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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서 늘상 보던 풍경… 낯설지 않다”

“팔레스타인서 늘상 보던 풍경… 낯설지 않다”
다시 평택 대추리 찾은 예술가 집단 페드로 일행

지난 16일, 전자우편으로 한 통의 초대장을 받았다. 18일부터 20일까지 서울에서 여는 ‘우리 사이에

BETWEEN US’의 실험세미나에 참가해 대화를 나누자는 내용이었다.

보낸 이는 멕시코 출신 미술가 페드로 라쉬(Pedro Lasch, 32) 그리고 그의 동료들인 팔레스타인 출신의

아이린 아나스타스(Ayreen Anastas)와 이란 출신의 르네 가브리(Rene Gabri)씨였다.

국적은 모두 다르지만 세 사람 모두 미국 뉴욕 16비버 스트리트에 작업공간을 둔 데서 출발한 ’16비

버'(www.16beavergroup.org)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한다. 이들은 오는 9월 8일부터 11월 11일까지 열릴

예정인 ‘2006년 광주 비엔날레’ 초대작가이기도 하다. ‘BETWEEN US’는 이들이 광주 비엔날레에 공동으

로 출품할 작품의 이름이다.

페드로가 대추리를 다시 찾은 이유

이들이 초대장을 보낸 이유는 페드로씨가 지난 6월 28일 1차 한국 방문 당시 대추리를 방문해 나와 짧

은 시간이나마 대화를 가진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페드로씨는 어렵사리 검문소를 통과했고 철조망 안에서 자라는 벼와 무너진 대추초등학교, 현장

미술가들의 작품활동을 목격하고 주민들과 짧은 인사도 나눴다(관련기사 참고). 그는 당시 나와 나눈

대화에서 “대추리에서 슬픔과 함께 강한 영감을 받았다”며 “8월 중순께 꼭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

를 밝혔다.

나는 18일부터 20일까지 실험세미나에 참가해 달라는 특별한 개인적 초대에 즉답을 못하고 며칠 동안이

나 답변을 미룬 채 망설였다.

대추리에 빈집 강제철거가 임박한 상황에서 하루나 이틀 동안 마을을 뜬다는 건 개인적으로 어려운 결

단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추리 주민역사관 개관 작업이 한창이어서 작은 일손이

나마 거들고 싶었다. 결국 세미나 하루 전날에야 아쉽지만 초대에 응할 수 없다고 답하고 말았다.

다행히 페드로씨 일행은 세미나 마지막 날인 20일 다른 한국인 작가들과 함께 대추리를 방문한다는 계

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그 날을 기약하며 우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 큐레이터인 김희진

씨의 도움을 받아 전자우편을 주고받았다.

문제는 그들이 지난 6월처럼 이번에도 대추리까지 들어올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경찰은 갈수록 무

차별적으로 검문을 하고 있고 2005년 이전에 대추리에 주소를 두고 있는 주민을 제외한 모든 방문자들

로부터 마을을 철저하게 봉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입 막는 건, 나쁜 짓을 하고 있기 때문”

결국 20일 낮 전세버스를 타고 온 그들은 검문에 막혀 스물 한 명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대추리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다. 먼발치에서 마을을 바라볼 수도 없었다. 시민기자인 나와 함께 마을 토박이인 김

석경(78) 할아버지까지 나서서 경찰을 설득해 보았지만 돌아온 답은 “외부인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었다.

지난 5, 6월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당시에는 경찰이 자의적인 판단으로나마 “불법집회에 참가할 우

려가 있다”는 ‘이유’라도 말했는데 최근에는 “상부지시”라는 말 한마디로 마을 출입 자체를 막고 있다

는 점이다.

한의사의 주민 진료를 보조하기 위해 찾아온 한의대생들이 한 시간 이상 검문소에서 실랑이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페드로씨 일행은 결국 대추리 방문을 포기하고 검문소 옆 야산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김석경 할아버지가 대추리 주민을 대표해서 “죽을 힘을 들여서 만든 땅이라 자식하고 똑같다”며 “도저

에 깔려죽는다고 해도 억울해서 못 나간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석경 할아버지가 마을로 돌아가신 뒤 화제는 자연스럽게 검문에 대한 것으로 맞춰졌다. 토론과 인터

뷰는 3시간 가량 더 이어졌다.

아이린씨는 “오늘 본 상황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항상 경험하고 있는 일이어서 사실 나에게는 놀라운

모습도 아니”라고 말했다. 그녀는 “지금 못 들어가게 하는 건 뭔가 안에서 나쁜 짓을 하고 있기 때문”

이라며 “이 상황을 안 이상 밖에서 더 많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페드로씨는 지난 6월 대추리를 방문하고 나서 “농사를 거의 다 지어놓은 농토만 봐도 주민들이 그것에

들인 시간과 노동 그리고 애정을 느낄 수 있었고 노인들께서 촛불집회에 모여 목숨을 걸고라도 싸우겠

다며 앉아계시는 모습만 보고도 그분들과 교감이 됐다”며 “오늘 못 들어갔지만 전에 들어가서 얻은 만

큼 감정적인 호소를 다른 곳에서 하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밖에도 권력이 농민들의 땅을 점유해가면서 사용하는 폭력적인 수단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에게 팔레스타인이나 멕시코에서의 경험은 평택을 예사롭게 볼 수 없도록 만든다.

“이주해서 살면 되지 않느냐고?”

다음은 페드로, 아이린 두 사람과 나눈 인터뷰.

– 페드로씨는 두 번째 방문이다. 아이린씨는 팔레스타인이 고향이다. 어떤 부분에 공감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나?
아이린 “팔레스타인과 이곳의 경험은 공통점이 많다. 오늘 검문소 앞에서 제지를 당하던 모습은 사실

놀라운 일도 아니다. 팔레스타인에선 항상 벌어져 온 모습이기 때문에 익숙하다. 이건 군이 어떤 땅을

점유하느냐는 문제만이 아니다. 그 지역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과 생활의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르네 가브리씨와 함께 지난 3월 팔레스타인에 갔었다. 팔레스타인 베드윈족이 이런 저런 철거과정에서

이스라엘에서 밀려나 강제 이주당한 지역을 봤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이주해 살면 되지 않느냐’고 말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 그 지역을 보면 베드윈족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베드윈족이 유지하던 천막살이와 유

목생활을 전혀 할 수 없는 콘크리트 장벽 안에 몰아넣고 게토화했다. 대안이 아닌 곳에 몰아넣은 거다.

그게 어떻게 그들이 삶을 지속할 수 있는 방식이라 할 수 있나. 그러고서도 ‘당신들은 불법 피난민들’

이라 이름 붙였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먼저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많다. 이스라엘은 이스라

엘을 자기 단일민족국가로 만들기 위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갖고 있던 이스라엘 시민권을 빼앗는 여

러 가지 정책을 펴고 있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으로 이주하면 이스라엘 국적을 잃는다는 식이다. 사실 이런 검문소는 그 껍데기를

걷어내고 들여다보면 실지로 인구수나 거주민수를 조절하는 거대한 기제이고 삶의 방식 자체를 기형으

로 만들어놓는 상징적인 도구의 하나다. 평택의 검문소도 본질에서는 같다고 본다.”

– 한국에서 정부와 주류 언론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운동을 반미주의나 보상 문제로 왜곡하

고 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느끼는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
페드로 “어떤 한 가지 방향으로만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내 생각으로는 농사

(farming)의 의미를 정서적으로 알릴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내 고향인 멕시코도 도시가 농촌을 워낙

많이 점령한 상태다. 그래서 농사(farming) 자체가 의미하는 정서를 많이 알리는 게 더욱 중요하다.

엄청난 노동의 양과 그것에 동반된 애정, 농사행위가 동반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철학 같은 것을 사

람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공감을 얻어내는 최상의 길일 것 같다. 도시와 농촌은 워낙 노동의 질이 다

르고 얻어내는 것도 달라 생각도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도시에서 휙 날아온 사람의 경우는 그 부분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다양한 방식으로 항의해야”

– 페드로씨는 이번이 두 번째다. 어떤 마음으로 왔나?
페드로 “오기 전 당연히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했다. 하나는 6월 이후 더 많은 사람이 들어와서 주민

과 만나서 저항활동이 견고해지고 활성화되길 바랐다. 하지만 멕시코에서 경험한 것도 있고 해서 쉽지

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메일로 그 사이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이게 정말 아닌가보다’, ‘아닌 쪽으로 가나보다’ 생각하며 왔

다. 오늘 검문에 걸려 못 들어간 경험을 했는데 내가 운이 나빠서 어쩌다가 걸렸구나 싶지가 않다. 다

음 단계로 들어갔구나, 5월 4일 이후에 또 다른 국면이 펼쳐졌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정말

더 이상 소통이 쉽지 않은가보다 하고 느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접자는 식으로 갈 수는 없는 거다. 일단은 한국 안

에서 이 일을 겪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 더 많이 얘기해야 된다. 안에서 움직이고 계시는 주민들이 말하

는 것보다 더 큰 목소리를 한국 내에서 내줘야 된다. 한국 내에서 다양한 항의 반응이 많이 나와 줘야

된다. 그게 핵심이다.”

아이린 “아까도 느꼈지만 마을 안에서 뭔가 나쁜 짓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못 들어가게 하는 게 분명하다

. 이 상황을 안 이상 밖에서 더 많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

페드로 “실제로 내가 들어가서 경험해서 아는데 머리로 아는 것보다 느껴서 아는 게 훨씬 중요하다. 예

를 들어 농사를 거의 다 지어놓은 농토만 봐도 그곳에 들인 시간과 노동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심

지어 노인들께서 촛불집회에 모여서 목숨을 걸고라도 지키자며 앉아계시는 모습만 봐도 가슴으로 다 느

껴졌다.

출입을 차단한 이 순간에는 저들의 승리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럴 때 반응은 들어갔을

때 거뒀던 만큼의 감정적인 호소와 이해를 똑같이 바깥에서 해내야 된다는 것이다. 이메일이나 다른 방

식의 연계를 통해서 그런 서로의 감성적인 이해를 창조해내야 한다는 또 다른 책임감을 느낀다.”

“꼭 다시 오겠다, 삶은 계속 되니까…”

아이린 “이스라엘에서도 외부에서 국제연대를 위해 동조자들이 들어올 분위기가 감지되면 당연히 못 들

어가게 한다. 들어가서 자기네가 한 일을 못 보게 하려는 거다. 집을 부수는 것도 아주 심리적인 전략

이다. 이스라엘이 아파르트헤이트 장벽을 세울 당시 장벽이 들어설 자리에 인접한 집들은 사전에 다 파

괴했다.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아예 차단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페드로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가 하나 있다. 이스라엘이 미국을 등에 업고 농민들의 땅을 강탈할 때

먼저 올리브나무를 밀었다. 몇 백 년, 심지어 몇 천 년 자란 올리브나무를 쉽게 밀어버리면서 안보나

안전을 위해서라는 미명을 내걸었음은 물론이다. 평택에서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한 것도 마찬가지

아닌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올리브나무는 한국 사람에게 쌀과 같다. 생계수단이기 때문이다.”

아이린 “올리브나무에 일체화돼 있는 사람들의 감정과 사기를 다 알기 때문에 나무베는 걸 먼저 한 것

이다. 어제 ‘하자센터’에서 찍은 영상을 보고 왔는데 대추분교에서도 나무를 제일 먼저 밀었다. 학교

쪽을 향해서 나무를 밀어서 뿌리 채로 벌러덩 넘어뜨리는 모습을 보고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페드로 “곳곳에 체크포인트가 있다. 다른 이야기지만 국적이란 것도 하나의 검문이다. 한 사람 당 한

국적을 강요하지 않나. 사람이 흑백으로 딱딱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놓는 흐름이 있는 것 같다.”

– 당신들에게는 이번이 마지막 방문이 될지도 모른다. 평택이 당신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 것 같나?
아이린 “꼭 다시 오고 싶다. 내가 보기에는 시간도 있고 공간도 있다. 군대가 야금야금 땅을 점령해서

들어오는 시간이 일단 얼마간 걸릴 것이다. 그 시간에 우리는 다른 공간에서 계속 저항하고 알릴 수 있

다. 군대가 이곳 땅을 점령하는 것을 사건의 종료로 보지 않는다. 시간은 충분하다고 본다.”

페드로 “만약 여기가 무너지면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민들이 가는

곳으로 가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주민들이 일부라도 집단이주하는 곳으로 찾아갈 것이다. 결국 평택이

라는 곳이 시간성에서 길어지고 공간에서 넓어지는 거다. 이렇게 한 번 만난 사람들이 계속 연대를 하

면 ‘다른 평택’이 나타날 때 또 그런 일을 하게 되지 않겠나. 그런 의미에서 평택은 지속된다.

지난번 방문 때 확신을 얻은 게 있다. 나는 이 곳을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하는 군사집단이 들어왔을

때 이 땅에 굳게 딛고서서 이 오랜 시간을 버텨낸 농민들의 존엄과 긍지의 장소로 기억하고 싶다. 또

이곳에서 내가 본 쌀 이미지의 아름다움을 기억할 것이다.”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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