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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에 없는 축구선서, 시민운동이 뭐길래

팔자에 없는 축구선수, 시민운동이 뭐길래
[활동가와 차 한잔 ④] 강은주 진주여성민우회 운영위원장
윤성효(cjnews) 기자

<오마이뉴스>는 아름다운재단(이사장 박상증)과 공동으로 ‘활동가와 차 한 잔’이란 제목의 기획기사를 내보냅니다. 바쁜 일상 속에 관심 갖지 못한 사회의 그늘진 곳, 그곳에서 우리를 대신해 희망을 찾는 공익활동가들을 만나 그들의 인생과 시민운동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기획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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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은주 진주여성민우회 운영위원장.

ⓒ 윤성효

독일월드컵이 막바지에 치닫고 있는 요즘, TV에서 보여지는 각국의 경기를 보면서 옛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강은주(35) 진주여성민우회 운영위원장. 한때 그도 축구공을 몰며 잔디를 달리던 축구 선수였다. 진주여성민우회의 축구단 ‘나르샤’의 미드필더, 그게 그의 포지션이었다.

‘날다’의 극존칭 순우리말인 ‘나르샤’라는 애칭을 가진 진주여성민우회 축구단은 전국 규모의 생활체육대회에 나가 우승할 정도의 실력을 자랑한다. 일부에서는 진주여성민우회라고 하면 축구단을 먼저 떠올릴 정도.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4일 강은주 위원장을 만났다.

팔자에 없는 축구선수, 시민단체가 뭐길래

“경기 때 골을 넣어 보았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미드필더는 공격수가 아니잖아요”라며 즉답을 피했다. 골을 넣어 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골을 넣었을 때의 그 짜릿함을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축구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나르샤는 2002년 월드컵 붐을 타고 2003년 4월에 창단했다. 시민단체가 발전하려면 단체 스포츠가 있어야 한다는 한 회원의 제안을 받아들여 축구단을 만든 것.

▲ 진주여성민우회 여성축구단.

ⓒ 진주여성민우회
“처음에는 사람이 없다가 보니 선수가 됐죠. 그 뒤 차츰 회원이 불어나면서 ‘자진 은퇴’했죠. 하하하. 축구 할 때는 축구화도 선물 받은 적 있어요.”

어쨌든 축구단은 진주여성민우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지금도 1주일에 이틀씩 진주공설운동장에 모여 연습을 하며 회원들의 단합을 다지고 있다. 다른 시민단체나 자치단체에서 문의가 많이 왔다고. 하지만, 월드컵 붐 등을 타고 경쟁적으로 축구단을 만드는 것에 강 운영위원장은 비판적이다. 즐기는 스포츠를 해야 한다는 것.

“이길 때가 있고 질 때도 있잖아요. 그야말로 생활체육이 되어야 하는데, 요즘은 선수 출신을 기용해 꼭 이기려고만 하는 단체도 있는 것 같아요. 스포츠를 통해 회원들이 단합하고 운동도 하면 좋잖아요?”

팔자에도 없는 축구 선수가 되어 축구장을 뛴 강은주 위원장과 진주여성민우회와의 만남은 15년 전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91학번으로 과 소모임에서 활동하던 그는 어느 날 졸업한 선배로부터 여성 관련 모임에서 일할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받게 됐다. 이름도 거창한 ‘진주여성권익신장을 위한 모임’. 그 후 진주여성민우회와 인연이 닿아 지금까지 일을 하게 됐다.

의정감시단 출동하면 시의회 회의가 길어진다?

강은주 위원장 전공 분야는 의정 감시. 2002년 5월부터 2003년 4월까지 진주시의정감시단장을 맡기도 했다.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해 리포트 때문에 의회를 방청하기도 했는데 그게 많이 도움이 됐다고.

그는 의정 감시를 제대로 하려면 본회의장이 아니라 상임위원회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민우회 소속으로 처음 진주시의회 상임위 회의장에 들어간 일화를 소개했다.

“상임위가 생기고 회의를 지켜보러 들어간 사람은 제가 처음인 것 같았어요. 회의 시작 전에 위원장이 일으켜 세우더니 ‘진주여성민우회에서 왔다’고 소개하고 회의 마치고 나서는 저 더러 점심 먹으러 같이 가자고 제안까지 하더라고요. 그런데 의정감시단이 의회를 계속 비판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안 왔으면 좋겠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상임위회의에 꼬박꼬박 들어간 효과는? 상임위 회의 시간이 훨씬 더 길어졌다는 것. “그만큼 더 진지하게 회의를 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강은주 위원장은 말했다.

“지방의회 의원들은 상임위 회의를 조용한 분위기 속에 해야 하는 모양이에요. 쥐 죽은 듯이 말입니다. 들락거리니까 나중에는 ‘문 닫아야겠다’고 할 정도였죠. 의정감시 들어가기 전에 공부를 하고 가야 하죠.”

“지방의원 해외 연수, 사실은 관광 가는 거잖아요”

▲ 강은주 진주여성민우회 운영위원장.

ⓒ 오마이뉴스 윤성효
의정감시단 활동을 하면서 강 위원장이 가장 문제라고 느낀 건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 그는 2003년에서 2005년까지 ‘진주시의회 의원국외여행 심의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시의원들의 관광성 해외연수가 계속 말썽을 빚자 시민단체의 요구로 조례가 제정되어 심의위원회는 활동을 시작했다. 시의원들이 해외연수를 나가기 전에 미리 ‘심의’하자는 취지에서였다.

강 위원장은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가 실제로는 ‘보너스’ 차원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지방의원직이 유급화되기 전 보너스 차원에서 시행됐기 때문에 거창하게 해외연수라고 이름 붙여도 실제는 관광일 뿐이라는 것.

“라스베이거스에 가면 ‘한국과 미국의 영화산업 비교분석’ ‘열린도서관 운영 공부’ 같은 이유를 내걸어요. 그냥 관광하러 간다고 하면 될 것 갖고 그런 제목을 붙이는 겁니다. 영화산업을 비교 분석한다고 하는데 그건 전문가들도 하기 어려운 거 아닌가요?”

‘보너스’ 해외연수에 대해 강 위원장은 “준비를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진단했다. 해당 자치단체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등에 대해 적어도 1년 전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것. 1년 전부터 해외연수에 대한 간담회나 토론회를 열고, 위원회도 만들어 무엇을 확인하고 배워 올 것인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여행사에 맡기다 보니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죠. 1년 전부터 갈 곳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해요. 해외연수에 대해 하도 시비를 많이 거니까, 심지어는 전자우편 하나면 궁금증이 풀릴 것을 연수 항목에 끼워 넣기도 해요. 가령 ‘어떤 시의 하수도 시설을 어떻게 운영하는지’가 궁금하면 메일을 보내서 물어보면 되잖아요.

다녀오고 난 후 내는 보고서를 보면 더 놀라게 돼요. 개별 의원들이 각각 낸 건데도 다 비슷해요. 어떤 부분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죠. 연수 후 외국의 담당자에게 전자우편으로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떻게 활동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심의위원들 중에서도 강 위원장은 유독 ‘반대’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문제는 매번 반대를 해도 지방의원들은 매번 해외연수를 나갔다는 것. 지적을 해도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자’고 대답하고 넘어가고 다음에 또 심의하면 그 말을 하면서 해외연수를 나간다는 것이다. 이제 유급화됐으니 해외연수가 달라져야 한다고 강 위원장은 덧붙였다.

곗돈 모으기로 단체 운영비 만들어요

▲ 진주여성민우회 회원들의 나들이.

ⓒ 진주여성민우회
현재 진주여성민우회 회원은 300여 명으로 회원들이 매달 내는 5000원~1만 원 정도의 회비로 운영한다. 모두 10여 명의 상근자가 있는데, 회비로는 운영하기가 빠듯하다. 한편 부설 성폭력상담소와 생협, 공부방도 운영하는데 그 배경을 그녀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시민운동, 특히 여성운동은 주민들 속으로 들어가야 하죠. 직장에 다니는 회원들이 많고, 여성들이 아이 문제를 가장 힘들어해서 공부방을 시작했는데, 의외로 주변에 생활보호대상자나 한부모 가정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가정의 자녀도 맡게 된 거죠. 지역에서 공부방이 없는 동네를 골라 문을 열었는데, 지금은 운영이 잘 돼요.”

재정적인 어려움은 이 단체도 마찬가지다. 돈이 없던 초창기에는 회원들이 출자를 하기도 했는데 심지어 500만 원까지 낸 회원도 있었다고. 재정적인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진주여성민우회 회원들의 자구책으로 ‘계’를 만드는 것까지 이르렀다. 진주여성민우회의 ‘곗돈’ 모으기는 하나의 재정사업인 셈이다.

“대개 10~20명 정도 모여 매달 20만 원 정도를 내죠. 원래는 그달에 곗돈을 타는 사람은 돈을 안 내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곗돈 타는 사람도 돈을 내요. 먼저 받는 사람은 이자까지 내는 거죠. 그렇게 자기가 낸 돈은 민우회 운영비로 들어가요. 곗돈을 타는 사람은 300~400만 원 정도를 타가고요. 그렇게 하다 보니 원금도 못 챙길 때가 많죠. 그래도 목돈을 한꺼번에 못 내니까 이렇게라도 해서 기금을 모으는 거죠.”

돈에 여유가 없어 곗돈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몸으로 때우기도 한다. 일종의 ‘고통 분담’인 셈. 공부방을 마련할 때 돈이 모자랐을 때도 고통분담으로 해결했다. 집이 시골인 사람은 내려가서 쌀과 반찬거리를 가져와 밥 해먹고 공부방 페인트 칠하면서 그렇게 공부방을 만들었다. 그래도 “우리끼리 ‘이게 무슨 짓이고’라고 하면서 알콩달콩 재미나게 했다”며 강 위원장은 회상했다.

의논할 선배 하나 없어도 “맨땅에 헤딩”

강은주 위원장은 30대 초반이던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진주여성민우회 부대표를 맡았다. 부대표 다음에는 대표를 맡는 게 보통의 수순(?)이었지만 그녀는 대표 대신 운영위원장을 택했다.

“30대 초반에 부대표가 되니 솔직히 부담이 됐어요. 부대표나 대표는 전체를 아우르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젊은 사람이 하기에는 부담이었죠. 지금 나이도 실무 현장에서 일을 배워야 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대표를 맡지 않기로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잘한 거 같아요.”

지역이라 여성운동을 먼저 시작한 선배들이 없어 가끔은 힘들다고 강 위원장은 털어놓았다. 힘든 일이 생기면 선배들한테 가서 상의도 하고 정리도 부탁하고 싶다는 것. 그래도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하는 거죠”라는 말을 씩씩하게 덧붙인다.

“왜 여성운동을 하느냐”라는 질문에 그녀는 “기쁘니까”라는, 아주 당연하면서도 조금은 뻔한 대답을 내놓는다. 20대 말부터 30대 초반으로 넘어오면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는 그녀는 시민운동이 아니었다면 그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없었을 거라고 했다.

“운동 속에서 항상 나를 찾으려고 애쓰며 공부하는 거죠. ‘정체성’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지도 모르겠네요. 우선 개인적으로 기쁘니까 하는 겁니다.”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기자에게 “결혼을 꼭 해야 하나요?”라고 되물었다. 강 위원장은 결혼하기 위해 모아 놓았던 돈을 털어 영어학원을 차려 운영하고 있다. 결혼은 때가 되면 하는 거고, 지금은 학원 때문에 여성민우회에 더 많은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찻잔 바닥에 고여있던 물도 말랐고 바깥에서는 비도 그쳤다. 강 위원장은 “이번 비 그치면 운동장에 나가 축구 한판 하고 싶네요”라고 말했다.

“진주여성평등상, 그 상에 원죄가 있어”
성추행 사건 계기로 만들어진 진주여성민우회와 진주여성평등상

진주여성민우회는 매년 여성운동에 앞장선 개인이나 단체를 선정하는 ‘진주여성평등상’을 시상해 오고 있다. 이 상은 그동안 ‘기금관리위원회’에서 운영했는데, 올해부터는 진주여성민우회가 그 실무를 맡게 됐다.

“그 상을 생각하면 민우회는 원죄가 있어요. 기금을 더 늘려서 운영이 잘 되도록 해야 하는데, 걱정이네요….”

강 위원장이 걱정하는 데는 오래 전 있었던 일 때문이다. 1996년 진주의 한 유치원에서 원장이 여교사들을 성추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은 시민대책위가 꾸려져 고소·고발로 비화됐고, 원장은 교사들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기까지 했지만 마지막에는 원장의 잘못으로 결판이 났다.

하지만 법정 다툼이 진행되는 동안 한 여교사가 병에 걸려 세상을 뜨는 일이 발생했다. 법정 다툼이 끝난 뒤 원장에게 받은 손해보상금으로 죽은 여교사의 유족들이 기금을 내서 진주여성평등상 기금이 마련됐다. 그리고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지역에도 제 목소리를 내는 여성단체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어 여성민우회가 만들어졌다.

강은주 위원장은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여성민우회가 있었더라면 더 빨리 해결되었을 것”이라며 “여성평등상을 위한 기금도 더 늘려야 하고… 여성민우회가 할 일은 더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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