 글은 수경스님 글을 “선동”이라고 규정할 정도로 상당히 도전적이어서, 과연 수경스님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정가에서는 대운하가 소멸될 경우 자신의 정치적 재기도 힘들다고 판단한 이 의원이 본격적으로 대운하 논쟁을 불붙이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하고 있다.

다음은 이 의원의 글 전문.






◀ 이명박 한나라당 의원이 수경스님을 향해 대운하 맞짱토론을 주장하고 나서 수경스님의 대응이 주목된다. ⓒ연합뉴스

존경하는 수경스님께 드립니다.

2008년 4월 19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글 잘 읽었습니다.
평소에 수경스님 말씀을 많이 들었고, 지난 총선 때는 “운하반대”하시는 스님을 한번 찾아뵙는 것이 좋겠다는 주변의 권유가 있어서 그런지 글을 보는 순간 오랜 지인의 글을 보는 듯이 반가웠습니다.

저는 지금 지리산 어느 끝자락, 잘 알려지지 않은 아주 조그만 촌가에서 30여 년간의 재야활동과 12년간의 제도권 정치를 성찰하면서,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 평 남짓한 밭에 몇 포기의 채소도 심어놓고 매일 자라는 것을 재어보듯 합니다.

4.9 총선에서 낙선한 아픔도 있지만,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왔을 때 그 시간을 아껴 쓰고 싶습니다. 스님께서 쓰신 “생명의 강에 비친 우리네 탐욕 대운하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라는 글을 몇 번씩 읽고 또 읽으면서 사람의 생각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고 저 스스로 깜짝 놀랐습니다.
글이라는 것은 자기생각과 다른 생각도 있다는 것을 확인할 때 더욱 값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스님께서는 서두에 “나는 지구 생명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수행자의 한사람으로서 「희망의 끈」 을 놓치지 않으려 생명의 강을 따라 흐르고 있습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수행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지구생명공동체의 일원임은 분명합니다. 저 역시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낙동강 하류에서 한강 여의도 까지 물길 따라 563km를 자전거로 탐방했습니다. 영산강 나주에서 함평까지 쪽배를 타고 탐방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 보신 강과 제가 본 강이 이승과 저승만큼이나 차이가 있다니, 이것이 수행인과 속인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스님.
저는 솔직히 낙동강, 한강, 영산강, 금강을 보면서 가슴속으로부터 한없는 서러움과 분노와 눈물이 났습니다.
해방이 되고 자주독립국가가 들어선 지도 60년이 넘었는데, 불과 80년 전만 해도 저강을 따라 소금 배, 새우젓 배들이 다녔습니다.

스님.
강물이 흘러가는 곳에 배가 다니는 것은 하늘에 비행기가다니고, 고속도로에 각종 차량이 다니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리고 스님께서「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 강들은 불과 80년 전만 해도 배들이 다녔던 강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합니까! 강마다 하상이 높아 비만 오면 홍수가 범람하고, 사계절마다 강물이 차이가 있어 강변에 온갖 잡초와 쓰레기들이 쌓여있고, 강바닥은 온갖 썩은 것들로 꽉 차 있고, 강물은 썩어 냄새가 진동하고 물고기 한 마리 제대로 살기 어려운 오염의 강이 되었습니다.

강변에는 온갖 쓰레기들이 이름 모르게 자란 수초들 사이사이마다, 쌓여있으며 어느 것이 원래 하천인지, 강인지, 논인지, 밭인지, 집터인지 구별할 수 없었습니다.
원래 강바닥인데 강물이 비켜가거나 말라 버린 곳에, 논, 밭, 집 을 지어 놓은 것이 그대로 떠내려가서, 큰비만 오면 수해 피해를 걱정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대재앙이고 자연파괴가 아니겠습니까!
저의 꿈은 분명합니다. 강을 원래의 강으로 되돌려놓고, 물길이 있는 곳에 배가 다니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4대 강 따라 흐르는 강변은, 지역과 자연환경에 따라 역사의 강, 문화의 강, 자연의 강으로 만들어 인간이 역사와 문화와 자연과 더불어 살아 숨 쉬는 그런 나라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것이 스님께서 말씀하셨던 「희망의 끈」이며 “생명의 강을 따라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4대강으로 이어지는 전국의 하천과 지천에 하수종말처리장을 만들고 정화하여, 4대강에 사철 맑은 물이 흘러 들어오게 하고, 원래의 강을 복원하여, 온갖 물고기가 제 집처럼 살고, 우리의 역사, 삼국의 역사이든, 고조선의 역사이든, 지역 따라 역사박물관을 강 따라 만들고, 그 지역의 문화재를 그 지역에 한데모아 전시하고, 지역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철 강길 따라, 뱃길 따라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려고 합니다. 멀쩡한 산과들을 파괴하여 뱃길을 여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뱃길을 복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운하입니다.

스님.
이름을 거창하게 대운하라고 한 것이지 사실은 강 따라 뱃길을 복원하는 것입니다. 강도 자연이고, 산도 자연입니다. 강을 보존하기위해서 뱃길을 열고, 아름다운 강변을 조성하는 것이 생태파괴이고, 자연 파괴이고, 이것이 대재앙입니까?

스님.
저는 참으로 알 수 없습니다.
스님께서는 또한 서두에서 “모든 희망은 의무를 동반합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스님의 희망과 의무는 선한 것이고, 저의 희망과 의무는 낙선의 대상이 되어서 수행하시는 스님까지, 낙선을 기도하셨다니 속인의 눈으로, 속인의 가슴으로, 속인이 보는 세상으로도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저의 어리석음이라면 두고두고 반성하겠습니다.

그러나 스님의 희망이 의무를 동반하듯 저의 희망도 의무를 동반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따져보지도 않고 대운하 전도사를 자처한다면서 가치의 무게중심을 스님 쪽으로만 해석한다는 것이,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수경스님.
스님께서는 “나는「운하에 위협받는 생명의 강」을 지키기 위한 순례단의 일원으로 영산강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스님.
그 영산강이 불과 80여년전만해도 목포에서 광주까지 배가 다녔다는 것을 알고 있으십니까? 그 영산강물이 썩고 썩어서, 그물로 농사짓는 영산강 유역 일대의 농업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스님께서 바지 걷어 부치시고, 맨발로 썩은 영산강물에 한번이라도 들어가 보셨습니까? 영산강변에 널려있는 쓰레기더미를 보셨습니까? 저 영산강의 자갈 모래를 팔고, 민간투자를 더해서, 원래의 맑고 푸른 영산강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그것이 대재앙이고 생명파괴 입니까?

저는 목포에서 광주까지 영산강을 따라 걸어도 보았고 배를 타고 영산강 한 토막을 뱃길 따라 가보기도 했고, 썩은 강물에 기형이 된 물고기도 보았고, 강변에 널려있는 쓰레기더미, 비뚤어진 강줄기 따라 수해가 난 곳도 가보았고, 강변에 사는 농민들도 수백명 만나보았습니다.

스님.
진정 어떤 것이 영산강을 살리는 것입니까?
썩어가는 강 그대로 두는 것입니까? 썩어가는 강을 맑게 만드는 것입니까? 목포에서 광주까지 배가 다니게 하는 것입니까?

지금 그대로 방치하여 10년이 지나면 영산강 일대가 폐농이 되고, 농가가 없어서 황폐한 농촌이 되어도 좋다는 것입니까?
쓰레기더미가 가득한 강변에 온갖 악취가 나게 내버려두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곳을 역사, 문화, 생태가 어우러지는 인간의 강변으로 만드는 것입니까?

스님께서는 한포기 풀도 생명이니 해치지 말라 하시는데, 그것은 그것대로 옳습니다. 그러나, 한포기 풀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열 포기의 풀이 돋아난다면 그것은 생명이 아니옵니까?

스님의 가치가 전자라면, 저의 가치는 후자입니다. 전후가 크게 보면 다 자연의 이치이거늘, 어떻게 스님의 가치만 지고지순하고, 저의 가치는 낙선의 대상이 되어야합니까? 세상 사람들이 정치적 이유로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만, 스님께서 가치를 혼란시킨다면, 그것이 진정 스님의 뜻이옵니까? 인간의 도리입니까?

수경스님께서는 “대운하가 몰고 올 재앙은 환경파괴만이 아닙니다. 더 심각한 것은 공동체의 붕괴와 인간다운 삶의 실종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스님.
저는 4대강이 몰고 올 재앙과 환경파괴를 지금쯤 막을 때가 왔다고 해서 전국의 하천, 지천과, 낙동강, 한강, 금강, 영산강을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고 더 이상 자연환경이 저절로 파괴되는 것을 막고, 강변마다 빈집이 늘어나는 떠나가는 공동체의 붕괴를 막고 삶의 실종을 복원하기 위해서 강 길을 복원하고, 4대강을 인간의 삶이 풍성해지는 인간의 강으로 복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스님.
언제어디 서고, 스님과 한번 끝장토론을 하고 싶습니다. 그것을 공개해도 좋고, 비공개 하여도 좋습니다. 스님과 저와의 인간적인 신뢰의 회복도 좋고, 수행인과 속인과의 가치관의 차이를 확인하는 장이 되어도 좋습니다.

저는 국회의원에 떨어진 것은 참을 수 있어도, 저의 주의 주장이 일방적으로 왜곡 전파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수경스님.
계속 저의 무례가 있다면 용서를 구합니다. 스님께서 주장하신 다섯 가지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첫째. “대운하는 전도된 사회적가치관의 반영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스님.
대운하는 단순한 대통령 선거 공약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운하 이야기를 들은 것은 1996년 5월이었습니다. 은평구에서 15대 국회의원이 되어, 종로에서 국회의원이 된 이명박 대통령과 만나, 그이야기를 국회 본회의장에서 처음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다섯 차례 투옥되어 10여년을 감옥에서 살았고, 오랜세월 동안 수배로 집을 떠나 살았습니다. 저는 군사 독재만 물러가면 금방 나라가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고, 저의 모든 것을 던져 군사 독재반대투쟁에 일관 했습니다.

군사독재가 끝나고, 국회의원은 되었지만 나라를 이끌어갈 대안을 갖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때 저는 운하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것은 저의 창의적 상상력과 함께. ‘아! 이것이다. 이것이 나라를 새롭게 일으킬 수 있고 국운융성의 계기가 될 것이다, 여기에 한국의 역사, 문화, 경제, 자연 전부를 재창조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겠다’ 생각하여 그 자리에서 저는 이명박 대통령을 보고 “형님 대통령하십시오, 정권을 잡아야 나라를 바꿉니다.” 이렇게 해서 스님의 말씀대로. “희망은 의무를 동반하여” 행동이 되었습니다.

“한반도 대운하” 라는 말은 스님, 제가 만들었습니다. 대통령후보 경선 캠프를 차려놓고 정책팀 회의를 주제하면서, 낙동강과 한강을 잇는 경부운하는 지역적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영산강 운하는 호남운하고, 금강운하는 충청운하로 하고, 한강에서 대동강까지 남북운하를 만든다면, 이모든 것을 “한반도 대운하” 라고 하였으면 좋겠다고 제안해서 그날부터 한반도 대운하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더러 대운하 전도사로 자처 한다 해도 저는 아무런 의의가 없습니다.

대운하가 어떻게 전도된 사회적 가치관의 반영입니까?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병리현상, 부정, 부패, 부도덕, 불신, 크고 작은 권력만 잡으면 세상을 멋대로 하는 권력만능주의 이것이 전도된 가치관이지, 경제를 살리고, 나라를 재창조하고, 전국의 하천, 지천, 4대강을 살리고, 자연과 환경을 살리고, 역사와 문화와 생태를 복원하여 인간이 살아 숨 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 전도된 가치관입니까?

수경스님.
“모든 생명의 어머니인 국토의 근간을 허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스님, 모든 생명의 어머니인 국토의 근간을 허무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결과야 스님도 저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만, 생각의 출발은 스님과 저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것은 서로 토론하고, 대화하고 보완해서 의견을 나누어 볼일이지, 어느 일방의 주장이 어느 일방의 주장을 매도할 그럴 사안이 아닙니다.

둘째, 스님께서는 “만약 대운하를 강행한다면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 할 것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스님.
민주주의는 찬반의견이 존재하고, 그것을 충분히 공유하는 제도입니다. 저는 금년 1월달 인수위 한반도 대운하 TF팀에 참석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운하를 해야 된다는 것을 우리가 지금까지 주장해왔다, 이제 부터는 운하를 왜 반대하는지, 그이유가 무엇인지, 본질적으로 반대인지, 홍보가 부족해서인지, 어쨌든 반대의견을 듣는 시간을 갖자, 그것이 6개월이든, 1년이든, 반대의견을 경청하자. 반대의견이 제게 납득을 줄 수 있다면, 대통령께 건의하겠다.”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총선기간 내내 운하반대 의견과 행동이 선거 쟁점으로 만들어지고 , 심지어 제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가 운하반대를 위해서 이재오를 떨어뜨려야 한다는 공약으로 출마하였습니다. 저는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라고만 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운하반대의 그 어떤 행동도, 논리도, 견해도 저를 설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수경스님의 옥필도 몇 번이나 읽으면서, 이것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멈추지 않아서 산촌에서 자기수양의 시간을 가져야할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운하의 찬성과 반대는 충분히 토론되어야 합니다. 반대가 찬성을 강요해서도 안 되고, 찬성이 반대를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는 피 흘리는 투쟁을 동반하기도하고, 지도자의 결단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그 어떤 경우도 민주주의 위기는 없습니다. 우리는 긴 역사에서 수많은 시기마다 민주주의 위기를 외쳐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국민은 민주주의 위기를 지혜를 모아 극복했지 위기 때문에 나라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일은 없습니다. 수경 스님 같은 큰스님이 바라보는 민주주의가 있고, 저처럼 속인이 바라보는 민주주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그 어떤 정치적 지도자도 국민을 조종대상의 우민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저 지긋지긋한 군사독재 30년 동안 가능했던 것이고, 우리 모두는 아직 군사독재의 덫에 걸려 그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와 반대되는 주장에 대한 태도는 군사독재시절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스님.
군사독재시절의 “법난”을 잊으셨습니까?
불교가 겪은 해방 후 최대의 탄압 이였습니다. 그러나 독재자는 망했고 불교는 건강하게 오늘을 맞고 있습니다.

수경스님께서는 셋째, “대운하는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스님.
이명박 정부는 결코 어리석은 정부가 아닙니다. 대운하는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기위한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의 의미를 한편으로 담고 있습니다.

운하건설에 대한 찬반자체가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은 더 토론해야 합니다. 찬성의 이유는 들어보지도 않거나,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운하자체를 국가의 잘못된 행위로 규정하고, 그것을 반대하는 것은 양심이고, 그것을 찬성하는 것은 갈등의 유발로 본다면 이것은 처음부터 운하의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를 뿌리 체 흔들려는 정치적 반대자들의 계산된 정치행위로 밖에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군사 독재시절 온몸으로 부딪혔고, 저항하고, 투옥되고, 고문당하고, 수배당하고, 칠흑 같은 밤을 촛불하나 켜놓고 버텨 왔습니다. 운하를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의 존재이유가, 운하반대를 행동으로 표현하는데 있는 것이라면, 운하를 찬성하는 시민단체들 또한 운하찬성을 행동으로 표현하는데 존재이유를 찾을 것입니다.

저는 운하전도사로서 반대의 그 어떤 의견도 존중할 것이며, 반대의 그 어떤 행위도 사회적 갈등으로 치부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민주주의 발전의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수경스님께서는 넷째, “대운하는 자연 생태계 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재앙을 초래할 것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스님.
저 또한 자연 생태계의 재앙과 사회문화적 재앙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스님, 저는 4대강을 원래의 강으로 복원하고 물길과 뱃길을 살리고 강변정리를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하는 것이 자연생태계의 재앙을 미연에 막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변에 무질서하게 자라난 강변 잡초들을 자연환경으로 생각하시는 것이라면, 그것이 오히려 생태계를 왜곡하고 강을 점점 파괴한다는 것은 생각해보지 않으셨습니까?

강을 이대로 두면 적어도 강변생태계는 파괴되고, 강은 제 모습을 잃게 됩니다. 강변과 강안에 매몰된 문화재들은 복원을 통해서 수집, 보관되어야합니다.

스님.
진심으로 저 강을 저대로 두라고 하시는 겁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신 개발지역 부동산 값 앙등에 대해서는 제도적으로 보완할 것이지, 그 자체 때문에 강의 복원을 하지 말아야 된다는 이유가 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수경스님께서는 다섯째, “국가의 안위가 위태로워질지도 모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스님.
이것은 대체 무슨 말씀이 십니까?
4대강 따라 민간자본이 투자되고, 4대강 가에 널려 있는 자갈, 모래 등 자연자원을 재생하고 세금 한 푼들이지 않고 강 길과 뱃길을 복원한다는데 국가의 안위가 무엇 때문에 위태로워집니까?
스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이것은 한마디로 억지 이며 궤변입니다.

그러나 스님의 진심어린 말씀이기 때문에 저는 몇 번이고 읽고, 몇 번이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국가적 사안이 널려있는데, 왜 운하로 나라를 시끄럽게 하느냐고 말씀하시는데 국가적 현안의 해결은 정부의 최소한의 의무입니다. 국가는 현안의 해결을 위해서 입법, 사법, 행정의 기능이 있는 것입니다.

운하는 국가적 사업임에는 틀림없으나, 운하 때문에 국가의 모든 사안이 위태로워질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막대한 정부의 예산을 쏟아 넣는 것도 아니고, 일단 시작되면 토목, 환경, 역사, 문화, 생태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서 종합계획을 세울 것입니다.

국가의 모든 기능이 운하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스님의 말씀을 속인들의 용어로 삼는다면, 그것은 「선동」입니다. 도대체 4대강을 복원하는데 무엇 때문에 국가적 안위가 위태로워집니까? 경부고속도로를 개설할 때 반대자들이 국민을 선동하는 말 가운데, 「국가의 안보가 위태롭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안보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스님 정말 숨이 차고 기가 막힙니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을 정적으로 여기듯 대운하에 집착할 경우 국민 모두가 불안해 질 수 있다.” 고도 하셨습니다.

스님.
이명박 정부는 국민 모두를 정적으로 여기지도 않을 것이며, 그 어떠한 정적과도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할 것입니다. 자기의 선입견으로 사물을 예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주관적 선입견이 사물을 왜곡해서야 되겠습니까.

수경스님.
한 번도 뵙지 못하고, 단 한마디 대화도 나누어 보지 않았는데, 스님이 쓰는 글 만보고 제 생각을 늘어놓는 저 또한 부질없는 것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님, 지리산 자락에 불어오는 많은 바람을 맞으면서 왜 이렇게 서러워 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낙선한 것은 전적으로 제 책임이며, 제 불찰의 결과입니다. 모든 것은 제부덕의 소치입니다.

그런데도 스님,
이렇게 하늘 가까이 떠있는 달과, 별을 보는 밤이면, 세상이 진정 두렵기도 합니다. 한사람에 대한 오해와 공격과 저주의 원인이 정작 본인과는 무관한데서 나온 것이라면, 스님 세상을 어디서부터 바로봐야할지 가르쳐 주십시오.

스님의 말씀대로 정말 「숨이 찹니다.」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요. 비록 수행자가 아닌 속인의 몸이라도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분간하기가 혼란스럽습니다. 다만 한 가지 모든 것이 제가 부족한 탓이며, 쉬어갈 줄 모르고 앞만 보고 가는 제 무지함과 우매함의 결과라는 것만은 분명 깨닫고 있습니다.

저는 스님께서 저의 낙선을 은근히 바라셨다는 것에 대해서는 참으로 제가 부끄럽습니다. 한사람의 정치인의 당락을 큰스님께서 마음에 두셨다니, 오히려 제가 민망합니다.

그러나 스님.
저는 지금껏 살면서 독재의 시대는 민주화를, 부패의 시대는 반부패를, 권력의 시대에는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내가 해야 할 일만 주장하고 실천해 왔습니다. 저는 제 생각에 골몰하기에도 바쁜 삶을 살았으니까요, 그것이 잘못되었는지 깊은 성찰의 시간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살아온 길이 정말로 잘못되었는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대운하에 대한 제 주장이 정말 잘못되었는지도 진심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스님의 글을 읽으면서 스님의 진정어린 구절구절에 대해서도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어보았습니다.

스님.
이제 끝낼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따라 이 산골에 바람이 세차게 붑니다. 진달래 꽃잎이 떨어지고, 며칠 전 심어놓은 고추모종의 밑동이 바람에 부러지고, 지리산 계곡의 모든 바람이 한곳에 모여 제가 있는 조그만 산골을 휩쓸고 지나가는 듯합니다.

그러나 스님, 바람은 언제나 지나가는 것일 뿐 한곳에 오래 머물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힘이 센 바람도 바람은 그저 바람일 뿐입니다. 오늘 이렇게 아픈 마음도, 지나고 보면 그저 그때의 아픔이었을 뿐일 것입니다.

이글을 끝내고, 다시 산자락을 돌 것입니다. 이름 모를 꽃들이 늘어서 있는 지리산 굽이굽이에 발자국을 남기며 비록 그 발자국 위에 내일 다른 사람 발자국이 겹치고, 바람이 또 쓸어가 버려도, 오늘 저는 지리산자락을 돌 것입니다.

수경스님.
진정 남북을 함께 살리고 대한민국을 살릴 길이 무엇입니까? 부족한 속인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신 가운데 중생을 제도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08.04.24 지리산 끝자락에서 이재오 드림.



2008.05.19  뷰스앤뉴스 정치  /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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