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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제로시대’를 그린다 시민 참여의 현장

“‘윤데의 기적’, 그 비밀이 궁금하세요?”
‘석유 제로시대’를 그린다 <6> 시민 참여의 현장

괴팅겐에서 윤데(Juehnde)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명성과는 다르게 윤데는 네비게이터가 없으면 지나칠 정도로 외형적으로는 특색을 찾아보기 힘든 마을이었다. 빨간색 지붕을 이고 있는 150여 채의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찬 전형적인 독일의 농촌 마을이었을 뿐이다. 독일 정부가 공인한 ‘미래를 준비하는 마을’로 불리기에는 말 그대로 ‘촌스러운’ 외양이었다.

그러나 이 마을은 지금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06년 한 해 동안 세계 곳곳에서 이 마을을 방문한 이들만 5000명 이상이었다. 2004년 11월 19일에는 독일의 농업부, 환경부 장관이 직접 방문해 정부가 이 마을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보여주기도 했다. 도대체 고작 750여 명의 인구가 사는 이 작은 마을이 뭐가 대단하기에, 이렇게 호들갑일까?

소비 전기보다 생산 전기가 많다

윤데의 외곽에는 동그란 돔 모양의 구조물 2개가 나란히 서 있다. 이것은 가축의 똥오줌과 밀, 옥수수 건초를 함께 썩혀서 메탄((CH₄)가스를 만드는 발효기다. 발효기가 돔 모양으로 부풀어 오른 것은 안에서 계속 생산되는 메탄가스의 압력 때문이다. 돔의 천 재질로 된 겉면 바로 밑에는 메탄가스가 새 나가지 못하도록 공기로 된 층이 있다.

이렇게 생산된 메탄가스는 바로 옆에 있는 열병합 발전소에서 연료로 사용된다. 이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연간 4000㎿h. 윤데에서 연간 사용하는 전기(약 2000㎿h)의 2배에 가까운 양이다. 이 정도면 ‘에너지 자립’이 아닌 ‘에너지 플러스’라는 수식어를 앞에 붙여야 할 판이다.

윤데는 이렇게 생산한 전기를 마을에서 직접 사용하지 않고 전량 외부로 팔고 있다. 윤데의 변화를 직접 주도한 게르트 파펜홀츠 씨는 “만약 열병합 발전소가 고장 날 경우를 대비해서 이 전력을 마을에 직접 공급하지 않고 있다”며 “‘바이오매스(biomass)’로 생산한 전기는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에 파는 게 이익이 된다”고 설명했다.

난방은 물론 지역 농가 소득도 생겨

열병합 발전소에서는 전기만 나오는 게 아니다. 전기를 생산할 때 나오는 열을 이용해 데운 물은 윤데의 난방을 책임진다. 이 발전소에서 나오는 열은 연간 5500㎿h. 윤데에서 1년 동안 필요한 열(약 3500㎿h)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양이다. 윤데는 집집마다 열 교환기를 설치해 발전소에서 나오는 따뜻한 물로 난방을 한다.

이 따뜻한 물은 집집마다 연결된 6㎞의 단열 처리된 관을 따라 이동하며 윤데를 따뜻하게 한다. 파펜홀츠 씨는 “올 한 해 1750유로(약 210만 원)를 난방비로 사용했다”며 “만약 계속 석유로 보일러를 가동했더라면 1년간 2500유로(약 300만 원)는 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열병합 발전소가 주는 이득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 발전소를 가동할 때 필요한 메탄가스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가축의 똥오줌은 하루에 30㎥ 정도다. 이 가축의 똥오줌은 한 주일에 한 번씩 윤데에서 농사를 짓는 아홉 가구가 공급한다. 이 똥오줌은 윤데에서 사육하는 400마리의 소에서 나온 것이다.

소의 똥오줌과 섞이는 밀(63%), 옥수수(30%) 등 건초 역시 윤데에서 생산된다. 이렇게 똥오줌과 건초를 공급하는 농가는 연간 22만 유로(2억6000만 원)의 고정 소득을 얻는다. 발효기에서 메탄가스를 얻고 남은 부산물도 쓰레기가 아니다. 이 부산물은 바로 밭에서 쓸 수 있는 양질의 유기 비료가 된다.

파펜홀츠 씨는 “이 양질의 비료는 가축의 똥오줌과 건초를 공급한 농가에서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가져간다”며 “윤데의 농가는 거대 농업 기업으로부터 비료를 살 필요가 없어 또 다른 과외의 이득을 보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광우병(BSE) 등으로 고사 직전이던 윤데의 농가에 모처럼 좋은 일이 찾아온 것이다.

‘윤데 스토리’…그 중심에는 주민이 있었다

이 정도만으로도 윤데는 충분히 주목 받을 만하다. 그러나 윤데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바로 이 모든 일이 윤데 주민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윤데 스토리’의 시작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드라마를 기획한 곳은 괴팅겐 대학이었다.

유서 깊은 괴팅겐 대학에서 경제학, 사회학, 지리학, 환경학 등을 연구하던 이들이 결성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학제 간 연구 센터(IZNE)’는 1998년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평소 자신들이 책상머리에서만 토론하던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이 현실에서도 직접 구현될 수 있는지 보여 주고자 한 것이다.

이들은 독일 정부의 지원을 받기로 하고 수많은 마을에 에너지 문제의 해결책을 담은 자신의 구상을 보냈다. 관심을 보인 40여 곳 가운데 1곳이 선택됐다. 바로 윤데였다. 이때만 해도 윤데 주민은 수동적이었다. 그러나 점차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윤데 주민이 프로젝트의 중심에 서기 시작한 것이다. 파펜홀츠 씨는 당시의 분위기를 이렇게 회상했다.

“괴팅겐 대학에서 열린 설명회에 100여 명의 주민이 참석했다. 그 설명회에서 주민은 스위스의 빙하가 녹고 있는 사진, 석유 때문에 발생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 상태라면 200년 후에는 함부르크가 사라질 것이라는 경고를 접했다. 대부분 40~50대였던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800년 역사의 윤데…’기적’을 이뤘다

윤데 주민은 우선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2001년 협동조합부터 결성했다. 초대 조합장은 당시 62세였던 파펜홀츠 씨가 맡았다. 일단 조합이 결성된 후에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일단 조합원이 각각 1500유로(3구좌)씩 출자해 종잣돈 50만 유로(약 6억 원)를 마련했다. 그러나 시설을 마련하는 데 드는 약 530만 유로(64억 원)를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처음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던 중앙정부가 태도를 바꾸면서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었다. 윤데 주민은 포기하는 대신 연방정부, 지방정부를 계속 압박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는 외지인의 참여도 이끌어 내 50만 유로가 추가로 마련됐다.

이렇게 3년이 지나자 꿈쩍 않던 중앙정부, 지방정부의 태도가 바뀌었다. 결국 2004년 중앙정부(130만 유로), 지방정부(20만 유로)가 150만 유로를 지원하기로 약속하면서 윤데 주민의 노력은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아진 돈에 장기 저리 혜택을 받은 은행 융자 280만 유로를 더해 2005년 9월 지금의 시설이 완성됐다. 지난 2005~6년 겨울을 성공적으로 넘긴 뒤 윤데 주민들은 더욱 자신감이 붙었다.

파펜홀츠 씨는 “발전소를 본격적으로 운영하는 첫 해이다 보니 70~80%밖에 가동을 못해서 2006년에는 적자를 봤다”며 “2007년부터는 100% 가동이 가능 때문에 연간 100만 유로(약 12억 원) 매출에 20만 유로의 흑자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발전소에서 지출하는 돈의 대부분은 지역 경제에서 순환되기 때문에 다국적 석유 회사에게 돈이 흘러가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파펜홀츠 씨는 “윤데는 지난 6년간 800년 역사에서 가장 값진 경험을 했다”며 “특히 남아메리카, 아시아 등의 농촌에서 윤데의 경험을 토대로 또 다른 예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6년간은 내 삶에서도 가장 역동적인 시간이었다”며 “나이 예순이 넘어서 이런 ‘기적’을 만드는 데 동참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덧붙였다.

프라이부르크 보봉…시민 참여가 마을을 바꿨다

생태 마을로 유명한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보봉(Vauban) 역시 현재의 명성 뒤에는 주민의 참여가 있었다.
이곳은 원래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주둔지였으나, 독일이 패한 뒤 1992년까지는 프랑스 군이 주둔했다. 마을 이름 ‘보봉’은 프랑스 군이 주둔할 때 이곳을 설계한 건축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독일이 통일된 후 프랑스 군이 철수하자 이곳을 어떻게 개발할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당시 프라이부르크는 싼 집을 얻으려는 서민에게 공급할 새로운 주거 단지를 찾고 있는 중이었고 보봉이 물망에 오른 것이다. 일단 보봉에 새로운 주거 단지를 마련하기로 결정되자 이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자 한 학생, 저소득층이 나서서 ‘보봉 포럼’을 만들었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활동한 이 보봉 포럼에서 오늘날의 ‘생태 마을’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이들은 일단 프랑스 군이 주택으로 사용하던 건물들을 개·보수해 난방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는 서민 주택을 만들기로 했다. 벽, 창, 지하실에 단열 처리를 하는 것이 개·보수의 핵심이었다. 이런 노력으로 연간 200~300㎾h 소비되던 난방 에너지는 50~100㎾h 수준으로 떨어졌다.

보봉 외곽에 있는 주차장에 자동차를 놓고 보봉 안에서는 가능한 한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도록 한 원칙도 이 보봉 포럼에서 만들었다. 보봉 포럼을 주도했던 안드레아스 델레스케 씨는 “손님이 방문하거나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처럼 일상적인 불편이 많아 자동차 진입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원칙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보봉에 거주하는 주민의 80%는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는다. 델레스케 씨는 “바로 집 앞까지 시내와 연결되는 지상 전철 ‘트램’이 운행되기 때문에 불편함이 전혀 없다”며 “가까운 거리는 물론 자전거로 이동한다”고 설명했다. 프라이부르크는 도시 전역에 400㎞의 자전거 도로가 있다.

보봉 포럼은 또 공동 주택 단지를 짓기 전에 건축가와 거주할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어떤 주택을 지을지 구상하는 전통도 만들었다. 보봉 곳곳에 다양한 외양을 가진 태양열 집열판, 태양광 발전기를 단 생태 주택을 볼 수 있는 것도 이런 사정 탓이다. 델레스케 씨는 기존의 주택을 개·보수해 연간 난방 에너지가 100㎾h 미만으로 사용하도록 한 주택에서 산다.

델레스케 씨는 “보봉이 지난 10년간 이뤄놓은 것은 큰 자본이나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며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이용해 에너지 전환을 어떻게 할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또 실천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변화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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