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일반 관련자료

토지의 공공성을 현실로 만드는 싱가포르

500만원만 있어도 30평 아파트 산다
‘반값분양’으로 ‘내집 꿈’ 해결한 싱가포르 HDB 아파트
– 이봉렬(solneum) 기자

‘토지는 공공이 소유, 임대하고 건물만 분양한다. 의무기간 내에는 주택을 정부에 되팔아야 한다.’ 최근 싱가포르식 ‘환매조건부 분양정책’이 아파트값 폭등을 막는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분양가를 민영의 절반으로 낮추고 개발이익을 환수해 서민들에게도 30평대 아파트 생활을 보장하고 있는 싱가포르 주택정책을 현지에서 살펴봅니다. <편집자 주>

싱가포르의 한 중소기업 구매담당자인 로잘린(32)은 한국인 동료가 한국 아파트값 폭등 때문에 한숨짓는 모습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로잘린은 6년 전 결혼하면서 침실이 3개고 거실, 주방 그리고 다용도실이 딸린 30평대 아파트(싱가포르 규격 5-Room Type)를 현금 500만원만 내고 샀기 때문에 집 문제로 고민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30평대 아파트를 살 수 있었던 건 싱가포르 주택개발청(HDB: Housing Development Board)이 주도하는 독특한 주택정책 덕분이다.

로잘린이 구입한 HDB아파트의 분양가는 대략 1억2천만원 정도였다. 이는 민간업체가 분양하는 아파트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다. HDB는 연기금을 활용해 토지를 개발하고, 아파트 단지 전체가 아닌 건물만 개별 분양하기 때문에 이처럼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토지는 공공소유, 건물만 ‘반값 분양’

집값이 낮을 뿐 아니라 HDB가 운영하는 각종 지원제도를 잘 활용하면 집을 살 때 목돈이 필요없다. 실제로 로잘린은 집값의 80%를 주택개발청을 통해 30년 장기 대출로 해결했다. 금리는 2%대로 크게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다.

나머지 16%는 로잘린이 가입한 연기금(CPF)을 통해 충당했다. CPF란 10달러 이상 월급을 받는 모든 싱가포르 노동자들이 월급의 31%를 의무적으로 저축하게 만든 연기금 제도로, 그 절반은 회사에서 부담하기 때문에 로잘린은 회사에서 일부 지원을 받아 집을 산 셈이다.

게다가 로잘린은 집을 살 때 3천만원 정도 할인 혜택까지 받았다. 부모가 거주하는 HDB 아파트와 가까운 HDB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집값을 할인해 주는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에게는 30%를 추가로 할인해 주는 제도도 있지만 회사에 다니는 로잘린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로잘린이 이처럼 저렴하게 HDB 아파트를 사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월 평균 소득이 400만원 이하이어야 하며, 가족이 1명 이상 있어야 한다.(독신자는 35세 이상이 되어야 자격이 주어지고 집 크기에도 제한을 받는다.)

대신 개인이 파산을 해도 은행에서 HDB 아파트만큼은 가져가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보호해 준다. 이같은 조건을 보면 HDB 아파트의 공급이 실수요자인 서민층의 주거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매조건부 분양으로 불로소득 차단

로잘린이 원한다면 좀더 넓은 아파트 또는 다른 곳의 아파트를 분양받아 옮길 수도 있다. 그러려면 분양받은 아파트에서 5년 이상 거주해야 하고(두번째 분양받은 집의 의무 거주 기간은 3년), 기존 대출을 다 갚아야 한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HDB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는 횟수는 일생에 두 번뿐이다. 두 번째 분양 이후에도 HDB 아파트를 살 수는 있지만 정부 지원은 없고, 5% 이상의 변동금리가 적용되는 은행대출을 이용해야 한다.

5년 의무거주기간 안에 집을 팔아야 할 경우에는 반드시 주택개발청에 되팔아야 한다. 이는 ‘환매조건부분양’이라고 하는 싱가포르의 독특한 제도로서, 이로 인해 공공주택 시장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가능하게 되고 ‘주거 목적의 공공아파트 공급’이라는 싱가포르 주택정책의 기본 틀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주택개발청에 되팔 경우에는 시세보다 훨씬 낮은 분양가를 기준으로 정산하기 때문에 일단 분양받으면 거의 대부분 의무거주기간을 채우게 된다.

싱가포르의 HDB 보급율은 최근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2006년 현재 싱가포르 인구의 82%가 HDB 아파트에 살고 있다.

주택개발청 자료에 따르면 2006년 5월 현재 싱가포르 국민의 82%가 HDB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한다. 나머지 18%의 국민은 HDB 아파트보다 2배 이상 비싼 민간아파트를 분양받아 살거나 단독주택에 산다.

저소득층과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HDB 아파트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에 비해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민간 아파트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다.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외국인 역시 HDB 아파트의 분양 및 거주자격이 없기 때문에 주로 콘도미니엄 등을 사거나 임대해서 산다.

내 집 마련 고민은 남의 나라 이야기

싱가포르 민간아파트. 단지 내 수영장과 헬스장 등 부대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고소득층이 선호한다

82%라는 수치가 보여주듯이 싱가포르에서는 고소득층과 일부 개인사업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수요를 HDB 아파트가 흡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민간아파트의 가격이 경기에 따라 크게 변하는 동안에도 HDB 아파트는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한번 입주하면 5년 이상은 기본으로 살게 되는 아파트의 시세 변화에 서민들이 둔감할 수밖에 없다. 내 집 마련에 대한 고민은 이들에게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다고 로잘린이 HDB 아파트에 아무런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에 수영장과 헬스장, 테니스코트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사설경비업체의 보호를 받는 민간 아파트와 비교하면 HDB의 시설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게다가 의무거주기간의 제한 때문에 직장을 옮기는 등 사정이 있어도 집을 옮기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HDB 아파트에 사는 불편 중 하나다.

하지만 내 집 마련이 평생의 숙원 사업인양 고민하고 사는 한국인 동료들을 보면 싱가포르의 주택정책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하는 게 얼마나 큰 사치인가 하는 것을 로잘린도 잘 안다.

로잘린은 한국인 동료들에게 싱가포르 영주권을 받으면 HDB 아파트에 입주할 자격도 함께 받는다는 사실을 이야기해 줄 생각이다. 그들의 내 집 마련 고민이 딱해 보이기 때문이다.

admin

정책·일반 관련자료의 최신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