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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는 왜 석유중독을 경고했을까?


“부시는 왜 ‘석유중독’을 경고했을까?”
석유 제로시대’를 그린다 <1> 임박한 파국과 대안
등록일자 : 2007년 01월 08일 (월) 15 : 25

지난 2006년을 미래의 역사가는 전 세계적으로 ‘탈(脫)석유 시대’가 의제로 떠오른 해로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그간 역대 미국 대통령이 한 번도 입에 담은 적이 없는 ‘석유 중독’이라는 말을 내뱉은 데 이어, 2020년을 목표로 한 스웨덴의 ‘석유 제로(0) 선언’은 큰 화제가 되었다.

탈석유 시대가 의제로 떠오른 배경으로는 우선 2000년대 이후 지속된 고유가 사태,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의 발효에 따른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대책 마련 등을 들 수 있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석유 생산 정점(Peak Oil)’이 올 경우 석유 생산이 가파르게 하락할 가능성을 전 세계 국가들이 심각하게 인식한 탓도 있다.

이렇게 세계가 탈석유 시대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국내의 논의 수준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2030년까지 풍력, 태양 에너지와 같은 ‘재생가능 에너지(renewable energy)’가 전체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지금보다 9% 올릴 것을 약속한 노무현 정부의 ‘2030 에너지 비전’은 그 단적인 예다. 2011년까지 목표치가 5%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은 2007년 에너지 문제를 한국 사회가 중·장기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시급히 논의해야 할 화두라고 판단했다. 그 첫 번째 순서로 이른바 ‘석유 제로(0) 시대’를 맞기 위해 세계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또 한국은 그 흐름에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를 10회에 걸쳐 보여 주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현재의 에너지 문제에 대한 관련 논의를 소개하는 한편, 현지 취재를 통해 탈석유 시대 준비를 선도하고 있는 네덜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 유럽연합 각국의 현실을 소개한다.

‘석유 제로 시대를 그린다’ 기획은 한국언론재단의 지원으로 준비되었다. <편집자>

“내 아버지는 낙타를 타고 다녔다. 나는 차를 몰고 다닌다. 내 아들은 제트기를 타고 다닌다. 내 아들의 아들은 다시 낙타를 타고 다닐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격언)

오스트리아 그라츠 시. 세워진 지 1000여 년이 넘은 이 고도(古都)의 버스는 특별하다. 녹색으로 칠해진 벤츠 버스 135대는 한 대도 빠짐 없이 폐식용유를 원료로 만든 바이오디젤유(BD100)를 연료로 사용한다. 그라츠 시는 1994년 처음 2대의 버스에 바이오디젤유를 넣은 후 10년 만에 대중교통 수단 연료의 완전한 전환을 이끌어냈다.

이를 주도한 그라츠 대학의 마틴 미텔바흐 교수는 폐식용유를 수거해 버스의 연료로 사용하는 과정을 직접 설명하면서 “조용하지만 중요한 변화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떤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공교롭게도 이 변화의 중심에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자리잡고 있었다.

2006년 1월 31일, 부시 미국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발표하면서 세계는 발칵 뒤집혔다. “미국은 석유에 중독돼 있다.” 세계에서 가장 에너지를 펑펑 써 온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적인 석유 고갈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발언을 공개리에 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석유 공급의 불안정성에 대비하는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할 것을 약속했다.

고유가 사태는 ‘쭉’ 계속된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부시 대통령을 압박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유가다. 서부텍사스(WTI)유 기준으로 2002년 배럴당 26달러였던 유가는 2005년 56.82달러로 2배나 올랐다. 유가는 2006년 한 때 배럴당 70달러 수준을 유지해 1970년대 양차에 걸친 석유 파동 때의 수준(80~90달러)에 근접했다.

2002년 유가가 치솟을 때만해도 국내외 많은 전문가는 고유가가 일시적인 수급 불균형에 따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1980~90년대 저유가 시대로 돌아갈 것을 전망하는 전문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하듯 폴 크루그먼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유가가 한창 치솟던 2004년 5월 15일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썼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 파동 때는 세계적으로 증산 여력이 많아 수급 차질에 대처할 만한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고유가 사태는 그렇지 않다. 뚜렷한 공급 차질 상황이 없는 데도 중국을 필두로 수요가 급증하면서 수급 상황이 빡빡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서남아시아 불안마저 심화된다면 심각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는 위기가 발생할 것이다.”

2년이 지난 지금 이런 크루그먼 교수의 분석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김현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중국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석유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반면에 공급 능력은 이에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고유가 사태가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고 전망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세계 경제가 지탱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생산량 조절을 통해 유가 하락을 저지할 가능성이 높다. 또 석유 회사도 지정학적 위험 증가로 마땅하게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1980~90년대 내내 계속된 저유가 시대에 석유 생산에 대한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도 공급 능력이 확충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발(發) 석유 파동?

▲ 중국에서는 지난 15년간 석유 소비가 가파르게 증가해 왔다. 세계는 인도, 중국의 이런 석유 수요를 감당할 만한 석유 공급 여력이 없다. ⓒBP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석유회사가 본격적으로 공급 능력을 확충하면 언제든지 과거의 ‘좋았던 때’로 회귀할 수 있을까?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런 낙관론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유가가 한창 치솟던 2004년 초에 발생했다. 세계적인 석유회사 로열더치셸은 9주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총 가채 매장량이 20% 감소한 사실을 발표했다.

로열더치셸은 나이지리아, 오만의 가채 매장량이 40% 이상 과대평가돼 있었던 사실을 인정했다. 이 발표로 이 기업의 주가는 바로 25%나 폭락했다. 파장은 훨씬 더 컸다. 그간 석유업계가 가채 매장량을 과장해 온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석유업계가 주장해 온 가채 매장량(약 1조 배럴)의 상당량(20~25%)은 실체가 없을 수도 있음을 방증하는 사건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05년 에너지산업 투자기관 사이먼스앤컴퍼니인터내셔널의 매튜 사이먼스 회장은 <사막의 황혼(Twilight in the Desert)>에서 ‘사우디아라비아발(發)’ 석유 파동의 도래를 경고했다. 사이먼스 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생산이 정점에 근접했거나 이미 정점을 지났다”고 결론 내렸다.

사이먼스 회장은 “수년간에 걸쳐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전에서 일하는 지질학자들이 작성한 200여 편의 논문을 광범위하게 검토한 결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발표하는 석유 매장량 통계에 큰 의심을 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생산이 하락하는 시점은 전 세계 석유 생산이 하락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사이먼스 회장의 경고에 힘을 실어주기라도 하듯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회사 아람코에서 부사장을 지내다 2004년 퇴사한 사다드 알 후세이니도 영국의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동감을 표시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생산량은 위험할 정도로 과대평가되었다.”

과연 인류는 ‘빛의 시대’를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 인공위성에서 전 세계의 야간을 찍은 사진. 극심한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는 어두운 한반도의 북쪽이 유독 눈길을 끈다. ⓒ프레시안

임박한 파국, 석유 생산 정점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지시하는 것은 분명하다. 바로 전 세계 석유 생산이 정점에 근접했거나 혹은 이미 정점을 지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2004년 3월, 미국 에너지국(DOE)이 발표한 45쪽 분량의 보고서(Strategic Significance of America’s Oil Shale Resource)는 석유 고갈 사태에 대한 경고를 인정해 눈길을 끈다.

“현재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은 석유 발견 속도보다 3배나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있다. 세계 석유 생산이 정점에 도달하는 시기에 대해 일치된 합의는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석유 생산 정점(Peak Oil)’ 예상 시점은 2020년을 넘기지 않는다. 미국은 당장 전 세계 석유 생산 정점에 대한 대응을 시작해 경제, 국가 안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상쇄해야 한다.”

미국 에너지국은 2005년 2월에도 석유 생산 정점에 대한 보고서(Peaking of World Oil Production : Impacts, Mitigation & Risk Management)를 발표했다. 미국의 조사기관 SAIC에 의뢰해 작성된 이 보고서는 석유 생산 정점이 실제로 도래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석유 생산 정점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전례 없는 위기관리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그 충격을 완화할 시의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전례 없는 경제적·사회적·정치적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이 보고서는 “석유 생산 정점이 오기 최소한 10년 전에는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시기를 못 박고 있다.

만약 석유 생산 정점과 관련해 대비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이 보고서는 “석유 생산 정점에 대비하지 않을 경우 전 세계는 20년 이상 심각한 석유 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그 결과 엄청난 경제적 대격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일단 석유 생산 정점이 오면 그 이후부터 석유 생산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이 석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을 시작하면, 세계 석유 수요는 공급과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일단 석유 생산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말 그대로 ‘대혼란’은 불가피하다.

그라츠 대의 마틴 미텔바흐 교수는 “지난 11월 인도네시아 출장 길에 부시 대통령을 만났다”며 “부시 대통령이 경유 대신 자동차의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바이오디젤유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고 세상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석유를 대신할 수송 연료를 개발하는 데 주력해 왔다.

부시 대통령이 “미국은 석유에 중독돼 있다”며 공개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선 데는 바로 이런 배경이 있었다. 마침 2006년은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석유 생산 정점이 올 것으로 예상한 2015년까지 채 10년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인류가 한 번도 직면한 적이 없는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움직임이 세계적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결국은 카산드라가 맞았다”

현실에서는 여전히 낙관론자가 득세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석유회사 에니의 레오나르도 마우제리 부사장이 2006년 말 <뉴스위크>에 기고한 글(The New Age of Oil)은 대표적이다. 그는 “지금은 석유 시대의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석유 시대로 접어들었다”며 “현재 예상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석유가 지하에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낙관론자들이 기대는 것은 바로 미국 지질조사국(USGS)의 석유 매장량 통계와 이에 기반을 둔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의 전망이다. USGS는 전 세계적으로 2조6000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돼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의 발표를 근거로 집계한 석유 매장량 1조7000억 배럴에 카스피 해, 서아프리카 등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9000억 배럴을 더한 양이다.

그러나 이 USGS의 석유 매장량 통계는 많은 불신을 받고 있다. 즉 미국 본토의 매장량 통계는 비교적 정확한 반면에 공개되지 않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서남아시아의 매장량 통계는 과장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미 살펴본 사이먼스 회장의 <사막의 황혼>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매장량 통계의 허점을 정확히 짚었다.

낙관론자들은 과학기술이 더 많은 석유 생산을 보장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앞으로 발견될 유전은 지금까지 발견된 유전보다 전 과정에서 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1배럴의 석유를 얻기 위해 1배럴의 석유와 같은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는 경우 그런 유전의 가치는 ‘0’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그런 석유 탐사에 누가 돈을 댈 것인가?


▲ 쉘 알레크렛 ASPO 의장. ⓒ프레시안

이런 낙관론자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존재가 바로 2010년을 전후한 시점에 석유 생산 정점이 올 것을 경고해 온 ASPO(The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Peak Oil & Gas)의 지식인들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쉘 알레크렛 ASPO 의장(스웨덴 웁살라 대학 교수)은 자신을 비롯한 ASPO의 지식인을 트로이의 패배를 경고한 카산드라에 비유했다.

알레크렛 의장은 “카산드라는 트로이 인에게 무시당했지만 트로이 인은 뒤늦게야 카산드라가 옳다는 것을 알았다”며 “하지만 이미 그 때는 늦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낙관주의자의 얘기는 당장 듣기에는 좋지만 그것이 항상 진실은 아니다”며 “다행히 카산드라의 경고를 경청하는 언론인, 정치인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좋은 신호”라고 지적했다.

알레크렛 의장은 “구글(www.google.com)에서 ‘Peak Oil’이 포함된 문서를 검색해보면 관련 문서가 최근(2006년 11월 말 기준) 6개월 새 300만 개에서 1000만 개로 늘어났다”며 “2001년 창립된 ASPO도 현재 총 19개 국가로 그 네트워크가 확대되었고 조만간 일본, 중국에도 설립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알레크렛 의장은 특히 “석유 공급의 안정성을 미국 국민에게 안심시켜야 하는 것과 같은 정치적인 이유로 현실을 왜곡하는 미국의 에너지정보청(EIA)이 제공하는 편향된 정보에만 의존하지 말고 세계적인 에너지 정책의 큰 흐름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주목해야 한다”며 “한국도 더 늦기 전에 석유 생산 정점에 대비할 수 있는 중·장기적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알레크렛 의장은 2006년 초에 국내 언론에 크게 보도된 스웨덴의 ‘2020 석유 제로(0) 선언’이 나오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스웨덴은 2020년까지 난방용으로 쓰는 석유를 ‘0’로 하고, 수송용, 산업용으로 쓰이는 석유도 현재 수준보다 20~40%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알레크렛 의장 인터뷰 전문 보기)

강양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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