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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길 “신진보 패러다임으로 당권 도전”
















송영길 “신진보 패러다임으로 당권 도전”
[밀착 인터뷰] 난세 속에서도 3선 일궈낸 송영길
 

 













▲386출신의 대표주자 송영길 의원.    ©김상문 기자


지난 18대 총선에서는 여러 특이현상이 벌어졌다. 그 중에서도 386출신과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의 몰락은 많은 우려와 반성 속에 정치 역사상 커다란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다. 한편 총선에서 이 같은 기류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살아남은 당선자가 있어 눈길을 끈다. 한나라당의 압승 구도였던 인천 지역에서 유일하게 3선에 성공한 그는 ‘386’과 ‘운동권출신’이라는 꼬리표도 부담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지난 5월2일, 기자는 그를 직접 만나 여러 정치적 견해를 들어봤다.











한나라 압승으로 끝난 인천서 유일하게 3선 성공…“맨발로 계양산 100번 올랐다”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수도권에서 압승을 거둔 가운데 인천도 거의 모든 지역구에 한나라당 깃발이 꽂혔다. 그러나 단 한 곳 계양구만은 통합민주당이 수성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이 지역에서 3선에 성공한 송영길 의원은 계양구민이 ‘존경스럽다’는 표현까지 쓰며 남다른 감회를 전했다. 송 의원은 당선 이후에도 지역에 머물며 이곳저곳 인사를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고 한다. 기자가 송 의원의 

사무실을 찾은 이 날은 비서관의 생일이었는지 케익까지 준비하는 섬세함도 엿보였다.


세련된 인상은 못 되도 언제나 우직해 보였던 그는 여러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며 말을 이어갔다.



다음은 송 의원과 가진 일문일답이다.













▲최고위원 자리에 도전할 뜻을 밝힌 송영길 의원    ©김상문 기자


– 

인터뷰 일정 잡는데 애를 먹었다. 선거가 끝나고 많이 바빴나?



▲ 정신 없었다. 특히 이번 선거는 대부분 각개전투식으로 진행되다보니 당 대 당 구도보다는 후보자들이 알아서 전장에서 싸워야 했다. 그러다보니까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열심히 선거운동에 임한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나를 도와준 여러분들게 인사도 하고, 선거가 끝났으니 진행 중인 지역현안도 둘러봐야 해서 눈 코 뜰새 없었다.


17대 총선 당시는 사실 탄핵 바람으로 열심히 선거운동에 뛰어들 수 없었는데, 이번에 좀 달랐다.



– 이번 18대 총선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 대선결과 나타났던 득표율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한다. 사실 더 선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총선 전에 민주당과 통합을 이뤄냈고, 손학규 대표 체제로 긍정적인 변화를 노렸는데 여러 변수가 있었다. 특히 한나라당의 신 관권선거가 큰 변수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선거기간 중 뉴타운을 방문하고,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나라당 당선자들간의 논란이 보여주 듯, 허위사실 유포 등 옳지 못한 선거운동 전략으로 피해를 본 이들도 많았다.


겸허하게 반성할 부분도 있지만 안타까운 점이 없지 않다.



– 인천은 한나라당 압승이었다. 그럼에도 3선까지 홀로 지역구를 지켜낸 것이 눈에 띈다. 비결이 있나?



▲ 비결까지는 모르겠다. 그냥 계양구민들이 존경스럽고 고맙다. 사실 나는 이 지역에 정치를 하고자 온 것이 아니었다. 노동운동하던 시절을 계기로 86년도에 이곳에 왔는데 벌써 20년이 흘러 지역에서 정치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감회가 남다르다.


내 고향은 전남이지만 이 곳이 제 2의 고향인 셈이다. 여기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나에게는 역사성 있는 지역구였다.


때문에 이번 선거를 앞두고 다른 당직도 맡지 않고, 대선이 끝나자마자 지역으로 왔다. 선거를 앞두고 우리 지역 ‘계양산’을 100번은 올라갔다. 대선패배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있었고, 몸으로 뛰고 싶었다. 맨발로 산을 하루가 멀다 하고 오르며 의지를 다져나갔다. 3선에 성공한 것도 기쁜 일이지만, 나 개인의 3선이 아니다. 김근태 의원 등 주축 인물드이 대거 낙마한 마당에 나마저 떨어질 경우 함께한 이들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다행스럽고 기쁘다.











‘386 운동권’몰락에도 끄덕 없이 승승장구…“최고위원 자리 도전할 것”













▲송영길 의원은 최근 도마위에 도른 한미FTA에 대해 “정면돌파 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상문 기자


– 3선까지 지내며 지역구는 어떤 발전이 있었나?



▲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했다. 처음 계양구는 인천 내에서도 상당히 낙후된 편에 속했었다. 우선 교통, 환경, 교육 부분이 많은 개선과 발전을 가져왔다. 특히 교통은 지하철이 놓이고, 공항철도가 연결되는 괄목할만한 발전이 있었다. 지금은 경인운하 추진에 큰 욕심을 두고 있다. 현재 경인운하가 이명박 정부가 추진 중인 대운하의 인질이 된 양상으로 어려움이 많지만 대운하와는 전혀 다른 맥락이다. 고려시대부터 추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을 만큼 오래된 숙원이다. 나는 이명박 정부의 검증되지 않은 ‘경부운하’는 반대하지만, 경인운하는 꼭 추진하고 싶다.



– 선거 기간 중 특별히 기억 남는 일들이 있는가?



▲ 맨발로 계양산을 수도 없이 올라 다녔던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가슴 아픈 것은 공천과정에서 탈락한 신계륜 선배나 총선에서 낙마한 임종석이나 우상호 등 친구들에게 빚진 마음도 없잖아 있다. 그 친구들은 당직을 맡아가며 선거과정에서 지역구에 올인할 여력이 없었다는 것도 안타까운 부분이다.



– 임종석, 우상호 의원이 거론되서 말인데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대거 낙마했다. 송 의원도 태생적으로 같은 입장인데 ‘운동권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부담 되진 않나?



▲ 우리 당의 최재성 당선자 등 낙마하고도 다시 살아온 사람도 있잖나. 내 생각에도 7,80년대 담론으로는 지금의 세대를 끌어 안는데 한계가 있었다고 본다. 앞으로 4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신임을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 더 공부해야 하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서민 대중과 아픔을 나눠야 한다. 국회에 있다 보면 여러 시간과의 싸움이 있기도 한데 이 같은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4년간의 의정활동 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같은 꼬리표도 부담스러울 게 없다.



– 당권 도전을 시사한 것으로 아는데 결심한 계기가 있나?



▲ 도전을 떠나서 맡을 만한 사람이 몇 명 없다고 판단이 들어 결심하게 됐다. 당 대표는 아니다. 내 나이도 있고, 선배들도 여럿 계시니까 말이다. 이번에 최고위원에 도전할 생각이다.











“7,80년대 패러다임 지금 세대 끌어안을 수 없어”…“한미FTA 정면 돌파해야”













▲’유능한 진보정당’을 꿈꾸는 송영길 의원    ©김상문 기자


– 새로운 진보, 이른바 ‘신진보’라는 말이 자주 거론된다. 뭘 의미하는가?



▲ 7, 80년대 패러다임을 극복하자는 것이다. 보수에서는 ‘뉴라이트’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올드레프트’의 변화를 의미한다.


기존의 패러다임은 사회구성체적인 ‘막시즘’등에 영향을 받아 왔는데, 때문에 계급구조에 대한 고민이나 민주 대 반민주 구도 등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한미FTA’를 찬성하듯이 당면한 ’세계화‘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면으로 부딪쳐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문제나 한반도문제도 기존 햇볕정책의 틀 속에 주변국과의 효과적인 개선 노력 등이 있어야 한다. 지금의 이명박 정부는 너무 편향된 외교정책을 펴다보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구체적인 정책 속에서 ‘비판견제세력’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대안세력 대체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추상적 패러다임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고 국민 속에 들어가 실질적으로 손에 잡힐 수 있는 유능한 진보정당이 되어야 한다.


중국음식점에서 새롭게 등장했던 ‘짬짜면’이 그러하듯 이제는 정치문제에 있어서 견제만 고집할 게 아니라 교집합이 될 만한 사안도 있다고 본다.



– 새 정부 청와대 인사들의 재산관련 논란은 어떻게 보나?



▲ 과거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부를 향해 ‘아마추어’ 라고 말했지만 지금의 이명박 정부는 ‘생초보’인 것 같다. 무엇보다 부정직한 것 같다. 대통령부터 정직하지 않으니 대변인이든 밑에 보좌진들까지 말을 바꾸고 얼마나 우스꽝스럽나. 이 대통령이 ‘747 공약’도 말을 바꾸며 폐기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지 않나. ‘노명박 정권’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노무현은 그래도 ‘일관성’이라도 있었다.











“임종석·우상호 등 낙마한 친구들에게 빚진 마음”…“MB정부는 ‘생초보’다”













▲‘비판견제세력’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대안세력 대체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송영길 의원.   ©김상문 기자


– 취임 후 두 달을 넘긴 새 정부의 국정운영을 어떻게 바라보나?



▲ 노무현 정부 당시 소위 지나가는 멍멍이가 죽어도 노무현 때문에 죽었다고 그럴까봐 겁이 날 정도였다. 어디선가 불이 나도 그게 걱정이었다. 맹목적인 마녀사냥 분위기에 화도 났지만 야당이 되고 나니 더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 우리가 과거 한나라당식으로 공격하자면 공격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 때보다 훨씬 강력한 여당이 된 한나라당이다. 누구한테 핑계 댈 수도 없는 집권 여당이 됐다.


무한책임을 져야할 입장이 된 것이다. 나는 우리 통합민주당이 과거 한나라당처럼 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국정 파트너로서 들어줄 건 들어주고 대운하 같이 단호하게 막을 것은 막아야 한다고 본다.



– 한미 FTA 문제를 두고 당내 격론도 오가는 등 이견이 있다. 어떻게 보나?



▲나는 한미FTA 불가피론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다만 노무현 정권에서 FTA 문제를 마무리 지었으면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이제는 수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Yes’냐 ’No’냐 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체결이 됐으면 정면으로 빠르게 돌파해 선점효과를 가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노무현 정권 당시 졸속체결 논란도 있었지만 세계화에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한 정면돌파가 필요했다.














▲”국정 파트너로서 들어줄 건 들어주고, 대운하 같이 단호하게 막을 것은 막아야 한다”는 송영길 의원    ©김상문 기자


– 미국산 

쇠고기 개방 논란이 뜨겁다. 어떻게 보나?



▲ 2003년 광우병 발생 당시 미국 쇠고기 개방을 스톱시켰다. 중간에 합의를 다시 했는데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살코기를 대상으로 한 부분개방이었다. 그런데 당시 뼈조각이 나왔다고 전량을 돌려보냈었다.


나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100%를 얻으려다 100%를 잃은 꼴이 된 것으로 봤다. 이 역시 노무현 정부 때 마무리 했으면 노 전 대통령의 자주적인 태도 등을 비춰 봤을때 시민단체 등 비판요소가 많았겠지만 좀 더 나은 조건에 합의를 했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 정치 입문 후 지금까지 의정활동을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며 가장 보람 있었을 때는?



▲ 초선 시절 6.15 남북정상회담이 성사 됐던 것이 내 역사적 소명을 이뤄냈다는 것에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 또한 친일 진상규명과 관련한 법률을 직접 주도해 통과 시켰다는 것도 기억에 남는다. 친일 후손들이 땅 반환 소송에서 승소하는 등 황당하고 어이 없는 일들이 많았는데 이를 개선하기 위해 반민족 행위자 재산반환 문제해결도 주도한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상기시켜 보면 ‘상가 임대차 보호법’을 추진한 것, 이라크전 반대투쟁을 하면서 피랍사건 당시 샘물교회 구출대책위원장을 하며 아랍에 대해 알게 된 경험들이 모두가 보람이고 정치적 자산이 되어가고 있다.



브레이크뉴스 정치  2008.05.05 이광표 기자(pyoyoy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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