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보전 활동소식

[체험후기] 나무가 마음에 들어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 큰 아이 진규(5살)에게 반딧불이에 관한 동화책을 읽어
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진규는 그 책에 흥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반딧불이를
직접 본 적이 없어서였다.

나도 서울서 태어나고 자라서 자연에 대한 경험도 풍부하지 않고,
감수성이 발달하지도 않은 편이다. 그렇지만 새 밀레니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진규에 비하면 조금은 나은 편인 것 같기도 하다.
초등학교 시절에 반딧불이를 본 적도 있었고, 늦가을이면 낙엽
태우는 냄새를 맡기도 했으며, 서오릉 근처의 논에서 개구리를
잡기도 했었으니까 말이다.

매달 집으로 오는 환경운동연합의 소식지 [함께 사는 길]에서
“궁궐의 우리 나무 알기”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진규에게 자연을 접하게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또한 나무공부(?)
— 제2회 모임인 경복궁을 다녀오기 전까지는 나는 요즘 엄마로서
진규에게 나무에 관한 공부를 시킬 의도가 컸었다 —를 시킬
아주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프로그램 참가를 신청했다. 서울 시내에
있는 궁궐이 학습장소라는 것도 나에게는 매우 좋은 조건이었다(작은
아이가 이제 만 16개월인데다가, 아이들 아빠가 직장 때문에
토요일날 함께 외출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서 나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나들이를 가려면 서울시내가 적당했다)

3월 23일
박상진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다. 제일 뒤에 앉은 어린 진규는
다른 분들에게 방해가 될 만큼 소란을 피우다 결국 잠이 들었다.
그 덕분에 나는 강의 뒷 부분을 들을 수 있었다.
향긋한 꽃내음을 선사하는 라일락 나무가 사실은 유럽 유학을 다녀온
우리 나무 수수꽃다리 나무라는 것, 식물학적으로는 참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살아 있는 화석’ 은행나무 등에 관한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동안 무심히 스쳐지나온 나무들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또 다른
차원의 문을 열고 그 세계를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의
관심사는 결혼 만6년 만에 사람사는 세상에서 나의 가족, 나의
아이에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내 곁에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보지 못했던 나무의 세계…. 나무에게 그 고유의 이름을 불러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나무에 관한 나의 상식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나와 함께 숨쉬고 있는 생명체에 대한 존중감을
나타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궁궐의 나무에 관한 고증이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박상진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궁궐의 복원이 단지 건축물만의
복원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이 날의 강의에서 조금 아쉬웠다면, 현장학습 때처럼, 성인반과
어린이반으로 나누었으면 진규에게도 조금은 의미 있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4월 13일
진규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고 선생님의 강의와는 상관없이
뛰어 다녔다. 광화문으로 다시 들어서며, 조선시대의 관료도 입궐할
때, 나와 같이 이 문을 통과했을까 상상을 해 보았다. 그리고
동십자각이 조선시대에는 궁의 일부였다는 설명을 들었다. 전에는
큰 도로 한 가운데에 왜 저런 누각을 세워놓았을까 하던 나의
생각이 궁을 훼손하며 길을 낸 우리의 어리석음으로 바뀌었다.
박미선 선생님과 궁을 함께 돌면서 설명을 들었다. 그제서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 나무 껍질 무늬가 가로인 것도 있고,
세로인 것도 있고, 껍질 색깔도 다르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수정 전 뒤의 속이 다 파헤쳐진 채 자라고 있는 버드나무의 생명력에
감탄을 하고 있을 때, 진규는 이 나무는 왜 누워서 자고 있냐고
물었다. 나무의 형성층에 관해 설명을 해주었다. 하지만 진규는
경복궁에서 본 할미꽃이 가장 인상깊었던 것 같다. 죽은 할머니의
무덤에 피어서 할미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를 어깨너머로
듣고는 나에게 물었다. 나중에 엄마는 무슨 꽃으로 필거냐고.
꽃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꽃은 다 장미꽃처럼 생겨야만 꽃
인줄 알았다. 자작나무와 서어나무의 꽃도 꽃이라는 것을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알았다. 교태전 뒤의 꽃 계단은 봄 그 자체였다.
에버랜드의 튜울립 축제가 부럽지 않았다.

4월 20일
창덕궁에 약속시간 보다 약간 일찍 도착해서 궁궐 수문장 교대식을
볼 수 있었다.
진규는 지난 주에 만났었다고 기쁨(6세)이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친구를 대하듯 서로를 반겼다. 진규와 기쁨이는 창덕궁에서
둘만의 독자 노선을 걸었다. 그 덕에 나는 경복궁에서보다 강의를
더욱 듣기가 힘들었지만, 경복궁과는 다른 아늑하고 조용한 창덕궁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특히 창덕궁의 후원은 인공의
아름다움이 아닌 그냥 자연 그대로의 정원이었다. 상수리나무의
꽃이 흩뿌려진 길 위를 걸으며, 그 열매인 도토리를 선생님께서
보여 주셨다. 진규도 도토리에 관심을 보이며 갖고 싶어했다.
가을에 진규와 함께 와서 상수리나무에서 도토리를 따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르크가 발달한 굴참나무의 껍질을
만져보면서 푹신푹신 살아있는 나무의 느낌을 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창덕궁에서 돌아오면서 차창 밖으로 경복궁을 보았다. 진규의 “저기
나 가 봤었는데..” 라는 말 한마디에 보람(?)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4월 23일
오늘 아침에 식탁에서 진규가 나무에서 꽃이 피면 열매가 열리는
것을 엄마는 어디서 배웠냐고 물었다. 나는 초등학교에서 배웠다고
하자 자기는 창덕궁에서 배웠단다.

처음 프로그램을 신청할 때보다는 경복궁과 창덕궁을 진규랑 유경이와
함께 다녀온 후에 만족감은 더욱 커졌다. 우리 진규가 열매를
이야기해서가 아니라, 그냥 궁을 같이 걸었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스럽고,
나의 마음에 나무가 들어와서 나의 눈에 나무가 보이기 시작해서이다.

글 :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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