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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저 뚝 얼른 터야 혀”

[오마이뉴스 이주빈 기자]















여전히 목어(木魚)는 방조제 안을 벗어나지 못하고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어떤 날 목어는 갯벌과 함께 그렇게 썩어갈지도
모른다.
ⓒ2006 오마이뉴스 이주빈
















저항력이 많이 떨어진 백합은 캐기도 전에 이미 죽어있거나 캐자마자 죽는 경우가 많아졌다. 예전과 달리 새만금 갯벌에 진동하는 썩은 냄새는 이렇게
갯벌과 함께 살아가던 뭇생명들이 죽어가는 처참한 절규다.
ⓒ2006 오마이뉴스 이주빈

작은 버스에 몸을 싣고 ‘지역에서 희망을 찾아보겠다’고 길을 나선
지 벌써 12일째. 그리운 벗, 세 시간 남짓의 수면으로 버티는 강행군이지만 지치진 않습니다. 제가 선 바로 그 자리에서, 소담스럽게 희망꽃을
가꿔온 이들과의 귀한 만남이 활력제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추억이 있는 곳에 가면 기억은 더욱 선명해지나 봅니다. 11일 다시
찾아간 새만금에서 저는 넉 달 전 기억이 무섭도록 선명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지난 3월 중순 저는 어민들의 해상시위를 취재하기
위해 새만금에 있었지요. 새만금 방조제 끝물막이 공사 지속 여부에 대한 대법원 최종판결을 앞두고 주민들이 해상시위가 이어졌거든요.


주민들은 바다 한가운데서 배와 배를 묶고 밤샘 정박시위에 들어갔습니다. 저와 후배기자들은 기사송고를 위해 뭍으로 나오다 그만
‘뻘등(갯벌 등)’에 갇히고 말았지요. 그렇게 8시간 30분 동안 서해바다에서 표류했습니다.
















지난 3월 중순 어민 해상시위를 취재하기 위해 새만금에 갔다 ‘뻘등’에 걸려 바다 한가운데 멈춰 선 선외기에서 비상용 라면으로 허기를 채우고
있는 오마이뉴스 기자들.
ⓒ2006 오마이뉴스
부안평야와도 같은 서해 갯벌 위에서 밀물 때를 기다리며 우리는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냈어요. 하지만 우리는 전혀 공포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뻘등을 비추는 달빛은 따뜻했고, 새만금방조제를 타고 넘어온 바람은
부드러웠습니다. 특히 그 갯내음, 순한 뻘이 뭇 생명을 보듬어 안고 숨 쉴 때 나오는 어머니 젖 같은 갯내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벗, 넉 달여 만에 다시 찾은 새만금에서 저는 어머니 젖 같은 갯내음을 다시 맡지 못했습니다. 장맛비가 세차게 내려치는
새만금 뻘밭에 한동안 서 있었지만 콧속을 파고드는 썩은 냄새는 가시질 않더군요. 죽은 백합이 썩어가며 내는 악취는 처참한 절규였습니다.


지난 4월 21일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방조제가 생기면서 바닷물의 자유로운 왕래는 끊겼습니다. 바다조개는 민물에 노출되면 급속도로
약해지는 습성이 있지요. 예전처럼 주민들이 백합을 캐도 이미 죽었거나 금방 죽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팔수도, 먹을 수도 없는 죽은
백합을 주민들은 장례를 치르듯 갯벌에 모아 버리고 있더군요.

죽은 백합 더미엔 쇠파리 떼가 점령군처럼 몰려들어 포식을 합니다.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썩은 주검을, 속도 모르는 쇠파리 떼는 파시 만난 갈매기처럼 물어뜯고 배를 채웁니다. 썩은 생태의 고리를 발견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요?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했던 수경 스님이 그랬다지요. “인간이 만들어낸 저 탐욕의 역사, 인간들이
거둬들이면 제일 다행이지만 인간이 거둬들이지 못하면 자연이 태풍으로 건 무엇으로 건 반드시 응징하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뻔히
끝이 보이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인간, 그 족속의 한 아류일 뿐인 제가 답답한 가슴 한숨으로 쓸어내리며 갯벌에 서 있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더군요, 희망을 찾겠다고 나선 길에서 절망을 하다니….















▲ 석
달 만에 백합을 캔 주민들이 경운기를 타고 돌아오고 있다. 그 앞 지렛대처럼 갯벌에 누워있는 것은 철게를 잡는 도구. 방조제가 생기기 전엔 캘
백합 등이 많아 주민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다가 한 푼이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철게잡이를 시작한 것이다.
ⓒ2006 오마이뉴스 이주빈
뒤숭숭한 마음은 장맛비와 함께 죽은 갯벌을 굴렀습니다. 그런데 얼마쯤
후였을까, 저 멀리서 경운기 한 대가 돌아오고 있는 게 보였어요. 주민들이 백합을 캐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석 달
만에 처음으로 백합 캤어. 하이고 옛날에야 맨날 잡았제. 방조제 막혀버린 후로는 잘 가도 못했어. 오늘 방조제 물 뺀다고 한께 나가본거여, 석달
만에. 오늘 우리 셋이 잡은 백합이 십만원 어치는 될거여. 이것도 어디여. 그래도 석달 만에 캤는데….”

계화도 순덕이 이모는
간만에 맛본 ‘손맛’에 들뜬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나머지 두 아주머니도 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얼굴엔 기쁜 미소가 보기 좋게 퍼져 있구요.


“백합이 왜 죽냐고? 요놈들은 민물 때 나왔다가 썰물 때 뻘로 들어가야 하는디 그게 안되잔혀. 비가 온께 민물 들어온 줄 알고
나왔는디 민물이 아닌겨. 다시 구멍으로 들어가야 하는디 들어갈 힘이 없어 못 들어가고 그냥 죽어버리는겨. 지금은 어찌어찌 버티고 있지만 저것들
금방 다 죽어버릴 것이여.”

석달 만에 백합을 캔 기쁨과 곧 현실로 될 미래의 비애가 한 치 어긋남 없이 교차하더군요. 백합들은,
갯벌과 함께 살아온 모든 생명들은 천천히 엄습해오는 죽음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그렇게 그들과 함께 살아오며 일하고 돈 벌어 생계를
유지해오던 순덕이 이모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다른 아주머니 두 분과 함께 석 달 만에 백합을 캔 순덕이 이모. 백합을 바닥에 부리며 “저 뚝 얼른 터야혀” 하신다.
ⓒ2006 오마이뉴스 이주빈
그리운 벗. 저는 그 참담함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순덕이 이모에게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이제 남은 거라곤 결정 난 운명에 복종하며 다른 살 길을 찾아야만 할 것 같은 바로 그분에게서 말입니다.

여전히
갯벌에 나가며 다가올 생계의 위협을 남의 일 보듯 낙관하는 저 여유. 머리로 계산해선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낙관이 순덕이 이모를 한때 ‘계화도
투사’로 만들었습니다. 그런 순덕이 이모에게 새만금 방조제 공사는 다 끝났지만 새만금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더군요.

바닥에
부려진 백합을 눈으로 세며 “간만에 벌이가 쏠쏠해서 그나마 다행이네요” 하며 돌아서는데 순덕이 이모의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빨리 뚝 좀 틉시다, 저 뚝 얼른 터야 혀.”

걸음 멈춰 돌아보는데 순덕이 이모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백합을
세고 계시더군요. 그 모습을 보며 여정 중에 만난 어떤 분의 말씀이 절로 생각나더군요.

“희망을 찾는다고? 아니 제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아 있으면서 어디 가서 희망을 찾겠다는 거야?”

순덕이 이모의 희망은 이모가 깔고 앉아 세는 백합 속에 있고, 저의 희망은
희망을 찾아 떠나는 제 발걸음 밑에 있는 것이더라구요. 하여 우리의 희망은 우리가 좌절한 바로 그 곳에 있을 겁니다.

부안을 떠나
고속도로로 접어들었습니다. 장맛비 그친 여름 하늘이 간만에 밝았습니다. 그리운 벗, 우리 다시 만나는 날엔 서로의 엉덩이 밑에 깔려있는 희망에
대해서 얘기하기로 해요.














부안을 나와 고속도를 접어들었다. 오랜만에 장맛비 멈춘 하늘을 보았다.
ⓒ2006 오마이뉴스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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