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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77호인 서울사직단정문(社稷壇正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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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환경센터에서 아주 가까운 곳인 사직공원 앞에 있는 [서울 사직공원정문]이 보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아, 이번 주에는 보물 제177호로 지정되어 있는”서울 사직단정문”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이 사직단 정문이 세원진 연대는 서기1396년 즉 태조4년이다.
이 문은 조선시대 국가에서 토지의 신(神)과 곡식의 신(神)을 제사지내던 제단인 사직단의 정문으로 종묘(宗廟)와 더불어 왕조(王朝)의
상징적인 시설이다. 사직단의 정문은 규모가 크고 범식이 독특하다. 정면은 전체적으로 기둥 간격이 넓고 높이가 비교적 낮으며 지붕이
커서 평활한 인상을 풍긴다. 사진단 정문 구조는 익공식(翼工式 : 소로와 첨자가 겹쳐지면서 단지 위로만 들어 올리는 기능을 하는
공포양식)건축으로 주로 지방 상류주택 건축(강릉오죽헌)이나 궁궐, 향교 등의 부속 채에서 많이 사용되는 조선 중기 이후의 공포( 包)양식이다.
익공계 건축은 건물 자체가 그리 웅장하고 화려하지 않기 때문에 다포계(多包系)에서 처럼 강한 시각적 요소가 된다고는 할 수 없다.
국가에서 토지신(土地神)과 곡식신(穀食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인 사직단의 정문인지라 전체의 단순성과
단정함을 드러내기 위한 양식으로 지붕을 맞배지붕으로 올렸다고 생각된다. 지금의 위치는 도시계획화에 의해 원 위치에서 약 14m
뒤로 옮겨진 것이다.
사직단은 위에서도 언급한바와 같이 조선시대에 토지와 곡식의 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곳이다.
우리 나라는 삼국시대부터 국토와 곡식은 국가와 국민생활의 근본이므로 국토의 신을 모시는 사단(社壇)을 동쪽에 두고 오곡의 신을
모시는 직단(稷檀)을 서쪽에 설치하고 국왕이 매년 正月. 2월. 8월 세 차례 제사를 지냈으며 가뭄이 들어도 기우제를 이곳에서
지냈다.
조선왕조는 한양에 천도한 후 경복궁의 왼쪽은 종묘(宗廟), 오른쪽에는 사직단(社稷壇)을 배치하는 원칙에 따라 종묘는 현 종로구
훈정동, 사직단은 현재 위치인 사직동에 건립하였다.(사직공원 안내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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