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일반 관련자료

일본 40대 샐러리맨의 ‘부동산 버블’ 체험담

거품과 함께 사라진 내 돈 2천만엔
일본 40대 샐러리맨의 ‘부동산 버블’ 체험담
-아라이 코이치(news) 기자

“현재 달아오른 부동산 경기가 과연 ‘버블(거품)’이냐, 아니냐.” 정부는 ‘버블 상태’라며 1990년대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곧 거품이 꺼질 것이라 경고하고 있으나, 이를 비웃기라도하듯 부동산 열기는 좀처럼 식을줄 모르고 있습니다. ‘버블’은 어떻게 형성되고, 그 붕괴 과정은 어떤 고통을 수반하게 되는 것일까? <오마이뉴스>는 일본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기 위해 도쿄에 거주하는 샐러리맨 아라이 코이치(필명)씨의 부동산 버블 체험담을 소개합니다. 아라이씨는 <오마이뉴스 재팬> 시민기자입니다. <편집자 주>

OECD 15개국의 주택가격 거품형성과 붕괴(1970~1998)과정을 보면 이탈리아는 1982년, 핀란드는 1989년, 일본과 스페인은 1990년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본에서 ‘버블경기’라 불리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1980년대 후반이다. 금융완화 정책 등 여러 요인이 결부돼 땅값과 주가가 치솟고, 일본 전국이 미증유의 호경기로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러한 상승은 대부분 투기적인 매매에 의한 것으로, 땅값도 주가도 현실의 가치와는 큰 거리가 있었다. 그야말로 ‘버블’ 즉, 거품이었다.

나는 경제 전문가도 아니고 기업가도 아니어서, 버블 경기가 생긴 경위와 붕괴에 이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할 능력은 없다. 다만 당시 많은 일본인이 “땅값은 떨어지지 않는다”라는 신화에 빠졌고, 주가도 천정부지로 상승을 계속해 일본 전체가 버블에 취해있었다. 주가는 절정기에 “도쿄 23구의 땅값으로 미국을 살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많은 기업이 부동산 투기에 광분했다.

그렇지만 90년대 초부터 버블이 붕괴해 땅값과 주가가 폭락하자 은행으로부터의 차입 등에 의해 투기 부동산이 순식간에 부실채권화해 일본장기신용은행과 야마이치증권 등 ‘명문’을 불리던 대형은행과 증권회사들마저 도산으로 내몰렸다.

[1988년] 월세 3만엔 자취방을 50만엔에 처분

현재 40세인 나도 버블경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최초의 ‘버블 체험’은 대학생 시절인 1988년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야말로 버블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이다.

지방 출신인 나는 당시 도쿄 시나카와구 소재 아파트에 살면서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시나카와구는 도쿄 중심부이지만, 내가 살던 집은 월세 3만엔(약 24만원) 정도로, 3평짜리 방 하나에 부엌이 딸려있고, 욕실도 없는 싼 목조 아파트였다. 한국으로 치면 자취방 같은 개념이다.

그런 싼 아파트에도 ‘버블의 물결’이 밀려왔다. 어느 날 돌연 아파트에 대형 부동산회사의 명함을 가진 남성 2명이 찾아온 것이다. 남성은 나에게 “이 아파트 주변의 토지를 사들이려고 하니 나가주지 않겠는가, 금전적인 보상은 하겠다”고 말하며 ‘보상액’으로서 50만엔을 제시했다.

3만엔의 월세 아파트에 살고 있던 학생으로서는 놀랄 만큼 큰 돈이었다. 얼른 제안에 응해 희희낙락하며 다른 아파트로 이사했다. 이사비용은 10만엔 정도였으니까, ‘땡잡은’ 기분이 되어 남은 돈은 당시 사귀고 있던 여자친구와 노는 데 써버렸다. 그러나 같은 경험을 했던 친구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너 바보로구나. 나가고 싶지 않다고 조금만 더 버텼으면 훨씬 많은 돈을 받아낼 수 있었을 텐데.”

친구에 따르면, 싼 아파트라고 하지만 세입자인 나에게도 일정한 권한이 있다. 부동산 업자는 급등하는 땅값에 눈떠 부동산을 사 모으고, 그것을 전매해서 거액의 이익을 챙기려는 것인데, 잘만 교섭하면 50만엔이 아니라, 100만엔·200만엔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당시 일본 각지에서 벌어졌는데, 이를 ‘지아게(地上げ)’라고 한다.

90년대에 들어서자 일본의 버블은 간단히 붕괴했다. 땅값도 주가도 급락했다.

[2000년] 6천만엔에 구입한 맨션이 4천만엔까지 폭락

천정부지로 치솟던 토지를 담보로 하면 은행은 얼마든지 돈을 빌려줬다.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재개발’이란 명목으로 토지를 사들이고, 그것을 밑천으로 다시 토지를 사 모은다. 일개 부동산업자가 돌연 미국의 경제지에 세계 톱10에 들어가는 ‘부호’로 소개된 것이 이 때쯤이었다.

‘지아게’에는 야쿠자 등도 개입해 주민을 협박해서 토지를 사모으는 일이 횡행해 사회문제화되기도 했다. 버블 경기의 전성기에는 도쿄의 한 구석에 살던 학생인 나에게까지 물결이 밀려올 만큼 일본이라는 나라는 토지와 주식의 버블에 춤추고 있었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서자 버블은 간단히 붕괴했다. 땅값도 주가도 급락했다. 땅값 상승을 기대하고 부동산 투기로 내달렸던 기업들은 창백해졌다. 부동산을 담보로 거액의 융자를 했던 은행들은 산더미 같은 부실채권에 꼼짝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개인 차원에서도, 버블 전성기에 돈을 빌려 부동산을 구입했던 사람들 가운데는 땅값 급락으로 빚만 남은 케이스가 헤아릴 수 없다.

버블 붕괴 후인 1996년의 일이다. 나는 도쿄 도심 시부야구에 맨션을 샀다. 96년이라면 버블 붕괴가 일단락돼 미디어 일부에서는 “땅값이 이 이상은 떨어지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부동산 투기를 할 생각도 아니었고, 아내도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교통이 편리한 도심에 작은 맨션을 구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곤 하지만 솔직히 미디어와 경제학자의 분석에는 기대하고 있었다. 구입액은 6천만엔 정도였다.

하지만 땅값은 더욱 떨어졌다. 6천만엔에 구입한 맨션은 2000년경 4천만엔까지 떨어졌다. 겨우 몇년 사이에 2천만엔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는 계산이 된다. 샐러리맨인 나로서는 너무나도 아픈 손실이다.

일본은 최근 조금씩이긴 하지만 경기회복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고 한다. 우리 맨션의 가격도 현재 조금 회복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렇더라도 구입 당시의 금액으로는 좀처럼 되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주식·부동산 움직여 이익얻는 상황은 정상 아니다

버블 경기와 관련해서는 내 주변에 이런 이야기도 있다.

회사 선배는 버블 붕괴 직전 해외 발령이 나서 맨션을 팔았다. 당시에는 구입가의 몇 배가 되는 금액에 팔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해외근무를 마치고 귀국했을 때는 버블이 붕괴된 후로 땅값은 급락하고 있었다. 맨션을 판 돈을 저금했던 선배는 그 돈으로 시내에 마당이 딸린 단독주택을 구입했다. 작은 맨션이 힘들이지 않고 호화 단독주택으로 ‘환생’한 것이다. 우리들은 “참 운 좋다”라며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이런 예는 아주 드물다. 버블 경기와 그 붕괴는 일본사회에 커다란 상흔을 남겼다. 버블 붕괴 후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장기 경기침체기에 들어가 부실채권투성이인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공적자금’이란 이름으로 세금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이 투입했다.

무엇보다도 ‘머니 게임’은 사람의 마음을 황폐화시켰다. 돈과 주식, 부동산 등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는 것만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는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신기루일 뿐이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admin

정책·일반 관련자료의 최신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