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일반 관련자료

‘내가 방명록으로 보이니?’…낙서로 고통받는 식물원 나무들

[쿠키 사회]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끼는 식물들이 배려심 없는 인간에 의해 ‘방명록’ 신세로 전락해 신음하고 있다.


‘식물 학대’에 대한 제보를 받은 쿠키뉴스팀은 지난 9일 제주 여미지식물원측에 요청해 20여장의 사진을 받을 수 있었다. 모두 방문객들의 ‘낙서’로 인해 심하게 훼손된 식물의 모습이었다.

여미지 식물원은 아시아 최대규모를 자랑하며 연간 100만여명의 손님이 다녀간다. 그러나 식물원에 따르면 방문객들은 식물 200여 그루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송곳처럼 끝이 날카로운 물체로 식물 줄기와 잎, 나무 기둥을 후벼 판 자국들이다. ‘000 다녀감’ 같은 방문객 이름, ‘000 사랑해’ 같은 애정 표현, 부모님 건강을 기원하는 짧은 편지, 하트 모양 등 그 유형도 다양하다.

선인장 대나무 야자수 파키라 아가베 등 비교적 딱딱하고 반질반질한 잎과 줄기를 가진 식물들의 고통이 가장 크다. 대나무의 한 종류인 호로죽, 파키라 등에는 한 나무에 100여개가 넘는 방문객 이름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름을 새기려다 실패해 뜻도 알 수 없는 ‘나무 문신’을 남긴 이들도 있다.

이런 낙서는 식물의 생장을 위협한다. 식물 줄기 표면 아래에는 뿌리가 흡수한 수분과 영양분 등이 이동하는 관다발층이 있다. 날카로운 물체가 파고 들면 이 관다발 층이 망가진다. 자연스레 수분 영양분 이동에 지장이 생겨 식물이 정상적으로 자랄 수 없다. 잎에서 주로 일어나는 식물의 증산 및 호흡 작용도 방해한다.

식물을 보러온 다른 관람객에게 공포심을 줄 수 있다. 낙서를 할때 난 식물 표면의 깊은 상처가 아물면서 문신같은 흉터가 남아 미관을 헤친다. 여미지식물원 측은 비교적 크기가 작은 아가베류의 잎을 자르고 선인장류는 새로운 식물로 교체하고 있다. 하지만 야자수 대나무 파키라 등 대형식물은 자주 교체하기 어려워 흉터가 그대로 남아있다.

이곳 일부 식물들이 방명록으로 전락한지는 벌써 15년이 넘는다. 보다 못한 관리자들이 ‘식물도 우리 사람들처럼 말을 알아듣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표찰을 달아놓았다. 제발 낙서를 하지 말라는 하소연이었다. 하지만 식물에 낙서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고 한다. 사진을 찍으려 출입금지 선을 넘어 꽃밭 중앙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여전하다는 설명이었다.

식물원 측의 속앓이도 오래다. 입장료에 의존하는 식물원인 탓에 관람객이 낙서를 하더라도 말로만 제지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크게 화를 내거나 경찰 등을 부르면 그만큼 서비스 이미지가 나빠지기 때문이다.

오창호 여미지식물원 식물팀장은 “식물도 사람처럼 고통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는 생물”이라며 “식물에 낙서를 하는 행위는 사람의 몸을 후벼 파는 것과 같다는 생각으로 배려해 달라”고 호소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민성 기자 mean@kmib.co.kr

admin

정책·일반 관련자료의 최신글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