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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누가 ‘완벽한’ 안전을 자신하는가”









“감히 누가 ‘완벽한’ 안전을 자신하는가”
  [기고] 기술만능시대의 한반도 대운하


 지난 3월 김세현 상지대 교수(자원공학과)는 녹색연합 활동가와 경부운하 조령터널 예정 지역을 둘러보고, “해당 지역의 지형, 지질의 특성을 염두에 둘 때 운하 터널은 여러 가지 위험을 안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김 교수의 경고는 지난 25일 <프레시안>을 통해 소개되었다. (☞관련 기사 : “이명박의 ‘무모한 도전’, 운하 터널”)

 이 경고를 접하고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독자 이찬우 박사(LTM 대표이사)가 7일 반론을 보내왔다. 이찬우 박사는 “경부운하와 관련해서는 찬반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터널의 안전성을 둘러싼 현재의 논쟁은 현장 전문가의 입장에서는 과도하게 편향돼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 기사 : “경부운하 수로터널, ‘재앙’과 거리 멀다”)
  
  이런 이찬우 박사의 견해를 보고 지리학을 공부하는 황진태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객원연구원이 재반론을 보내왔다. 황 연구원은 “이 박사가 현대 과학기술의 핵심 쟁점인 ‘불확실성’을 간과하고 있다”며 “이 박사만큼 공학에 신뢰를 갖고 있는 다른 공학자들이 운하 사업을 반대하는 이유를 따져 보라”고 지적했다.
  
  <프레시안>은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놓고 전문가 사이의 토론이 확산될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황 연구원의 재반론으로 이런 토론이 더욱 활발해지길 기대한다. <편집자>
  
  ‘불확실성’에 눈을 돌려야 한다
  
  최근 과학기술시대를 다루는 여러 가지 학문적 논의는 ‘불확실성’에 강조점을 둔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인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개념도 인류가 주도한 과학기술 발달로 예측하지 못하는 ‘위험(risk)’이 만연돼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논의를 염두에 두고, 얼마 전 <프레시안>에 기고한 이찬우 박사의 글에 몇 마디 하고자 한다.
  
  이찬우 박사는 경부운하 조령터널 건설의 위험을 경고한 김세현 교수의 지적을 놓고 “터널공학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오늘날 ‘불가능’은 ‘없다'”고 강조한다. 즉 마음만 먹는다면 어떤 악조건에서도 터널을 뚫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적절한 공학 조치만 이뤄진다면 안전까지 자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애초에 위험을 경고한 김 교수의 발언부터 살펴보자. 김 교수는 “경계를 메우는 공법이 있기는 하지만 물이 담겨있는 터널의 경우는 안전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즉 김 교수 역시 이 박사가 말한 대안 공법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 김 교수의 주장은 예상하지 못하는 위험을 강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최근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며 발족한 교수 모임에도 많은 공학자가 참여했다. 이들 역시 이 박사 못지않게 각종 공학 조치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든 위험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겸손함 때문에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데 동참했다. 이 박사의 “위험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말은 기술만능주의를 신봉하는 오만에 가깝다.
  
  다른 위험은 왜 보지 못하는가?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서울대 교수 모임’에서는 매주 특강을 열어 여러 전공자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운하 사업에 대한 비판을 공유하고 있다. 여기에 참여하는 교수들은 모임을 통해 서로 다른 분야의 전공자들의 발표 내용을 듣고 같은 주제의 새로운 영역에 대한 배움을 나누고 있다.
  
  나 또한 전공인 지리학뿐만 아니라 지형학, 생태학 등 낯선 분야의 전공자를 통해서 배우는 기쁨이 있다. 이 박사는 단정적으로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모르니 공학적인 접근만 하겠다고 단언했지만 이는 이후의 건강한 논의로 발전하는 것을 스스로 봉쇄한 꼴이다. 예를 들면, 조령터널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운하의 건설로 각 수계간 물길이 이어지게 되면, 각 수계에 독립적으로 서식하거나 분화된 생태적 유사종들이 다른 수계의 하천에 침입하게 됨으로서 종간 경쟁이 유발될 수 있다. 이는 특정 종의 개체군 축소로 이어지며, 희귀종의 경우 그 피해가 심각할 수도 있다.” (송호복, 한반도 대운하와 지형 환경 두 번째 심포지엄 발표문中)
  
  뚫어놓는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닌 것이다. 이러한 생태에 대한 고민을 못한다 치더라도 공학이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학문임을 상기한다면 운하 찬성론자의 말처럼 인간이 즐길 관광 목적으로 장장 22km 터널을 지나갈 사람들은 어떠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터널 길이가 약 20km인데 배의 항속은 시속 10km이므로 거의 2시간 가량 터널에서 머물러야 한다. 자동차를 타고 시속 100km로 5분간 터널을 통과할 때도 대단히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두운 광선, 답답한 공간, 안 좋은 공기, 안전사고 등을 이유로 배의 외부로 나가지 못하게 통제한다면 터널 내에서 2시간은 관광객에게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줄 것인가? 이것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석회동굴과는 다르다. 밀폐된 공간에서 겪게 될 정신적 고통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대단할 것이다.”(황상일, 한반도 대운하와 지형환경 두 번째 심포지엄 발표문中)
  
  기술만능주의 사고 버려야
  
  나 역시 이 박사의 주장처럼 토목공학적 접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운하 반대 측 토목공학자가 오히려 대운하 논의에서 공학적 판단에 기초한 판단이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공학이 정치적 논리의 파생물을 멋지게 가려주는 포장재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공학도로서의 자부심이 존재한다면 오히려 이러한 점을 자성하고 비판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의 쟁점이 된 조령터널을 보더라도 기술을 통해서 붕괴를 막을 수 있다는 공학자의 말이 틀리지는 않다. 그러나 이들 조차도 붕괴의 가능성 자체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과학기술시대에 위험을 “완벽히” 봉쇄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가능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언급하자. 그간 소수의 전문가들이 주도했던 과학기술 관련 국책 사업도 민주화돼야 한다. 오늘날 과학기술은 첨예한 이해관계의 망에 걸려 있는 사회적 구성체에 가깝다. 이 박사와 동종업자인 공학자들이 왜 개인적 이익 추구의 기회에도 불구하고 대운하에 반대 서명을 했겠는가?
  
  기술만능주의를 신봉하는 오만은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를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재촉하는 지름길이다.










   
 
  황진태/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객원연구원

2008.04.17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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