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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산업 환상, 한미 FTA ‘집착’ 낳았다

서비스산업 환상, 한미 FTA ‘집착’ 낳았다
참여정부, 동반성장 유일 방책으로 고려.. 영국의 ‘제조업 몰락’ 눈여겨 봐야
박상욱(park_so) 기자

▲ 지난 9일 오후 한미 FTA 1차 본협상 폐막을 하루 앞두고 한미 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광화문 미대사관 인근에서 “죽음의 협상판을 걷어치우라”고 외치며 한미FTA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이유는 무엇인가? 참여정부는 정치적으로는 지역갈등 해소, 경제적으로는 빈부격차의 완화라는 태생적 아젠다를 갖고 집권했다. 경제성장을 지속하며 소위 양극화를 해소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지난 3년간 참여정부를 지배해 왔다.

참여정부 초기 경제정책은 급속히 보수 기조, 내지는 신자유주의로 돌아섰다. 경제성장을 지속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 강남 부동산 잡기에 총력을 다했다. 양극화는 OECD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현상으로, 성장률의 둔화와 함께 정보기술의 발달로 교육수준에 따른 소득 격차가 발생하기 때문으로 설명되고 있는데, 참여정부가 목청을 높이는 양극화는 ‘자산 양극화’ 즉 집값의 격차를 뜻하는 것으로 점점 변질되었다.

임기 중반을 넘기면서,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양극화 완화라는 두 마리 토끼중 어느 하나도 확실히 잡힐 만한 것이 없자, 노 대통령은 조바심이 났을 것이다. 지난 2월 국민경제자문회의가 발표한 소위 ‘동반성장 보고서’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법을 제시했고, 노 대통령은 무릎을 쳤다. 그리고 ‘최고의 보고서’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동반성장 보고서의 핵심을 짧게 요약하자면, 서비스 산업을 집중 육성하여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고용을 통해 양극화를 완화하고, 내수 시장을 키워서 안정적인 경제성장의 토대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그러한 결론을 내는 과정에서, 중국의 성장에 따라 향후 한국의 제조업은 경쟁력이 상실될 것이므로 제조업에 있어서는 국가간 분업 개념을 도입하고 한국은 물류, 금융 등에서 중국과 세계를 잇는 중간 역할의 서비스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 소위 허브 개념 – 논리를 펼쳤다.

서비스 산업 집중 육성 내용 담은 동반성장 보고서

한마디로 말해서, 서비스 산업을 키우면 경제성장과 양극화 해소를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서비스 산업은 하루아침에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랜 역사, 많은 경험과 축적된 인적, 물적 자본이 필요하다. 외자 유치와 외국 기업 유치도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투자여건은 경쟁국에 비해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다. 어떻게 하면 서비스 산업을 단기간에 키울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답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한미 FTA이다. 노 대통령은 이미 여러 차례 “한미 FTA에서 가장 관심 있는 것은 서비스업”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혔다. 정부 자료를 보면 한미 FTA가 경제성장과 양극화 해소의 방법이라고 쓰여 있다. 일부 신중론을 펴는 언론과 경제학자들은 “FTA는 말 그대로 자유무역협정인데 경제성장과 양극화 해소의 해법으로 포장하는 것은 과장이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대체로 ‘왜 그런 식으로 과장해서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들이다. 그것은 과장이 아니고 참여정부 핵심부의, 검증되지 않은 신념이다. 한미 FTA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얻으려 하는 서비스 산업 육성이 경제성장과 양극화 해소의 해법이라는 믿음이다.

한미 FTA는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이상의 수준으로 협상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미국과의 시장통합을 의미한다.(미국과의 시장통합이라는 용어도 이미 정부 자료에서 볼 수 있다.) 이는 지리적 분리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의 캐나다, 아니 그 이상’이 되겠다는 선언이다. 시장통합을 통해 미국 서비스업종 기업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사업을 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NAFTA 이상 수준의 시장통합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관세를 철폐하고 투자액과 이윤이 자유롭게 오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한국의 시장 시스템, 게임의 룰을 완전히 미국식으로 바꾸어 맞춘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에는 이미 몇 개의 외국계 은행, 투자은행, 보험사, 그리고 유통업체 등이 들어와 있다. 노 대통령은 “보험 개방할 때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탈이 없고 국내 보험사들이 잘 하더라. (월마트나 까르푸의 경우처럼) 할인점도 그렇고”라는 말을 했는데, 이는 적절치 못한 예이다. 미국과 시장이 통합되면 한국 시장은 미국 기업의 홈그라운드가 되고, 한국 기업에게는 갑자기 남의 앞마당이 된다.

관세율이 낮아 이미 완전 개방이나 다름없고, 세계의 경쟁자들이 각축하는 미국 시장에서, 자유무역협정에 의한 제조업 상품의 경쟁력 상승 폭은 극히 미미하다. 영화인들과 농업 관계자들의 강경한 입장은 오히려 한미 FTA의 본질을 희석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경제성장과 양극화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참여정부가, 그 결정적 해결책으로 한미 FTA를 통한 서비스 산업 육성을 선택했고, 그 속내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각론을 따지느라 분주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좀 더 근원적인 질문은 아래와 같다.

한국 FTA, 서비스업 유치 유일 방법인가

첫째, 한미 FTA를 체결하면 서비스 산업이 육성되고 국내 서비스 산업이 경쟁력을 갖게 되는가? 좀 더 단기적으로, 한미 FTA는 외국 서비스 기업을 유치하는 데에 비약적으로 효과적일 것인가? 또는, 한미 FTA가 외국 서비스 기업 유치를 위한 유일한 방법인가?

둘째, 한미 FTA로 서비스 산업이 육성된다고 가정하면, 경제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할 것인가? 향후 제조업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서비스업에 매달리는 것은 정답인가? 선진국이며 세계 2, 3위 경제대국인 일본과 독일은 왜 아직도 서비스업보다 제조업에 의존하고 있는가?

셋째, 한미 FTA로 서비스 산업이 육성된다고 가정하면, 정부가 말하는 소위 ‘양질의 일자리’가 다수 창출되어 양극화가 완화될 것인가? 아니면, 신자유주의식 노동시장이 형성되어 노동권이 약화되고 비정규직이 양산될 것인가?

넷째, 서비스 산업이 육성되고 내수 확대(우리끼리 주고받기식 경제활동 확대)에 의해 수치적으로 GDP가 성장하면, 물가와 실질소득, 실질구매력은 어떻게 될 것인가? 경제성장률과 달리 삶의 질은 제자리걸음할 우려는 없는가?

다섯째, 중국의 발전에 따라 한국은 제조업 이외의 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동반성장 보고서’의 주장은 진리인가? 인구 5000만의 세계 10위권 경제규모의 나라가 서비스업에 의존해서 살 수 있는가?

참여정부가 바라는 동반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위의 질문에 대해 모두 ‘예’가 나와야만 할 것이다. 즉, “한미 FTA → 외국 서비스 기업 유치 → 고용 창출 및 경쟁을 통한 토종 기업 경쟁력 상승 → 국제적 수준의 서비스업 경쟁력 확보 → 서비스업 활성화와 내수 증진 → 경제성장률 유지 → 물가 및 부동산 가격 억제, 평균임금 상승 → 국내 서비스 기업의 해외, 특히 중국 진출, 서비스를 팔아 사는 시대 도래”라는 ‘하면된다’식 사슬에서 모든 연결이 차질없이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위의 사슬을 연결해 나가는 것에 정말로 자신이 있다면, 국민을 ‘개방론자와 쇄국론자’, ‘친미와 반미’로 갈라놓고 초고속 협상을 통해 졸속 협정을 맺을 것이 아니라, 위 사슬의 비전에 대해 설명하고, 토론하고, 그 첫 단추인 한미 FTA에 대해 중요성을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 토론의 시작은, 우리가 경쟁력을 갖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경제성장과 국부창출의 주동력 역할을 하고 있는 제조업을 뒷전으로 돌리고 서비스업에 올인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따져보는 일일 것이다.

노 대통령의 말처럼, “제조업은 이미 더이상 잘 할 수 없는” 수준인가? 국가별로 경제발전의 경로와 특성이 다르다는 것을 무시하고 영미권 경제의 위험한 실험을 하는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세계적 수준의 서비스 산업에 의존하고 있는 영국이 제조업 몰락을 겪고 어떤 후회를 하고 있는지 알아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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