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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시킨 ‘맥팔랜드 사건’은 이랬다

<괴물> 탄생시킨 ‘맥팔랜드 사건’은 이랬다
5년 만에야 겨우 단죄…미군 환경오염은 계속돼

“너무나 완벽한 실제 사건이 생긴 것이다. 고질라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면서 만들어졌듯, 내 영화에도 안성맞춤의 사건이 터졌고 그것이 이 영화의 오프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괴물>의 봉준호 감독)

지난 주말 개봉한 <괴물>이 한국 영화의 각종 기록을 다시 쓰면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영화를 19년 전부터 구상했다는 봉준호 감독은 영화 속 ‘괴물’이 탄생하는 원인이 된 미군의 독극물 방출이 2000년 실제 일어난 ‘맥팔랜드 사건’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도대체 이 사건은 어떠했기에 봉 감독을 단숨에 사로잡았을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하란 말이야”

이른바 ‘맥팔랜드 사건’이 대중에 알려진 데에는 미군 영안실의 한국인 군무원의 용기 있는 제보가 시발점이 됐다. 이 군무원의 제보를 받은 녹색연합은 2000년 7월 13일 “지난 2월 9일 용산 미군부대 영안실에서 시체를 방부 처리하는 데 쓰이는 ‘포르말린(포름알데히드 수용액)’ 475㎖ 480병(20상자)이 한강으로 방류됐다”고 폭로했다.

당시 방류는 영안실의 부책임자였던 앨버트 맥팔랜드(61) 씨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 영화에서는 한국인 군무원에게 점잖게 방류를 지시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제보자의 진술서에 따르면 맥팔랜드 씨는 제보자가 방류를 거부하자 “내가 시키는 대로 하란 말이야. 너 바보 아니냐(Do what the fuck I tell you, are you stupid?)”고 욕설을 퍼부으며 하수구에 버릴 것을 명령했다.

제보자는 “이 용액을 하수구에 버리는 것은 서울의 주요 식수원인 한강에 암과 출산장애를 유발하는 포름알데히드 용액을 그대로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당신 때문에 우리의 식수원이 오염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다시 한번 명령을 거부했으나 맥팔랜드 씨는 막무가내였다. 결국 제보자는 다른 미군 병사와 함께 방독면을 쓰고 지시를 이행한 후, 두통과 메스꺼움으로 3주간 병가를 내야 했다.

계속 이 문제가 꺼림칙했던 제보자는 3개월이 지난 후 미군 상부에 관련 사실을 보고한다. 그러나 미군 상부는 “물에 희석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통보해 왔다. 영화에서 맥팔랜드 씨로 분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급자는 포르말린 방류를 지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스터 김, 그냥 버려요. 한강은 크고 넓어요. 이건 명령이오.” 실제로 맥팔랜드 씨뿐만 아니라 미군 상부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5년 만에 ‘단죄’…재판정에는 3년 9개월만에 등장

우여곡절 끝에 사건 발생 수개월 만에 이 사실은 세상에 알려졌지만 정작 웃지 못할 상황은 그 뒤 무려 5년이 넘게 계속됐다. 미군은 계속 조사 뒤 후속조처를 하겠다며 머뭇거리다 여론이 비판이 거세지자 무려 열흘 뒤에야 주한미군 사령관 명의로 사과 성명을 냈다. 그러나 맥팔랜드 씨는 고작 45일간의 감봉 처분을 받은 후 계속 미군 영안실에 근무를 했던 것은 물론 심지어 승진까지 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전개를 뒤바꾸려 노력했던 것도 환경단체였다. 녹색연합은 맥팔랜드 씨를 한국 법정에 세우기 위해 그를 수질환경보전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검찰과 법무부가 수사를 해놓고도 기소결정을 계속 미뤘다. 이 문제에 언론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자 검찰과 법무부는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넘은 2001년 3월에야 벌금 500만 원에 맥팔랜드 씨를 약식기소했고, 결국 그는 재판부 직권에 의해 정식 재판에 회부되기에 이르렀다.

그 뒤에도 미군의 ‘맥팔랜드 구하기’는 계속됐다. 3년이 넘게 미군은 “한국 법원에 재판권이 없다”고 주장하며 맥팔랜드 씨의 법원 출두를 거부했다. 결국 법원은 피고 없이 재판을 진행해 사건이 발생한 지 4년 후에야 검찰 구형보다 높은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다시 1년 뒤인 2005년 1월 19일에는 2심에서도 징역 6개월의 실형이 확정된 후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맥팔랜드 씨는 2004년 12월 항소심 재판정에만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한국과 일본에서는 두 가지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맥팔랜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기 불과 열흘 전인 2000년 7월 3일 일본 오키나와에서는 미군 해병에 의해 10대 여학생이 성폭행 위협을 받은 일이 있었다. 한국에서 미군의 ‘맥팔랜드 구하기’가 진행되는 그 순간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일본 국민에게 정식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2년 후 한국에서는 2명의 여중생이 장갑차에 압사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미군 오염기지에서도 ‘괴물’이?

6년 전에 발생한 ‘맥팔랜드 사건’은 그나마 주한미군의 환경오염에 대한 한국 사회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최근 주한미군은 반환 미군기지의 환경오염을 제대로 치유하지도 않은 채 일방적으로 반환하기로 했고 한국 정부는 이를 그대로 수용하기로 했다. 반환 미군기지의 토양 오염과 지하수 오염은 기준치를 갖다 들이대는 게 민망할 정도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정부는 협상을 했다고는 하지만 최근에 드러난 정황은 사실상 미국이 자신의 반환 계획에 따라 통보만 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한국 정부마저 “당초 원하던 수준에서 미흡한 것은 사실”이라고 협상 결과가 불만족스러움을 시인했다. 결국 토양 오염 등을 치유하는 데 드는 비용 수천억 원(정부는 1000억 원, 환경단체는 5000억 원)은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게 됐다.

5년 후쯤 오염된 미군기지에서 또 다른 ‘기형 괴물’이 등장하는 <괴물 2>가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한반도의 역사는 계속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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