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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과거와 같고도 다른 ‘한국형 신보수 정권’

서구-과거와 같고도 다른 ‘한국형 신보수 정권’
우리시대 지식논쟁 /


① 변화·불변성 함께 판단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2주가 됐다. 갓 출범한 정부의 성격을 논하는 것은 다소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보고서 등을 통해 새 정부의 국정 목표와 정책 기조는 대략적으로 드러난 상태다.

‘10년 만의 보수파 정권’ 탄생으로 학계에서도 새 정부의 구조적 성격을 어떻게 봐야 할지를 두고 논쟁이 활발하다.

주요 논점은 이명박 정부를 ‘신보수 정권’으로 규정할 수 있느냐이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박정희식 개발독재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면서 ‘신보수’라는 규정성을 받아들인다. 반면 박상훈 출판사 후마니타스 주간 등은 본질적으로 구보수와의 차별성이 없다는 점을 들어 ‘신보수’라는 정의에 반대한다. 일부 논자들은 ‘신보수’ 규정이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본질을 흐려놓을 수도 있다는 견해를 보인다. 선명하게 ‘신자유주의 정권’이라고 하자는 것이다.

조 교수 글에 이어 고세훈 고려대 교수, 강원택 숭실대 교수, 홍성민 동아대 교수가 견해를 밝힌다. 조 교수는 이번 글에서 새 정부를 ‘신보수’ 정권으로 규정하면서도 구보수 정권과의 동질성이 존재함을 강조했다. 시장자율주의와 개방주의가 차별성이라면 개발과 성장주의는 동질성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형 신보수 정권은 ‘전(前) 복지국가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했다. 1980년대 유럽과는 달리 ‘신국가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점과 대중의 진보적 요구에 기초하고 있는 점도 ‘한국형’의 특징으로 거론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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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농담처럼 나는 ‘세상이 변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사물은 변화·발전한다’는 점에서 볼 때 부질없는 기대임에도 말이다. 왜냐하면 변화에 대면하고 변화를 ‘해석’하는 것 자체가 그에 대응하는 내 자신의 변화 자체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우리는 이명박 정부의 성립이라고 하는 ‘거대한 변화’에 직면해서 그 변화를 해석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돌이켜 보면, 1990년대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언제나 새 정권의 성격을 둘러싸고 논쟁이 있었다. 그 논쟁 참여자들에게는 두 가지 시각이 교차했던 것 같다. 하나는 ‘불변론적’ 시각 혹은 정서이다. ‘본질적인 차원’에서 정권의 구조적·계급적 성격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엄청난 변화를 지적하는 ‘변화 강조론’이다. 나는 이명박 정부의 성격에 대해서 ‘변화’의 측면과 ‘불변’의 측면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나는 이명박 정부를 ‘한국형’ ‘신보수 정권’으로 규정하고자 한다. 당연히 60·70년대의 박정희식 개발독재는 구보수 정권으로 규정될 수 있다. 구보수 정권과 신보수 정권은 차별성과 연속성을 갖는다. 먼저 차별성을 보자. 구보수가 초기 산업화 단계의 개발독재였다면, 신보수는 ‘포스트-개발’ 정부이고 ‘포스트-독재’ 정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구보수를 냉전적인 반북(反北)적 보수이자 ‘안보형 보수’로 성격지을 수 있다면, 신보수는 ‘시장형 보수’ 혹은 ‘신자유주의적 보수’로 성격지을 수 있다. 특별히 보수세력 내부의 헤게모니 분파의 전환을 이야기할 수 있다. 또한 박정희 정권이 국가개입주의와 보호주의를 표방했다면 이제 이명박 정부는 시장자율주의와 전면적인 개방주의를 표방한다. 반대로 연속성을 보자. 무엇보다 과거 독재시대의 집권당이자 90년대 민주개혁 국면에서 반개혁에 섰던 보수정당이 집권당으로 복귀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나아가 신보수는 구보수의 가장 핵심적인 성격이라고 할 수 있는 ‘개발주의’와 ‘성장주의’를 새로운 형태로 정확히 계승하고 있다. 또한 신보수는 탈규제와 시장자율을 강조하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구보수의 ‘친기업주의’와 ‘친자본적 성격’을 정확히 계승하고 있다. 단지 그 형태가 달라지고 있을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자본이 제 발로 서지 못하고 국가적 지원에 힘입어 스스로를 성장시켜야 했던 ‘원시적 축적’ 단계의 친기업주의를 구보수가 구현했다면, 이제 자본이 제 발로 서서 자력으로 중소자본과 기타 사회영역을 통제하고자 하고 국가적 지원 없이도 글로벌 자본축적을 수행할 수 있는 단계의 친기업주의를 신보수는 구현하고 있다. 여기에 ‘탈규제’ ‘자율경쟁’이 핵심 담론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신보수 정권이 구현하는 국가는 ‘신자유주의적 경쟁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중도 리버럴 친미 정부의 붕괴가 좌파 정권으로 이어진 남미와 다른 경로를 보여준다.


이명박-박정희 신.구 정권은
개방주의-보호주의 차별성과 동시에
보수정당 재집권이란 연속성 지녀
개발성장-친기업.친자본 성격 계승도



앞서 ‘한국형’ 신보수 정권이라는 표현을 썼다. 신보수 정권 하면 80년대 영국의 대처 정부 등 서유럽의 우파 정부를 연상한다. 한국형 신보수 정권은 한국적·동아시아적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80년대 이후 유럽의 신보수 정권이 60·70년대 복지국가를 비판하고 그것을 해체하고자 했다면, 한국형 신보수 정권은 ‘포스트-복지국가적’ 신보수가 아니라 ‘전(前) 복지국가적 신보수’로서 출현하였다는 것이다. 서구의 신보수 정권은 사회민주당 정부 시대의 문제점을 ‘복지병’ ‘산업공동화’ ‘과부하 국가’ 등으로 진단·비판하면서 출현했다. 사회민주당 정부 스스로도 ‘복지 요구의 확대와 그것을 충족시킬 조세 기반 간의 괴리’라고 하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반독재 중도 리버럴 정부(참여정부) 하에서 전면적인 복지국가로 이행하지 못했다. 보수세력은 초보적인 복지 확대의 시도조차도 ‘좌파 사회주의’라고 생각하는 ‘가공의 이데올로기적 인식’에 기초해 있다. 이것은 그만큼 한국의 보수, 그 일부로서의 신보수가 경제적으로 배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민주노총 내부에서 온건파가 리더십을 가져도 아무것도 자본으로부터 양보를 쟁취할 수 없는 조건에 놓인다. 이는 신보수 정권하에서 이른바 ‘개량화’의 기반이 대단히 취약함을 의미한다.

둘째, 한국형 신보수 정권은 시장자율과 자율경쟁을 지배담론으로 하지만 ‘신국가주의’적 성격을 관성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러 신자유주의적 국가들의 현실 모습은 개별 국가 내의 계급적·사회적 역관계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크게 유형화해 본다면, 신자유주의적 국가라고 하더라도, 북구형의 ‘신조합주의적 유형’, 영미 식의 ‘순수 시장자유주의적 유형’, 동아시아의 ‘신국가주의적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한국형 신보수 정권은 동아시아의 ‘신국가주의적 유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는 개발독재적 국가개입주의의 관성, 국가의 정책수단을 친기업적으로 활용하고 나아가 공권력에 의해 배제적 노동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자본의 요구, 국가의 공적 역할에 대한 인식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경부운하와 같은 친자본적인 대규모 국가프로젝트의 개발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구와 달리 복지국가 이행못한 현실 속
보수만이 아닌 진보적 기대 실리고
시장자율 구호 뒤 국가개입 관성도
‘민주화 퇴행’ 대신 ‘보수의 진화’로 봐야


셋째, 한국의 신보수 정권을 성립시킨 대중들의 요구가 단지 보수적 요구만을 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라고 하는 중도 리버럴 정부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에 기초하여 성립하였다. 그런데 그러한 불신에는 양극화와 소득분배 악화의 극복, 사회복지 확대, 일자리의 확대 등 진보적 기대가 내포되어 있다. 여론조사를 보면, 각종 진보적 요구들이 다 이명박 정부에 투사되어 있다. 또한 서구의 신보수 정권에서는, 국가 실패가 강조되고 거기서 자연스럽게 시장의 역할 확대와 가족의 강조가 나타났다. 그러나 한국은 사회복지가 발달되지 않은 조건에서※국가가 과부하가 아니라※가족이 ‘과부하’ 상태에 있다. 97년 경제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로 인하여 많은 중하층 가족은 사회의 부담을 이전보다 과도하게 떠안았고, 그 부담으로 더욱더 해체의 위기에 직면할 정도다. 이는 한국의 신보수 정권이 서구와는 다른 사회적 요구와 기반 위에 서 있음을 의미한다.

신보수 정권 시대의 등장을 아시아 민주화의 일반적 경로에서 보면 ‘퇴행’으로 규정할 필요는 없다. ‘개발독재적 예외국가’를 벗어나서 “자본주의적 ‘정상’국가”로 변신해 가는 일종의 ‘보수의 진화’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진보의 투쟁에 의해서 강제되면서 보수가 응전한 결과이다. 이제 ‘진화된 보수’에 영향을 받고 응전하면서 ‘진보의 진화’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가.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다.

조희연/성공회대 교수·민주주의와 사회운동 연구소 소장
2008.3.8일자 기사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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