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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꾼들의 황금어장? 알고보니 ‘살풍경’







낚시꾼들의 황금어장? 알고보니 ‘살풍경’
[청소년, 강을 노래하다 ③] 충주 달천을 따라 새재를 넘다






간디교육연구소, 대안교육연대, 생태지평연구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환경운동연합 등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청소년 강강수월래단’이 4월14일 한강하류 강서습지생태공원에서 출발해 낙동강 을숙도에 이르는 47박48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50여명으로 구성된 강강수월래단은 최근 사회 이슈가 되고 있는 경부운하 구간을 걸으면서 자연 생태와 환경, 역사 등에 대한 글을 8차례에 걸쳐 <오마이뉴스>에 보낼 예정이다. 이글은 변형석 노리단 작은학교 교사가 대표 집필한다. <편집자주>























  
▲ 수주팔봉 수주팔봉에서 달천과 오가천이 만나 폭포를 이룬다. 비록 폭포는 인공적인 것이지만 이 지역의 경관은 빼어나다. 이 지역은 운하가 건설될 경우 사라질 것이 확실시된다.
ⓒ 변형석




 


자연은 모두를 치유하는 힘


생태계 복원의 핵심은 인간이 만든 인공적인 구조물과 오염의 원인을 모두 제거한 후 자연이 스스로를 치유하도록 놓아두는 것이다. 방조제 공사에만 6200억원을 들여 담수호(농업 및 생활용수로 사용가능한 물)로 만들려던 시화호는 1994년 공사완료 후 3년 만에 물고기 수십만 마리가 떼죽음을 하는 ‘죽음의 호수’가 되었었다. 이를 감당할 수 없었던 정부는 사실상 담수화를 포기하고 1997년부터 갑문을 열어 다시 바닷물이 드나들게 했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시화호는 생명을 되찾은 세계적인 복원 사례가 되었다.


정부와 안산시는 마치 자신들이 복원을 위해서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인 양 자랑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 곳에 생태 신도시라며 골프장 4개와 세계 최대규모의 유니버설 스튜디오, 자동차 테마파크 같은 것을 짓겠다고 한다. 이른바 ‘송산그린시티’. 인간들이 벌여놓은 환경적 재앙에 맞서서 자연 스스로 치유하며 10년을 보냈더니, 이제 거기에 골프장과 놀이공원을 지어, 인간들끼리 잘 놀아보겠다는 그 치졸한 개발지상주의적 발상에, 내가 자연이라면 분노했을 것이다. 인간은 어쩌면 그렇게 유아적인가.


환경영화제 사무국의 도움으로 보게 된 프레드릭 벡의 <위대한 강>이라는 애니메이션은, 위대한 자연과 그것을 황폐화시키며 성장하는 인간의 모습을 너무 아프게 대비시키고 있었다. 경이로운 생명의 보고였던 세인트 로렌스 강은 마구잡이 포획과 사냥, 운하건설과 개발로 죽어버렸다. 수천만 마리의 새들이 하늘과 땅을 뒤덮던 그곳은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내 눈물을 식혀주는 강바람에 너무 창피했다”




















  
▲ 물고기를 잡고 있는 아이들 어떤 물고기가 살고 있는 지를 알아보기 위해 물고기를 잡고 있는 강강수월래단 아이들. SBS <물은 생명이다> 팀이 취재를 나왔다.
ⓒ 변형석




‘청소년, 강을 노래하다’ 팀에서 청소년들과 있다보면 ‘어른’으로서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들의 질타와, 그들의 분노와, 그들의 슬픔이 꼭 내 탓인 것만 같아 가슴이 아픈 순간들. 노디가 쓴 이 한 편의 일기가 아프게 다가왔다.


 


5월 2일 – 노디(이윤선, 18세)


내가 강강수월래단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지루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강강수월래단을 하면서, 일상의 무료함을 쉽게 느끼는 내가 단 한 번도 ‘지루함’을 느낀 적이 없다. 나는 끈기와 인내력이 부족하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3일이나 4일 중, 집에 간다고 언제 울지 내기를 했다. 친구들은 도망치라는 문자를 보내고, 엄마조차 일주일 안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모두들의 고정관념을 깨고서 나는 아주 잘 적응해 잘 살고 있다.


길을 걷다보면 강을 끼고 있는 산을 자주 만난다. 그 때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사진기를 미처 챙기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휴대폰으로나마 사진을 찍는다. 한 번은 신발을 벗고 모래를 걸은 적이 있었다. 그 때의 모래 감촉과 강 냄새는 정말 최고였다. 그 날을 난 평생 잊어버릴 수 없을 것이다.


자연을 느끼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지만 강강수월래단은 그것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강강수월래단이라는 명칭처럼 우리는 단체이다. 그렇다보니 부딪히는 일은 한두 개가 아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공동체 생활이란 꼭 필요했지만 많이 힘들었다.


아침부터 좋지 않은 일로 심기가 불편한데 아무도 텐트를 걷지 않았다. 혼자서 텐트 걷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 날은 집에 갈 생각까지 했다. 이기적인 걸로 따지면 나를 따라올 자 없겠지만 ‘모두가 이렇게 이기적인 곳에서 도대체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자연도 느낄 만큼 느꼈고 운하를 왜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도 알았으니 충분히 가도 될 듯했다. 하지만 걷다보니 생각은 쉽게 바뀌었다.


화가 났다기보다는 속상한 마음이 가시지를 않아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쯤 울면서 걸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람이 나의 눈물을 식혀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제서야 나는 정말로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연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바라지도 않고 모두 주려고 한다. 나는 모두라고 칭하기도 창피한 ‘조’를 위해 텐트를 갠 것 하나로 모두가 이기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내 눈물을 식혀주는 바람에게 너무 창피했다. 첫 날, 자전거를 너무 오래 타 뼛속까지 아파오는 엉덩이와 허벅지를 달래어주는 바다 내음에게도 미안했다. 자연은 나를 위로해주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늘 내가 힘들어 눈물을 흘리는 곳에는 자연이 함께 있어줬다는 것을 깨달았다.


운하는 정말 미친 짓이었다. 사실, 운하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찬성 측 의견을 들으면 들을수록 사람은 끝없는 욕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확 와 닿았다. 제일 욕심스런 부분은 물을 3.4배에서 4.3배로 끌어올린다는 말이었다. 물이 부족하면 아껴 쓸 생각을 먼저해야 한다.


창피했다. 내가 어른이 되어도 저 생각을 먼저 할지, 나이 먹는 것이 두려워졌다. 일자리 창출, 비싼 땅값, 빠른 물류 이동.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는 자연에게 해주는 것이 고작 인간의 비참한 욕망들뿐인지 속상했다. 어른들은 우리보다 바보 같다. 왜 코앞의 현실만을 보는 건지 우리보다 일찍 죽으니 자기만 좋게 살다 가려는 생각인 것 같다. 일자리 창출, 비싼 땅값으로 돈을 번다고 한들 세금으로 다 내게 될 텐데, 생각하는 것들이 참 한심하다.


더 이상 이기적인 인간으로 살다가는 바보같은 어른들처럼 클지도 모른다. 나의 딸, 아들에게 그리고 그 뒤의 뒤 모든 핏줄들에게 지금 내가 본 아름다운 자연을 그대로 돌려줄 것이다. 나는 나 때문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하루하루 더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자연은 인간 없이 존재할 수 있지만, 인간은…




















  
▲ 충주댐 상류 중앙탑 공원에서 바라본 충주댐 상류. 충주댐 하류지역과 급격히 다른 황량한 모습이다. 물과 댐밖에 보이지 않는다
ⓒ 변형석




지구는 45억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인간은 고작 그 중 만 분의 일 정도를 지구와 살았을 뿐이다. 노디의 이야기처럼, 인간이 자연에 하고 있는 일이, 자연에 해를 입히는 것 말고 무엇이 있을까. 강강수월래단의 청소년들은 자연과 교감하는 그 다시없는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4월 25일 강강수월래단은 충주댐을 지났다. 충주댐의 전후로 마치 죽은 것과 산 것을 보는 마냥 느낌이 다르다. 구슬한(16·우다다학교)이는 댐으로 물이 막힌 구간에서 느끼는 답답함을 호소했다. 학교에서 도보로 금강과 영산강을 답사한 경험이 있는 슬한이에게 특히 도시와 함께 펼쳐진 강의 모습, 거대한 댐에 갇힌 모습은 삭막해보였던 모양이다.


실제로 충주댐 아래의 여강 구간은 넓은 습지와 자연하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충주댐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물밖에 없다. 멀리서 본 충주댐의 모습은 아름답다기보다 을씨년스럽다. 그 삭막한 풍경이 충주호 전체에 걸쳐있다. 소양댐 다음으로 많은 물을 담아놓고 있는 충주댐. 낚시꾼들에게야 좋은 어장일지 모르겠고, 차타고 관광 온 사람들에게는 이국적인 풍경일지 모르겠지만 걷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살풍경’이다.


한 쪽엔 깎아지른 도로, 한 쪽엔 가득찬 물밖에 없는 그 곳에 생명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들의 미적 기준이 바뀌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예전에는 충주호가 ‘내륙의 바다’라며 신기해하였다. 그곳을 좋은 드라이브 코스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살아있는 강을 보기 시작하면서, 강의 냄새를 맡으면서, 강의 옆을 걸으면서 그 생각이 모두 바뀐 것도 같다. 강강수월래단은 모두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


 


댐은 역사적, 자연적으로도 ‘재앙’




















  
▲ 우비를 입고 도보 중인 강강수월래단 조금씩 내리는 비에 우비를 입고 도보중이다.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부는 날은 초겨울 날씨만큼 춥다.
ⓒ 변형석




미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댐은 역사적·자연적으로도 재앙이다. 댐이 재앙이라는 사실은 세계 댐건설의 역사가 증명한다. 나일강에 건설된 아스완 하이댐은 그 대표적 사례다. 나일강의 잦은 홍수를 막기 위해 건설된 아스완 하이댐은 홍수를 막은 대신 나일강 삼각주와 강 주변의 토질을 황폐화시켰다. 비옥한 토지는 홍수 때의 범람으로 점토·실트와 같은 퇴적물이 쌓인 결과다. 중학교 때 배우는 상식이다.


홍수를 막겠다고 댐을 쌓은 결과 고영양분의 실트는 댐에 갇혀 바닥에 쌓였고, 토양에 공급되는 것은 오폐수들이었다. 축복받은 비옥함으로 인하여 세계 문명 발상지 중 하나였던 나일강 하구는 세계에서 비료를 가장 많이 써야하는 지역으로 변했고, 아스완 하이댐은 그냥 둘 수도, 허물 수도 없는 골칫거리가 되었다. 세계 최대규모의 중국 삼협댐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건설 중인 삼협댐에 이미 시작된 오염 때문에 400만명을 추가로 이주해야할 상황이라고 한다.


“중국의 수문학자들은 댐(삼협댐)을 건설해야 하는 (홍수제어 이외의) 다른 이유들로 수력 발전, 하상 교통의 발달, 양식 어업, 관광, 생태계 보호, 환경 개선, 개발 지향적 주민 재배치, 물공급의 원활 그리고 남쪽에서 북쪽으로의 물 이송 등을 들었다.”



마크 드 빌리어스가 쓴 <물의 위기>라는 책에 있는 이야기다. 어디선가 자주 보던 이유들이다. 빌리어스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이 이유들은 알고 보면 아스완 하이댐 건설자들과 미 개척국의 댐 홍보요원들이 아스완댐을 위해 오래 전에 내놓았던 것들과 똑같다. 우습게도 중국 최고의 관광지를 물 속에 넣고 그저 평범한 호수를 만들면서 관광사업을 댐의 혜택이라고 말한다.”


개발중심의 논리는 어디서나 같았던 모양이다. 한반도 운하를 만들겠다고 하는 이들의 주장은 마치 새로운 것인 양 하지만 알고 보면 수십 년도 더 된 낡은 것이다. 한반도 운하는 한반도의 모든 강물을 댐에 가두겠다는 것이다. 운하 찬성론자들은 “한국 최고의 관광지를 물 속에 넣고 그저 평범한 호수를 만들면서 관광사업을 운하의 혜택이라고 말 할” 것이다. 노디가 말했듯이, 물이 부족하면 물을 아낄 고민을 해야한다. 모두가 청정이니 친환경이니 외치는 시대에, 강변이 아닌 진지한 성찰과 노력이 필요하다.


 


천연기념물 330호 수달이 사는 ‘달천’




















  
▲ 수달의 똥 달천 인근에서 찾은 수달의 똥. 고기를 잡아먹고 남은 뼈가 대부분이다. 달천에서는 수달의 흔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변형석




충주댐을 지나자마자 경부운하 구간으로 예정된 달천으로 들어섰다. 달천은 남한강과 합쳐지는 지류하천으로, 한국에 이런 좋은 강이 있었나 싶을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달천은 예로부터 좋은 한국 최고의 물맛을 자랑하는데, 물맛이 달아 ‘달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달천은 충주 시민들의 식수원이기도 하다.


염우 충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님의 도움으로 달천에서 처음으로 아이들과 수질측정을 해보았는데, 100점 만점에 85에서 95점까지의 후한 점수가 나왔다. 달천에서 문경새재를 넘어 조령천까지는 계속해서 깨끗한 물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달천에는 수달이 산다. 천연기념물 330호 수달. 염우 충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님의 도움으로 달천 수주팔봉 근처에서 쉽게 수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바위들을 잘 살펴보면 수달의 똥을 발견할 수 있다. 주로 생선의 뼈로 된 수달의 똥은 똥이라기보다 멸치를 갈아놓은 것 같은 모양이었다. 수달은 30km 정도의 구역이 확보되어야 한 마리가 살 수 있는, 하천 생태계의 최종 포식종이다. 거꾸로 수달이 산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한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수주팔봉에서 가진 강을 노래하는 두 번째 시간. 시로 강을 노래해본 솔비의 시가 강을 따라 걷는 아이들의 마음을 조용히 전해준다.


 


미안 – 박솔비


항상 같은 곳에서
같은 속도로 흐르고


아무런 소리가 없어서
모르고 있었어


관심이 없는데
핑계일지도 몰라


미안해
핑계도 무관심도
모두 다


 


충주부터 문경까지는 배가 갈 수 없다




















  
▲ 한반도 운하 예정지를 설명하고 있는 염우 충주환경련 사무처장 달천 수주팔봉 앞에서 한반도 운하 예정지를 설명해주고 계신다. 달천으로 들어서면 강폭과 수심이 확연히 낮아지고 사행천이 발달하여 선박 운행은 거의 불가능하다.
ⓒ 변형석




비단 그곳에 백두대간의 산줄기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곳에는 배가 뜰만한 강이 없다. 모든 것은 인공적인 방식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4월 26일 달천이 시작된 곳부터 5월 4일 문경 점촌까지의 구간은 강폭이 100m에서 200m 내외이고, 수심은 1m가 안 된다. 10여개가 넘는 다리를 보았으나 그 중 배가 통과 가능한 다리는 거의 없었다. 강의 형태도 전형적인 사행천(뱀 모양으로 구불구불한 하천)으로, 직강화하지 않으면 배가 운행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이곳에 와서 보면, 대체 어디다 배를 띄우겠다는 것인지 의아할 수밖에 없다. 팔당호에서 충주까지의 여강도 강의 수심으로 보아 배를 띄우기 위해 엄청난 공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곳은 공사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야할 판이다. 추진 측도 그 사실을 잘 알아서인지 횡설수설, 갈팡질팡이다.


어디에다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아직도 구체적인 것이 없는 채로 여론에 떠밀려 표류중이다. 와서 보면 안다. 한강과 낙동강은 ‘그냥’ 연결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80km에 이르는 대규모 인공 운하를 만들지 않는 한 한강과 낙동강은 연결될 수 없다. 터널을 뚫건, ‘스카이 라인’을 만들건, 그 물을 채우기 위해 달천과 조령천은 메마를 것이며, 이 아름다운 절경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이화령을 넘고, 지치고 힘든 생활




















  
▲ 예진이와 노디 강강수월래단에 참가중인 예진(17·왼쪽)이와 노디(18·오른쪽). 둘 다 민들레 사랑방에 다니고 있다.
ⓒ 변형석



 

백두대간을 넘는 길은 이화령 옛길을 택했다. 태백산맥의 고개에 비하면 그리 높지 않은 고개이지만 20여일을 걸어온 아이들은 무척 힘들어 보인다. 아이들 사이에 큰 다툼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텐트를 치고 걷는 일부터 함께 모이는 일, 자기 짐 안챙기는 일, 짜증내기 등등 함께 생활하면서 생기는 모든 것이 각자에게 큰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성미산학교 아이들과 종현이 사이에도 작은 말다툼이 있었던 모양이다. 종현이는 텐트 칠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텐트를 치고 나면 냅다 자리잡는 성미산학교 아이들에게 이미 화가 났던 모양이고, 생활에 좀 익숙해져서 텐트를 치던 성미산학교 아이들은 이제야 일을 하는 사람 안하는 사람 눈에 들어온 모양으로, 종현이에게 텐트를 안 친다고 뭐라 한 모양이다.


아침 모임시간, 저녁 정리시간, 행사시간, 아무리 소리치고 모이라고 해도 모이지 않자 혜지와 양갱은 화가 많이 났다. 결국 5월 2일 저녁, 소감 나누는 시간에 혜지는 눈물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답사팀은 답사팀대로 힘들다는 하소연을 했지만 분위기 파악을 못해 따가운 시선만 받았다.


떠날 때에는 항상 버려진 휴지와 소지품들이 있어서 제발 이러지 말자고 수없이 이야기하지만 되지를 않는다. 나도 교사로 있으면서 비슷한 일이 많았기 때문에 아는데, 사실 나쁜 마음으로 쓰레기를 버리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인데, 결국 해결방법은 누군가 마지막으로 나오는 사람이 신경쓰는 수밖에 없었다. 3년 동안 뒤치다꺼리 하며 노력한 결과, 이제는 마지막 사람이 교사들이 아니라 아이들 중 누군가가 되었음을 기뻐했던 적이 있다(사소한 것에도 기뻐한다고 타박할 사람이 있겠지만 ‘교사’의 행위와 ‘동료’의 행위는 미치는 영향력이 판이하게 다르다). 


30℃를 넘는 때이른 무더위와 비바람 부는 초겨울 추위가 왔다갔다하는 날씨도 강강수월래단을 괴롭힌다. 수주팔봉 가는 길에는 비가 많이 내렸는데, 밤에도 비가 와서, 방수가 되지 않고 물이 새는 텐트에서 잤더라면 큰일이 날 뻔했다. 이 날은 둥실과 양갱이 불쌍한 표정으로(!) 이웃 토계리의 경로당을 빌려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관계맺음의 어려움


10대들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관계맺음에 관한 것이다. 특히 함께 무엇인가를 해야할 때 십대들은 그 스트레스를 잘 견디지 못한다. 사람들은 다 생활방식이 다르고, 다 다른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또 갈등이 생겼을 때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도 잘 모른다.

10대들 사이에 폭력이 난무하는 이유는 권위와 권력에 의존하지 않고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전 캠프에서 오랜 기간 동안의 회의가 필요했던 이유는 갈등과 이견을 조율하는 법을 배워야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종현이는 회의 내내 투덜거렸지만 지금은 훨씬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진남역 자전거 철로 문경 진남역은 사용하지 않는 철로를 자전거 철도로 이용하고 있다. 강강수월래단 단원들이 철로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 변형석




갈등을 조율하는 것뿐만 아니라 관계를 적절하게 유지하는 것도 무척 어려운 일이다. 노디와 예진이는 특히 힘든 모양이다. 노디는 한두 사람과 절친한 관계를 만들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친구이고, 예진이는 너무 깊이 친해졌다가 상처를 많이 받아 지금은 거리를 조절하려고 하는 친구다. 노디와 예진이는 민들레 사랑방에서 친해졌는데, 노디는 거리를 조절하는 예진이에게 서운한 모양이고, 예진이는 자신에게만 기대는 노디가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예진이와 노디 같은 케이스는 십대들에게서 흔히 보인다. 연애할 때의 역학과 비슷하기도 한데, 예진이와 노디는 달라보이지만 결국 똑같은 모습의 양면이다.


남자 아이들 사이에는 관계가 완전히 망가져 껍데기만 남은 데 반해서, 여자 아이들 사이에는 연애에 가까운 관계의 집중과 집착이 문제다. 나는 이런 친구들에게 ‘동료’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계속 권한다. ‘전부’가 아니면 ‘전무’인 관계는 어떤 경우에도 건강하지 않다. 그러나 그런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어른들도 어려운 일임은 분명한데, 내가 보기에 이 관계의 어려움은 우리의 국가공교육 시스템과 도시환경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노디와 예진은 그 상처를 반복하고 있다.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관계’는 의미없는 행위다. ‘관계’를 통해 학습하는 것이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방과후’의 일이고, ‘방과후’의 일 중에서도 가장 쓸데없는 일에 속한다. 동료들과의 관계는 경쟁의 관계이거나 지배의 관계다. 그러니 정말 뜻 맞는 몇몇 친구들 말고는 관계가 넓어질 여력도, 의미도 없다.


학교의 밖에는 그것의 연장인 ‘학원’ 정도가 있을 뿐이고, 그것 말고는 도시적 환경 안에 어떤 생활의 집단도 없다. 마을 공동체는 40년 만에 완전히 파괴되었고, 그것을 대체할 공동체는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한부모 가정이 절반이고, 형제는 아예 없거나 많아야 하나다. ‘관계’를 학습할 공간이 모두 사라진 셈이다.


강강수월래단은 그런 점에서 매우 색다른 관계의 공간이다. 초등학생부터 50세까지의 함께 먹고사는 풍성한 공동체가 느닷없이 열린 것이다. 많은 친구들이 기대했던 만남이지만, 열망과는 달리 생활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아마도 지금이 그 어려움이 가장 심각해지는 시점인 것 같다. 여행을 하며 배우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를 통해 배우는 일이다. 강강수월래단 어느 곳에도 공식화되어 있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그 배움에 속앓이를 하는 것이리라.


노디와 예진이의 일은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닌 것도 같다. 예진이가 일기에 남긴 에피소드 하나를 보더라도.


 


5월 4일 일요일 – 예진


오늘의 사건! 이건 노디 언니가 좀 짱이다. 두 번째 쉬는 시간에 노디 언니가 오줌이 마렵다고 내 손을 잡았다. 나도 마침 마려워서 같이 공중 화장실에 갔다. 그런데 너무 냄새가 나서 다른 곳에 가기로 했다. 선택한 장소는 그 화장실 뒤. 앞 빼고 옆, 뒤 모두가 뚫려있고, 도로에 다니는 차들도 보였다. 운전자들과 눈도 마주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쌌다. 그런데 윤선이 언니가 많이 급했나 보다. 내가 싼 것과 비교를 했다. 옆에서 윤선이 언니가 보고 한 말. “내가 싼 건 한반도고, 니가 싼 건 제주도야.”


 


진남역 자전거 철로


문경지역은 탄광이 많은 지역이었지만 오래전에 폐광이 되었고, 그때 이용했던 철로들이 남아있다. 이 철로를 이용해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 중 하나가 진남역이다. 그 철로의 모습이 참 애틋하고 인상적이다.


5월 3일은 진남역 부근에서 열흘만에 휴식일을 보냈다. 낮에는 문경종합온천에 가서 때도 벗기고, 김밥천국에서 돈까스도 시켜먹었다. 밤에는 <위대한 강>이라는 영화도 보았고, 노래방 기계로 밤늦은 시간까지 열심히 놀았다. 5월 4일 문경 점촌에 도착하는 것을 보며 나는 다시 서울로 향했다.


 


동훈이의 일기를 보며 마음이 아프지만 모두 힘내서 걷기를!


지루함의 연속, 그 속의 보석 – 백동훈(18)


자신을 살리기 위해 남을 죽이는 인간, 너무나 많은 욕심과 너무나 무책임한 행동들이 나를 부끄럽게 하고 나도 그러지 않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나 자신을 부정하고 싶다. 하지만 인간도 조금 더 자연에 가까워 질수 있다고 본다. 나 자신이 먼저 평화가 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싫다. 나 하나로 모든 나쁜 것이 시작됐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없어지면 모든 나쁜 게 사라질 테니. 그렇지만 그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아니 죽을 때까지, 우리가 자연과 모든 생명이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순례는 나에게 의미 있는 순례이다. 드디어 이 순례의 의미를 찾(은 것 같)다.


오마이뉴스 사회 2008.05.09 | 변형석 (dcy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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