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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광장] 누구를 위한 운하건설인가

[3040광장] 누구를 위한 운하건설인가
토목·환경 전문가 대재앙 경고…조급증 버리고 신중히 접근해야

지난달 12일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며 경기도 김포의 한강 하류에서 출발해 한강 줄기를 따라 충북 일대를 걸어온 ‘종교인 생명평화 100일 순례단’이 대구에 도착했다. 개신교 목사, 가톨릭 신부, 불교 승려, 원불교 교무, 시인들이 참가하는 ‘종교인 생명평화 100일 순례단’은 속도와 물신주의, 경제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이 시대의 어리석음에 경종을 울리며 대운하 건설 반대를 그들의 고단한 여정으로 역설하는 중이다.

민속학자 주강현 선생에 따르면, 충북 단양 땅 도담삼봉에서 건너다보이는 남한강 상류의 금굴이라는 석회암 동굴은 약 70만년 전부터 3천년 전까지 사람이 살던 동굴이었다. 사람 살기 넉넉하고 출구가 남쪽 한강을 바라보고 있어 사냥과 물고기 잡이에 알맞은 곳이었다고 한다. 삼국시대에 신라 백제 고구려 세 나라가 그토록 차지하고자 애썼던 곳이 바로 한강유역이었다. 낙동강은 어떤가. 태백 황지에서 발원하여 경상도를 골고루 적시며 흐르는 낙동강은 영남인들의 삶과 함께하였다. 낙동강을 둘러싼 애환은 조명희의 ‘낙동강’과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 같은 소설에 잘 나타나 있다. 강은 굴곡 많은 우리네 삶을 어루만지고 휘돌아 굽이굽이 흘렀다. 수난과 고통 속에서도 생명의 물길을 멈추지 않고 우리네 목마름을 적셔주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역사와 문화를 꽃피워왔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 우리나라에 대운하를 만든다는 얘기를 듣고 그저 선거용 공약에 그치길 바란 이가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公約(공약)이 空約(공약)이길 바란 유일한 경우였다. 그런데 대운하를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대운하 건설계획이 구체적인 모양새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에 위기를 느낀 전문가들이 대운하 건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고, 서울대 교수들 수백명이 대운하 반대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종교계, 환경단체를 비롯한 전국 시민사회단체들도 운하백지화운동본부를 만드는 등 반대 움직임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정욱 교수는 대운하 건설로 인한 환경 파괴에 대해 심각한 경고를 내렸다. 그는 미국 플로리다 운하는 건설 뒤 곧바로 폐해가 드러났지만 완전 복원을 못해 쩔쩔매고 있다며 홍수와 생태계 와해, 수질오염의 재앙이 내린 외국 사례를 보면서도 대운하 타령을 할 거냐고 비판하였다. 어떤 전문가는 우리나라 강이 사행천이라 운하 건설에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육상교통수단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달한 지금, 운하는 더 이상 물류수송을 위한 효율적인 수단이 될 수 없으며, 운하 건설에 따르는 막대한 비용은 결국 국민 부담으로 고스란히 이어질 것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런 문제제기가 부담스러운지 집권여당 안에서도 다가오는 4·9 총선에서 대운하를 공약으로 채택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통령의 후보시절 대표공약이었던 대운하에 대해 총선공약으로 채택하지 못할 만큼 정책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면서 운하 건설을 원점에서 검토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이명박 정부는 1년간 국민의 설득을 구하고 4년 동안 운하 건설을 추진하여 임기 내에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이 대운하가 4년 동안 추진하여 과연 완성될 규모의 공사인지 궁금해한다.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대운하 건설에 대해 우려하는 국민들이 이토록 많은데 사업을 서두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야흐로 온 국토에서 토목사업이 진행되고 온 나라 사람들의 식수원을 담보로 진행되는 사업인데 막무가내로 밀어붙인다고 될 일인가.

공약이니까 무조건 지켜야 한다든가, 임기 안에 완성하겠다는 조급증을 버렸으면 한다. 낙동강의 발원지 태백에서 시작하여 낙동강이 바다로 흘러가는 구포까지 발로 걸어 ‘낙동강 역사문화탐사’라는 소중한 책을 펴낸 황토현문화연구소 신정일 소장은 강과 생명, 그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온 우리 민족의 삶을 통찰하고 있다. 그런 분들의 소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국토는 우리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물려줄 곳이지, 우리가 마음껏 탕진해버려도 좋을 일회성 소모품이 아니지 않은가. 오세영 시인의 ‘강물’이라는 시를 음미해본다.

‘무작정/ 앞만 보고 가지 마라./ 절벽에 막힌 강물은/ 뒤로 돌아 전진한다.// 조급히/ 서두르지 마라./ 폭포 속의 격류도/ 소에선 쉴 줄을 안다.// 무심한 강물이 영원에 이른다./ 텅 빈 마음이 충만에 이른다.’

매일신문사
신남희(새벗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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