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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에서 살아가게 두어라

제자리에서 살아가게 두어라
운하 백지화를 위한 금강 순례 (2)



박은영(대전충남녹색연합) smallpark21@dreamwiz.com /


계절과 계절 사이가 있다. 봄이지만 겨울처럼 춥고, 여름이지만 가을처럼 서늘한 그런 계절의 틈. 요즘이 겨울과 봄 그 사이이다. 햇살의 따뜻함이 맴도는 대기 속으로 차가움을 머금은 바람이 겨울의 뒷모습으로 사람 사이를 스쳐간다. 그러면서 계절은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아니 더 오래전에 그랬던 것처럼 네 번의 화려한 변주곡을 세상에 들려준다. 그 연주는 한 번도 쉰 적이 없다. 끊임없이 제자리를 찾아 돌아온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에서 어른이 되고 무엇인가를 꿈꾸게 되면서 많이 변하고 다른 자리를 찾아 여기저기 헤맨다고 하지만, 사실 아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을 사는 사람은 ‘제자리’를 찾아 갈 뿐이다. 늘 제자리를 찾아오는 태양과 바람, 계절과 산야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두 개의 강이 만나는 곳, 합강리

오늘 순례단은 연기군 금남면 합강리부터 남면 나성리까지 순례길에 오르게 된다. 순례단이 두 번째 걸음을 시작한 곳은 금강과 미호천, 두 개의 강이 만나는 합강리이다. 금강의 중하류라고 볼 수 있다. 합강리는 곡류하천(曲流河川)이 유로가 바뀌면서 하천 가운데 퇴적지형인 하중도가 형성되어 있고, 곡류부분에는 모래톱이 형성되어 있다.

합강리의 모래톱은 중부고속도로(음성-진천-증평-청주-청원-연기)로 주변 오염원이 형성되면서 악화된 무심천의 수질과 갑천 상류 대청호부터 대전시를 거쳐 금강으로 유입된 오염된 수질을 정화시켜 금강으로 내려보내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곳이다.

이 곳은 우수한 내륙철새도래지이기도 하다. 매년 큰기러기, 가창오리, 흰꼬리수리, 수달, 큰고니, 황오리 등이 찾아오고 있다. 최수경 생태문화해설사는 1주일 전까지만 해도 큰 기러기가 많았고, 석양이 지자 그들만의 대열을 이루어 미호천 상류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2주일 전에는 큰고니도 스무 마리나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계절이 되면 돌아오는 그들의 자리, 바로 합강리는 새들의 자리이다.










순례단이 주로 강가의 갈대밭 길이나 논둑을 따라 걷는 동안 근접한 도로 쪽에서는 대형트럭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있다. 운하가 아니어도 이곳은 이미 행정복합도시개발로 어수선하다. 연기사랑청년회 황규원 회장은 세종도시특별법 통과 이후 연기군은 붕 뜬 상태라고 한다. 땅값과 관련된 여러 근거없는 소문이 돌기도 하고 외지인들도 오고 갔을 테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소문 중에는 금강에 한강처럼 유람선을 띄운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금강운하건설을 예전 연기군 북면에서 청원군 부강을 거쳐 한양(서울)으로 왔다갔다 했듯 작은 배가 물건 실고 오간다고 생각하지, 커다란 배가 지나가기 위해 지형을 넓히고 강바닥을 파내는 등 주민 생존에 영향을 줄 만큼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한다. 유람선이 아니라 거대한 화물선이 움직일 수 있는 운하가 만들어지면 우리가 지금 걸으며 보고 있는 모래톱은 없어질 수밖에 없고, 모래사구가 하던 정화작용이 없어진다면 금강은 점점 오염되어 갈 것이다. 철새들은 더 이상 금강을 찾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화려한 군무도 볼 수 없을 것이다. 황규원 회장은 90년대 초반에만 해도 여름이면 숭어가 튀어 올라올 정도로 맑았던 금강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앞으로 주민들과 함께 운하를 막기 위해 힘을 모아보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까맣게 탄 논길위에서










바람은 쌀쌀하지만 좋은 날이다. 길 가마다 냉이가 그 싹을 내보이고 있다. 흙 속에서 봄, 봄하고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다. 갈대밭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그 소리에 맞춰 들썩인다.

한 시간을 넘게 걸어 강과 맞닿은 농지로 들어섰다. 앞사람의 발자국에서 검은 먼지가 피어오른다. 논가가 온통 새카맣게 타 있다. 농가에서 내 놓은 폐비닐을 태운 흔적도 보이고, 태워서는 안 될 쓰레기가 탄 흔적도 보인다. 논둑길마다 기름을 뒤집어 쓴 것처럼 까맣다. 농가에서 내놓은 폐비닐과 같은 경우는 지자체에 전화를 하면 수거해 가는데, 그냥 태워버리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비닐을 태우면서 나오는 오염물질로 흙이 오염되고, 흙의 오염은 강으로, 강의 오염은 결국 사람에게 돌아온다. 이것 또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이 아닐까. 사람이 만든 것이 결국 사람에게 돌아오는, 제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이다.

강의 흐름은 사람이 사는 곳으로 굽이쳐 들어온다. 그것은 금강이 아니라 영산강이든, 낙동강이든 같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강이 있었고, 강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었다. 그렇기에 강은 사람의 제자리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자리를 걷고 있는 것이다. 우리와 다른 어떤 이들은 자신의 제자리를 파괴하고 다른 자리를 만들려한다. 하지만 자연이 늘 그랬듯, 마련된 다른 자리는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파괴될 것이다. 그것은 순환의 법칙이다. 아무리 견고하고 경제적인 운하라고 해도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세워진 것은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자기의 자리를 망각하고 신에게 닿으려 쌓아올렸던 바벨탑처럼 말이다.

제자리에 두어라

순례단은 두 번째 걸음을 마무리 하면서 작은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금남대교 아래 강가로 들어서서 ‘금강운하백지화’라는 커다란 피켓을 들었다. 저 글씨가 얼마나 커야, 우리의 외침이 얼마나 커야 세상이 다 보고 들을 수 있을까? 그 말을 보아도 못 본 척하는 사람들이, 들어도 못 들은 척 하는 사람들이 외치는 이의 마음, 그 절실함을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언제나 강의 말을 듣기 위해 자기를 비울만한 여유를 갖게 될까? 장화를 신고 강물로 들어간다. 한 발 한 발 옮길 때마다 강물의 차가움이 장화를 신었어도 느껴진다. 강물로 들어가는 이들을 지켜보는 순례단들은 말이 없다.










침묵의 흐름 사이로, 발에 느껴지는 금강의 흐름 사이로 우리는 금강의 말을 듣는다. 우리는 자연의 말을 듣는 방법을 잘 모른다. 하지만 그 방법이란 너무나 쉽다. 입을 닫고, 머릿속 생각을 한 구석에 잘 개어두고, 공작새가 천천히 날개를 펼치는 것처럼 마음을 열면 들린다. 하지만 우리는 듣기 위해 우리를 비우기보다 우리를 채우기 위해 듣는데 익숙하기 때문에 자연의 말을 듣는 방법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잘 사는 방법’이라고 판단하며 살아간다. 침묵이 흐르는 공기를 통해 우리 마음에 금강의 말이 들린다.

“바라건대 모든 것을 제자리에서 살아가게 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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