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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말’에 전한다. ‘그래도 핵은 안된다’

월간 ‘말’에 전한다. ‘그래도 핵은 안된다’
‘진보진영 내부의 북핵 논쟁’을 바라보는 월간 말의 시각에 대해

임세환 기자

이 기사는 월간 말 2006년 11월호에 게재된 문형구 기자의 ‘그래도 핵은 안된다? 진보진영 내부의 북핵 논쟁’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제공하는 기사다. ‘그래도 핵은 안된다?’ 기사는 각종 핵 용인론을 ‘진보진영의 주류적 견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진보진영 내) 비판적인 시각’들을 비판한 기사다.

문형구 기자가 ‘진보진영의 주류적 견해’라고 말한 각종 핵 용인론이 과연 ‘주류적 견해’인지가 첫 번째 의문이다. 한국 진보진영의 주류적 견해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을 만큼, 북한 핵실험 이후 진보진영 모두가 공식적인 입장을 뚜렷하게 밝혔던 것도 아니다. 문형구 기사가 자신이 쓴 기사에서 밝힌 것처럼 민주노동당도 북한 핵실험 이후의 입장을 정하기까지 극심한 내부 혼란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더 나아가서 주목해야 할 것은 문형구 기자가 ‘진보진영의 주류적 견해’라고 주장했던 각종 ‘핵 용인론이 실제로 진보진영의 주류적 견해가 되는 상황이 바람직한가에 있다. 이 문제는 또한 북핵 문제를 둘러싼 진보진영 내 혼란상의 한가운데 있는 쟁점이며, 대답을 하지 않는 진보진영의 일부가 대답을 회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핵 용인론’에 결여된 것은 이성(理性)이다

“북이 핵 개발에 나서게 된 원인을 미국의 대북압살정책과 전쟁위협으로 규정하고, 한반도에 전쟁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는 어떠한 대북제재에도 반대해야 한다는 큰 틀에 진보진영의 입장이 대체적으로 일치한다”고 했던 문형구 기자의 평가는 올바르면서도 편향됐다.

적어도 진보진영 내에서는 북한 핵실험의 1차적 책임은 북한에게 있다고 하든지, 미국에게 있다고 하든지,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미국의 대북제재 정책이 북한 핵개발의 주요한 역사적 원인이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입장은 아직까지 없었다. 문형구 기자가 기사에서 소개한 노동자의 힘의 ‘북한의 핵실험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빚어낸 결과’라는 성명서 말고도, 북한 핵실험에 대한 반대 의사를 가장 강력하게 표명해 온 한국사회당도 10월 17일자 ‘북한 외무성 당당한 핵보유국 주장에 대해’라는 성명을 통해 “지금까지 미국이 취해 온 대북적대정책이 핵실험의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평화네트워크, 평화포럼 등 지난 23일 <프로메테우스 토론회-북핵 사태에 대한 평화주의의 선택>에 참여했던 한국 평화단체들의 입장도 다르지 않았다.

차이는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원인으로 작용했나, 아닌가에 있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원인의 전부인가, 일부인가에 있다. 문형구 기자가 자신의 기사에서 “다만 개별인사들의 감성적인 반응이 다르고 소위 ‘좌파’ 진영의 경우 좀 더 한반도 비핵화(혹은 비핵지대화)에 강조점을 둔다는 정도다”라는 말도 이와 같은 차이를 표현한 것이었다. 진보진영이 북한 핵실험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북적대정책이 빚어낸 결과’라는 입장과 ‘대북적대정책이 핵실험의 한 원인’이라고 말하는, 그런 차이가 있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압살정책이 북한 핵개발 원인”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우선 정책결정과정의 다양한 변수를 고려했다고 보기 어려운 주장이다. 논점은 단순하다. 미국의 적대정책에 핵개발로 대응한 것은 선군정치를 강조해 온 북한 김정일 정권의 주체적 판단이었고, 그런 만큼 최고 정책결정권자들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벼랑 끝 외교’라고 불릴 만큼 미국의 고립 정책에 스스로 더 고립되는 방식으로 답을 해 온 게 북한의 외교였고, 그 대미를 장식한 게 10월 9일의 핵실험이었다. 정종권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도 <프로메테우스>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북한 핵실험 정세가 북한과 미국 쌍방향의 관계에서 벌어진 일인데, 북에 책임이 전가되는 것에 대해서 우려를 한다”면서도 “북한은 이러한 상황에서 굉장한 위기의식을 가지면서, 그 해결방식으로 국제연대와 같은 방식을 생각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북한 핵실험의 1차적 책임은 북한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핵을 계속 보유할지, 폐기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북한 정권, 혹은 군부의 몫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강조하는, 사태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며, 강조점을 찍는 하나의 방식이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북한 핵실험의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의 몰역사성을 지적하기 위해서라도 “대북정책이 빚어낸 결과”라는 균형을 잃은 주장을 진보진영이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북한이 핵을 보유해도 북한의 핵에 한해서 자위적 수단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혹은 북미 관계에서 생기는 일의 책임은 언제나 미국에게 있다는 주장은 더 위험한 비이성적 주장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주한미군철수운동본부가 10월 9일 발표한 “핵무기로 미제의 숨통을 끊어놔야 한다”는 호소문이 균형 감각을 상실한 진보진영 전쟁 호도용 발언의 극단이었다.

사실 이런 식의 주장은 상당히 감정적이고 한반도에서 전쟁 불안을 고조시킨다는 점에서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의 전쟁불사 발언, 일본과 미국의 PSI 참여 주장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누가 전쟁을 일으키든지, 전쟁을 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점에 있어서 똑같은 것이다. 민주노총 일각에서 북한 핵개발에 대해 “환영성명을 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핵 자위적 수단, 혹은 핵 억지력 주장

보다 완화된 표현으로 북한의 핵 보유를 현실적으로 인정하자는 주장은 이용대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의 “북한 핵의 자위적 성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식의 발언으로 표현됐다. 민주노동자전국회의 일부 인사들이 “미국의 핵 선제공격 계획에 대한 유일한 억지력이 자위적 핵무장뿐인 현실에서 북의 핵무장을 비판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던 것이나, 안영민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의 “핵으로 공격하는 것도 방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으나, 현실에서 핵이 억지력을 가질 수는 있다. 가치관으로서 바람직한 것인가와 실제 상황에서 전쟁 억지력이 있는가를 구분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게 같은 맥락이다.

‘핵보유, 가치관으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으나 현실적으로 인정하자’는 말과 ‘핵보유를 인정하자’는 말이 다른가. 말은 다르지만 그 드러나는 모습은 현실에서 얼마나 어떻게 다른가.

핵 억지력 주장은 핵무기를 보유하는 국가들이 자신들의 핵 보유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언제나 했던 말이다. 단지 적대 국가, 혹은 경쟁 국가가 핵을 보유했기 때문에 ‘자위적 수단’으로 핵을 보유한다고 말했다. 그런 맥락에서 전략적 핵 보유라는 말이 공인된 명분으로 통용됐다. 1945년 이래 인류 생명에 대한 위협의 증가가 그것에 정비례했다.

핵의 자위적 성격을 이야기하는 것은 북한뿐만이 아니다. 일본이 핵 보유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때도 북한과 같은 명분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같은 명분을 내걸고 핵 보유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 핵실험 이후, 동아시아 핵도미노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차라리 양비론이 옳다

진보정치연구소가 “문제는 북한의 핵을 해체시키고 북한의 추가적 행동을 막는 일”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재 일변도 정책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므로 제재와 대화, 협상을 병행하라고 한미 양국에 권고한 것, 민주노동당 내 좌파 주류인 전진이 “북 체제가 위험에 처한다면 그것은 외부충격이 아니라 내부요인일 것”이라며 “북이 진정으로 체제안전을 담보하려면 좀 더 전진된 개혁과 개방으로 경제난을 해소하고, 체제를 민주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두고 양비론이라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문형구 기자의 기사도 마찬가지다.

북한 핵실험 국면에 미국도 잘못했다고 하고, 북한도 잘못했다고 하는 것이 양비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진영의 어느 누구도 북한 핵실험의 국면에 ‘북한 반대’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북한이 행한 핵실험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여기에는 “핵”에 대한 분명한 반대가 북한 핵실험 이후 사태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관점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때문에 한국의 반핵평화세력은 북한의 핵 보유에 대해서도,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핵우산 정책에 대해서도, 일본의 핵무장 발언에 대해서도 일관된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표현해왔다. 11월 6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동북아 비핵화를 위한 한국와 일본 반핵운동의 과제’라는 국제포럼에 참가한 한국사회당, 민주노동당 환경위원회, 평화네트워크, 환경운동연합, 청년환경센터 등과 일본의 원수폭금지일본국민회의, 핵발전소 없는 살기 좋은 마키정을 만드는 모임도 마찬가지의 입장을 전개했다.

핵에 대한 분명한 반대 입장이 미국의 핵, 북한의 핵도 반대하는 꼴이라서 양비론이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그것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가장 균형 잡힌 시각일 수 있다. ‘북한 핵실험의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온 한나라당이 결국 ‘미국의 핵우산’이라는 형태로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위협하는 상황도, ‘북한 핵실험의 1차적 책임은 미국’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소위 자주파가 ‘북한 핵 용인론’에 끊임없이 빠져드는 상황도, 두 개의 주장이 근본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주장이 아니라는 것만 더 자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문형구 기자는 핵실험 직후 실시된 MBC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1.9%가 북한이 ‘자위적 수단으로 핵실험을 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며, “이 정도의 응답이라면 낙인찍혀 고립되는 수준은 넘어섰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도, 이란도, 시리아도, 수단도, 일본도, 대만도 마찬가지로 ‘자위적 수단으로 핵실험을 할 수 있다’고 질문했을 때, 답변은 어떻게 나올까? 또 찬성이 많이 나오는 입장과 반대가 많이 나오는 입장 중 바람직한 것은 어떤 것일까? 모두가 핵을 보유할 수 있다는 전세계 핵무장론을 당연히 경계해야 하지만, ‘북한은 되고 다른 나라는 안 된다’는 논리도 경계해야 하는 게 ‘반미’주의자의 올바른 태도다. 미국의 일방외교야 말로 “우리는 되는데, 남은 안 돼”라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문형구 기자는 ‘민주노동당의 한 중앙위원은 “국민의 99%가 핵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핵을 반대한다’는 주장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며 “북한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한반도 전체가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에서 정파 가르기나 하는 모습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는 문장으로 기사를 마무리했다.

민주노동당의 한 중앙위원이 했다는 이 말은, 민주노동당이 ‘분명한 유감’이라는 북한 핵실험에 대한 입장을 확정하는 확대간부회의에서 이용대 정책위의장이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와 언쟁을 벌이면서 했던 말이기도 하다. 역으로 질문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상황을 99% 이상이 핵을 반대하는 국가의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 게 옳은 것일까.

핵에 대한 보편적 반대 입장을 주장하는 게 꼭 정파 가르기는 아니다. 미국의 핵을 옹호할 것인가, 아니면 북한의 핵을 옹호할 것인가로 서로 싸우는 게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끔찍한 정파 가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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