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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의 보수’는 재구성되고 있다






한국만의 보수’는 재구성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성격은?
우리시대 지식논쟁 /


⑤ 조희연 교수의 재반론

















» 신보수정권에서 평등, 생태, 평화, 사회연대 등의 가치는 진보의 재구성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조희연 교수는 지적했다. 사진은 보수단체들의 북핵 반대 집회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와 고세훈 고려대 교수, 강원택 숭실대 교수, 그리고 홍성민 동아대 교수가 지난 4주 동안 이명박 정부 ‘보수성’의 실체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조 교수는 새 정부가 시장자율주의와 전면적인 개방주의를 내세우고 있다며, 국가개입주의와 보호주의적 성격을 지닌 구보수와는 차별성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고 교수는 보수는 “대외적으로는 국가의 자율성을, 대내적으로는 유기체적 일체성을 추구”한다며, 이런 기준으로 따질 때 박정희 정권이든 새 정부든 보수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강 교수는 구보수 세력이 냉전 이데올로기에 기반했다면 새 정부는 경제적 요인과 계급적 특성을 지닌 우파적 속성을 강하게 띠고 있다고 했다. 신보수라는 규정성을 받아들인 것이다. 홍 교수는 정치권력의 성격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정치사회·시민사회-정치주체-국제정치라는 네 가지 층위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 교수는 이번 글에서 한국의 보수는 식민지로 전락하는 과정에서 지배의 전통이 단절되는 등 정체성의 ‘해체적 재구성’을 겪었음을 강조했다. 서구적 기준의 보수와는 달리, 극단적 반북주의와 친미주의를 자기정체성으로 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신보수 정권에서 생태주의적·신좌파적·신계급적·새로운 국제주의적 진보성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지라는 과제가 주어진다고 밝혔다.

다음 주제는 ‘고종은 개혁 군주인가’이다. 이태진 서울대 교수가 다음주 의견을 먼저 밝힌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지난달 22일 대만 총통선거에서 국민당의 마잉주 후보가 승리하였다. 이는 개발독재적 구(舊)지배와는 구별되는 ‘신보수정권’이 한국과 대만에서 출현한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신보수적 지배는, 필리핀이나 타이 등과 같이 과거 구독재세력이 강력한 제도적ㆍ비제도적인 영향력과 개입력을 보유하고 과거의 ‘정치적 독점’이 강고하게 유지되는 ‘신과두제’ 유형과 대비된다.

당연히 신보수정권은 개발독재적 구보수정권과 연속성 및 차별성을 갖는다. 내 글에 이어 실린 강원택 교수와 홍성민 교수의 글은 ‘차별성’을 강조하는 논의를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내 논지와 크게 대립되지 않으면서 그 ‘차별성’의 복합적 측면을 강조하는 논의였다고 생각된다. 특히 강원택 교수는 보수의 계급적 성격의 변화를 주목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과거 냉전형 보수와는 구별되는 ‘계급적 속성을 띠는 경제적 우파와 물질주의적 가치의 결합’으로 특징화될 수 있다고 표현했다. 이에 충분히 동의한다. 홍성민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복합적 성격을 논하였다. 네 가지 층위-정권 지도자의 퍼스낼리티, 정치사회ㆍ시민사회의 관계에 따른 정치권력의 성격, 정치 주체의 취향, 국제정치의 영향력-에서 보수정권의 성격을 복합적으로 보아야 함을 강조했다. 특히 그가 말하는 새로운 ‘감성의 정치’ 개념은 보수가 진보를 ‘추월’하고 있는 지점을 우리로 하여금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단지 고세훈 교수의 경우는 다른 각도에서 중요한 논점을 제기하고 있다. 곧 보수의 일반적 성격과 한국 보수주의의 특수적 성격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는 서구의 보수 개념을 근거로 하여, 보수를 “대외적으로 국가의 자율성을 추구하고 대내적으로 유기체적 일체성을 추구하는 지향”으로 규정하고 박정희 정권이나 이명박 정부를 보수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였다. 자신의 개념규정의 근거를 가지고 이명박 정부를 규정하는 것을 존중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서구 보수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는 바로 그 측면이 오히려 한국 보수의 성격이고 현실적 모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곧 한국의 보수가 드러내는 극우적 반공주의, 일면적인 성장주의, 전통적인 보수의 국가자율적 배외주의와는 대립되는 극단적인 친미주의, 복지와 공동체적 삶에 대해 전혀 고려가 없는 천민자본주의적 지향, 동성애나 낙태 반대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탈(脫)도덕적 경제주의’ 등이 한국적 보수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3ㆍ1절과 8ㆍ15에 친미 데모를 하는 것 그 자체가 한국 뉴라이트의 성격을 드러내준다.


‘국가의 자율성’이라는 서구적 잣대로
‘극단적 친미’ 특수성 부정하면 곤란
개발독재서 신자유주의적 성장으로
한국 신보수 헤게모니 전환 이뤄져


더 많은 논의를 해야 하겠지만, “보수를 공동체 개념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라고 고 교수는 주장하는데, 이는 근대 초기에 서구 보수가 전근대적인 중세적 질서를 일정하게 이상화하면서 옹호하는 형태로 자신을 구성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한국이나 많은 제3세계 국가들에서 보수는 자신들의 사회가 식민지로 전락하는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의 ‘해체적 재구성’을 불가피하게 겪었다. 전근대에서 근대식민지로 전환하는 과정, 나아가 해방 이후의 ‘내전적 과정’과 분단 및 60년대 군부독재의 출현 과정 등에서 ‘지배의 전통’이 단절되었다는 점이 보수를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해방 이후 한국에서 보수는 역설적으로 극단적 반북주의와 친미주의를 자기정체성으로 하여 존립하게 되었다. 이것이 냉전 시기의 한국 보수이다. 60년대 이후에는 개발독재 하에서 보수가 친기업적 성장주의와 반(反)노동자주의를 내면화한 근대화 추진세력으로 스스로를 재구성했다.(이 과정에서 한국의 보수는 자유주의-진보주의 세력의 연합에 기초해 전개되는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억압했고 그래서 자유주의를 천명하지만 자유주의적 성격이 없다는 특성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개발독재의 ‘성공’적 추진이라고 하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여 현재의 보수는 60~70년대 ‘근대화적 성장주의’를 새롭게 ‘신자유주의적 성장주의’로 전환하면서 스스로를 재구성해가고 있다.(박정희라고 하는 보수의 역사적 자원을 부각시키면서 말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보수 블록 내의 헤게모니 분파도 전환되어 왔다. 예컨대 개발독재적 보수 블록과 현재의 신보수 블록 안에서 헤게모니 분파는 명백히 다르다. 이러한 변화들을 ‘신보수’라는 개념을 통해서 포착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수에 대한 ‘선험적인’ 서구적 기준을 설정해 놓고 한국에서 그에 부응하는 ‘보수는 없다’라고 말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


소비자본주의 대중의 욕망 포획
생활세계 지배하려는 보수시도 맞서
이젠 진보의 재구성 고민할 때
생태평화적 ‘평등연합’ 구성해야


우리가 이명박 정부의 성격 논쟁을 하는 데에는, 신보수정권 시대 ‘진보의 재구성’과 ‘진보의 풍부화’를 고민하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나는 신보수정권 하에서 진보는 대중들의 새롭고 지속되는 삶의 고통들을 주목하고 새로운 복합적 평등연합을 재구성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사회)공공성 담론이나 ‘민주주의의 사회적ㆍ급진적 확장’ 같은 담론이 중요하다. 복합적 신평등연합은 70~80년대의 반독재연합이나 90년대 민주개혁연합과는 다른 다양한 대중적 동력을 수렴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신평등연합은 새로운 ‘의제연합’이자 대중들의 다종다양한 새로운 ‘요구연합’이 될 것이다. 물론 성공적인 새로운 복합적 평등연합은 ‘역전의 용사’들이 다시 모인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기존의 진보그룹-그 일부인 급진적ㆍ좌파적 그룹을 포함하여-은 반독재적 진보성과 반미주의적 진보성, 초기 산업화 단계의 계급적 진보성에 기반하고 있었다. 이제 신보수정권 하에서 우리는 생태주의적 진보성, 신좌파적ㆍ신사회운동적 진보성, 새로운 신자유주의적 성장드라이브가 촉발하는 신빈곤과 양극화에 대응하는 신계급적 진보성, 지구화가 촉발하는 새로운 국제주의적 진보성을 어떻게 결합시켜 낼 것인가 하는 과제 앞에 서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얼마 전 창당한 진보신당이 기존의 진보 이슈에 더하여 새롭게 부각시키고 있는 평등, 생태, 평화, 사회연대 등의 가치는 진보의 재구성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된다. 대중의 생활세계에 대한 신보수적 지배의 새로운 공세로 인해 분출되어 나오는 새로운 저항성들을 폭넓게 수렴하려는 고민이 필요하다. 예컨대 고도 대중 소비자본주의 시대 대중들의 신체와 욕망, 삶의 전 영역에 대한 국가와 자본의 새로운 포획과 거기서 배태되어 나오는 저항적 주체성, 신보수적 지배의 ‘감성의 정치’에 포획되면서 동시에 그것에서 탈주해오는 대중들의 저항적 감수성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 하는 과제도 있다. 물론 성공적인 ‘우파 경제포퓰리즘’, 새로운 ‘우파 국제주의’ 전략, 신보수정권의 ‘경제 실패’가 가져올 수 있는 파시즘적 사회심리의 부상과 같이 신보수정권 하에서 나타날 수 있는 진보에 대한 위협적 상황도 예기해볼 수 있다. 다행히 경부운하 반대투쟁과 같이 새로운 주제를 중심으로 새로운 저항적 주체성들이 분출하고 있다.




















» 조희연 교수
반독재 투쟁전선에서 이탈했던 대학생들이 등록금 투쟁으로 새롭게 정치화될 가능성도 나타난다. 암울했던 2007년 대선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지금, ‘진보의 게토화’가 아니라 ‘진보의 풍부화’로 가는 새로운 희망의 근거들을 나는 발견해가고 있다.

조희연/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소장



조희연 교수는 1956년생으로 연세대 사회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아시아 민주화의 복합적 갈등’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적 ‘급진민주주의론’정립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국가, 민주주의, 정치변동> <비정상성에 대한 저항에서 정상성에 대한 저항으로> <계급과 빈곤> 등의 저작이 있습니다.




한겨레21 /2008.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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