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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반(反) 운하의 정치구도




[김수종 칼럼]반(反) 운하의 정치구도











반(反) 운하의 정치구도
김수종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

봄이 화창하니 걷고 싶어질 때다. 광화문에서 점심약속을 끝낸 후 청계천으로 내려갔더니 많은 시민들이 나와 봄을 즐기는 광경이 보였다. 물이 시원스레 흐르고 버드나무가 파랗게 싹을 틔웠다. 사람들의 얼굴표정이 밝았다.
엉뚱한 호기심이 떠올랐다. “저 사람들이 청계천을 걸으면서 이명박 대통령을 생각할까?” “청계천과 이명박 대통령을 연상하는 사람들은 ‘경부운하’ 건설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을까?”
총선거가 끝난 후 ‘경부운하’ 추진이 어려워졌다는 신문 방송의 해설이 쏟아진다.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긴 했지만 총선이 만들어놓은 정치구도가 이명박정부와 운하추진세력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방대한 운하사업을 추진하려면 수많은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어야 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18대 국회 안에는 운하반대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포진하게 되어 있다.
18대 국회의 특징은 보수화이다. 한나라당 의원 153명을 포함하여 선진당, 친박연대, 보수성향 무소속까지 합치면 200명에 이른다. 이명박정부의 보수정책을 추진하는 데 유용한 에너지이다.

찬성 의원 47명, 반대 135명
그러나 운하를 놓고는 사정이 다르다. 박근혜 의원의 지지세력은 한나라당 안에만 33명이라고 한다. 당 밖에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이 있다. 이 세력은 이명박 정권의 국회운영에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었다.
그런데 박근혜 의원은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에서 운하를 반대했다. 원칙을 강조해온 박 의원이 말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그를 압박할 수 있는 것은 영남의 민심이 운하추진을 강력히 요구하는 것인데, 그런 계기가 올지 의문이다.
자유선진당도 운하건설에 찬성하기 어렵다. 이회창 총재는 뒤늦게 대통령선거에 뛰어들면서 경제를 얘기했고 운하계획을 신랄히 비판했다. 게다가 대전 충남에서 선출된 소속 국회의원들이 운하를 지지할 마음이 동할 것 같지는 않다. 정치적으로 박근혜 의원보다 반대입장 고수가 훨씬 편하다.
민주당의 운하반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반대해서 정치적으로 잃을 것이 없다. 소수 세력이지만 민노당과 창조한국당도 반대한다. 특히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대표는 총선공약으로 ‘경부운하 저지’를 내걸고 ‘운하 전도사’라는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을 꺾고 승리했다. 비록 1개 선거구의 이벤트였지만 이재오 의원의 낙선은 운하추진의 엔진에 상처를 줬다.
전염성은 조류독감 같은 질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론도 계기가 되면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전파력을 갖는다. 총선 후 여론조사를 보면 경부운하 반대가 과반을 넘었다.
새로 당선된 18대 의원들의 의견을 보면 더욱 어지럽다. 한국일보가 당선자 299명 중 2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운하반대가 135명(53.8%), 찬성이 47명(18.7%), 모름 및 무응답이 69명(27.5%)이었다.
이 조사에 응한 한나라당 당선자 129명 중 찬성은 43명이었고 반대가 23명, 모름/무응답이 63명으로 여당 의원들의 마음도 유동적이다. 강재섭 대표도 신중하다. 여당 중진인 김형오 의원이 “운하는 지금 거론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고 차기 리더십을 노리는 정몽준 의원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언급했다. 본심은 모르지만 관심은 여론이다.
필자는 누가 뭐래도 이명박 대통령을 탄생시킨 일등공신은 청계천이라고 본다. 그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공약으로 당당하게 청계천 복원을 내걸었고, 시장에 당선되어 그 일을 해냈다. 그 아이디어와 추진력이 대통령선거전에서 ‘이명박 인기’의 초석이 되었고 ‘경부운하’를 띄우는 발단이 되었다고 본다.
비록 한나라당은 총선에서 경부운하를 정식 공약으로 당당하게 내세우지 않았지만 경부운하는 이명박정부의 상징공약이다. 공약을 포기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결단일 수 있다.
경부운하는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지 중간선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운하를 포기하거나 유보하고 다른 정책에 에너지를 집중할 것인지, 아니면 무리해서라도 이 상황을 뚫고 운하로 갈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당선이 100% 위임 아닌데
그러나 운하문제는 현실적으로 정치적 논쟁을 벗어나기 힘들다. 청와대와 여당은 경부운하를 놓고 경제적 측면과 환경적 측면의 타당성과 부작용은 물론 정치적 측면도 숙고할 필요가 있다.
선거는 후보나 정당의 모든 정강과 정책, 그리고 이미지에 대한 종합판단이지 모든 정책에 균일한 지지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여러 분야에서 국민을 실망시키고 화나게 만든 것은 대통령 당선이 모든 정책에 대한 100% 위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일신문 칼럼 | 200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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