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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대운하? 자연파괴는 자기파괴

새만금·대운하? 자연파괴는 자기파괴

〈헤겔 자연철학1·2〉
게오르크 헤겔 지음·박병기 옮김
나남·1권 3만8000원, 2권 2만8000원


자연=물질 계몽주의 자연관 맞서 생명·정신 아우른 총체적 사유
자연은 ‘타자성 속의 자기’주장



지난 정부가 멀쩡한 바다에 까닭 없이 둑을 쌓아 그 비옥한 갯벌의 온 생명을 죽이더니, 새 정부는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수만 년을 저 홀로 흘러온 한강과 낙동강을 운하로 잇겠다고 야단법석을 떠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그들은 도대체 자연을 무엇이라 생각할까 묻고 싶어진다. 물류와 관광을 위해 강을 운하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람들은 물을 무엇이라 생각하며, 땅을 사랑한다고 여기저기 필요치도 않은 땅을 그리도 많이 사들이는 사람들은 땅을 또 무엇이라 생각할까?

일찍이 하이데거는 기술적 사유가 지배하는 우리 시대에 자연은 단지 에너지와 원자재의 창고 정도로만 생각된다고 탄식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철학자의 충정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나 자신을 포함하여 우리 시대의 철학자들이 남 탓하듯이 시대를 탓할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자연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는, 우리 시대의 복부인들이나 철학자들이나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부터 분명한 일이지만 자연철학은 형이상학의 관문이었다. 자연을 전체로서 생각하려는 사람은 필경 자연을 넘어가서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에 대한 사유가 허황된 거대담론이라 매도되는 우리 시대에 철학자들은 자연을 전체로 생각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철학자 행세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극소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자연이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그만둔 시대가 우리 시대이다.

그 대신 자연은 오로지 과학적으로만 탐구되고 기술적으로 관리된다. 하지만 과학적 인식과 기술적 조작의 대상이 된 자연은 기본적으로 도구화되고 사물화된 자연이다. 철학사적으로 보자면 그것은 본질적으로는 자연을 정신의 타자로 간주하는 계몽주의적 자연관이다. 새만금이나 경부운하는 그런 계몽주의적 자연관이 극단적으로 천박하게 나타난 현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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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대에 헤겔의 <자연철학>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은 오랜 가뭄 끝에 듣는 비 소식처럼 감격스러운 데가 있다. 이 책은 헤겔이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을 출간한 뒤에 자기의 철학을 집대성하여 백과사전의 형태로 펴낸 <철학적 학문의 백과사전 강요>의 제2부에 해당한다. 헤겔 연구자들이 종종 <엔치클로페디>(Enzyklopadie)라고 줄여 말하는 이 책은 논리학, 자연철학 그리고 정신철학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헤겔은 하이델베르크 시대 이래 이 책을 바탕으로 대학 강의를 진행하면서 자신의 이론철학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하려 했다.

이번에 번역된 <엔치클로페디>의 제2부인 <자연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에 비길 만큼 방대하고 체계적인 저술인데, 여기서 헤겔은 자연을 사물적 타자로 간주하는 계몽주의적 자연관을 넘어서기 위한 거인적인 노력을 보여준다. 데카르트가 정신과 자연을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두 개의 실체로 나눈 뒤에 근대 철학은 전반적으로 데카르트적 이분법에 따라 자연을 기계적 법칙에 따르는 물질적 존재로 고찰했다. 이를 통해 자연은 모든 낡은 신화에서 벗어나 합법칙적인 인식 대상으로 우리 앞에 마주 서게 되었지만, 자연에는 물질만이 아니라 생명도 있는 까닭에 그것을 단순히 물질이나 기계로만 치부하는 것은 지나치게 일면적인 자연관이 아닐 수 없었다.

칸트의 <판단력 비판>이 사물적 자연을 넘어 유기체로서의 자연을 사유할 수 있는 길을 연 뒤에, 독일 관념론은 물질과 생명은 물론 정신과의 관계까지 포함하여 자연을 참된 총체성 속에서 사유하기 위해 비상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헤겔의 <자연철학>은 그 마지막 성과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그는 공간 및 시간론에서 시작하여 역학과 물리학 그리고 화학과 동식물의 유기체론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모든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자연을 그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철학적으로 해석해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연에 대한 총체적 관념을 이끌어내려 하였는데,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연이란 타자존재 속에 있는 이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단순한 물질의 총체가 아니라 외화된 정신, 곧 타자존재 속의 자기이다. 그런즉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자기를 파괴하는 것이요, 인간이 자연을 학대할 때, 인간의 정신도 병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헤겔의 자연철학은 거의 두 세기 전의 과학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자연에 대한 철학적 통찰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눈부시다. 인간이 단순히 자연의 착취자나 파괴자가 아니라 자연을 지키는 목자가 되기 위해 우리는 헤겔의 통찰을 오늘에 맞는 방식으로 이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이어가려면 먼저 돌아가 읽어야 한다. 읽기 어려운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이 방대한 책을 세세한 주석까지 달아 정확하게 번역해낸 역자의 노고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면서, 이 부박한 시대에도 진지하게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한겨레 2008.04.26

김상봉/전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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