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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협곡을 내달리는 그리움 천만년 -[nomad의 길을 따라 86] 한탄강 강변에서

수직협곡을 내달리는 그리움 천만년
[nomad의 길을 따라 86] 한탄강 강변에서

2006/6/23
정미경 기자 forest@ngotimes.net
깍아 지른 수직협곡을 곱돌고 굽이쳐 흘러가는 ‘한 여울’. 솟구쳤다 내리꽂고 구비 돌며 여울지는 한탄강의 줄기는 여느 강의 그것과는 사뭇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십억 성상 어둔 땅속을 헤매다가 못내 긴긴 그리움을 더는 견딜 수 없어, 터져버린 화산의 분출구로 뛰쳐나온 격한 몸부림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정말이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미경기자
깍아 지른 수직협곡을 곱돌고 굽이쳐 흘러가는 ‘한 여울’.

그리하여 푸른 강줄기 위로 한껏 달아 오른 시뻘건 용암이 뒤섞여 흐르는 격정에 넘쳐나는 몸부림이 만들어낸 비교할 수 없는 격변의 현장, 바로 그곳이 한 여울입니다.

시퍼런 그리움에 더하여 재울 수 없는 붉은 욕망은 아직도 그렇게 흘러만 갑니다. 지금도 잠재우지 못하는 천년의 욕망은 도무지 지칠 줄을 몰라요. 아니 지칠 수가 없습니다. 수직으로 날 세운 절벽에 서린 차가운 긴장은 그때의 열망을 아직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요.

모르긴 몰라도 그리움에 허기져 숭숭 뚫려버린, 까맣게 타버린 현무암 사랑이 마멸되어 차라리 갠지즈 강가의 모래가 된다 한들. 아서라! 벼랑 끝에 선 소나무에 베어있는 천년의 멍든 그리움이 시든다 한들 가라앉을 손가!

정미경기자
그리움에 허기져 숭숭 뚫려버린, 까맣게 타버린 현무암 사랑이 마멸되어 그렇게 흘러만 갑니다.

매서운 독수리의 눈매조차 기막히게 어울리는 긴장의 절경은 벼랑 끝 세월을 쏘아 보는 듯 노려보는 절벽 안 웅크린 동굴 속에도 허공처럼 휘돌고 있습니다. 어쩌면 꼭꼭 숨겨 놓았을지도 모르는 용암동굴 속에도 채곡 접은 그리움은 한번도 눈동자를 깜빡거리지 않고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상갈스럽게 벼리는 경계는 서리 내린 새벽처럼 아직도 긴장을 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휘돌면서 내리달리는 시려운 그리움을 얼려 버리듯.

오죽 했으면 위태아슬한 바위틈새에 독한 오기로 뿌리박고 피어나는 돌단풍으로 그리움을 겨우 풀어낼까. 그러니 이 그리움을 어쩔래? 언젠가는 육중한 바위조차 쪼개 버리는 이 그리움을 나는 ‘위대한 그리움’으로 부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정미경기자
신열을 앓듯 그렇게 흘러가는 강줄기는 결코 멈출 수 없어요.

때문에 한탄강 강변에서 내려다보는 그때 터져 나온 그리움은 곳곳에 뒹굴고 있는 널부러진 잔해 위를 구르고 있지만, 나는 그것을 과거 완료형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긴 세월 무르익혀온 그리움, 상처 자욱으로 깊이 패었어도 신열을 앓듯 그렇게 흘러가는 강줄기는 결코 멈출 수 없어요. 나도 그렇듯이…

더운 여름날, 햇살에 그을리기 싫어 양산을 받쳐 쓴 여인네의 슬픈 자화상을 나는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왠종일 에어컨 바람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다가, 얼굴 전체를 가리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산책하는 불쌍한 여인네를 나는 정말이지 아름답다고 할 수 없습니다.

검은 티를 가리겠다고 분을 바르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터에 독한 표백제를 원료로 한 화장품을 바르는 여인네를 나는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정미경기자
위태아슬한 바위틈새에 독한 오기로 뿌리박고 피어나는 돌단풍의 그리움.

비닐하우스 안에서 온갖 살충제와 영양제로 자라는 유전자가 조작된 원예작물이 그렇듯이 밀랍인형처럼 되어 버린 그런 여인네를 나는 부러워 하기는 커녕 안쓰러운 마음으로 연민의 정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어요. 아름다움은 그렇게 가꾸어 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긴 침묵 속에서 얼어버린 외로움을 딛고 더할 수 없는 험난하기 짝이 없는 조건 속에서 오롯하게 피어나는 아름다움은 형용할 수 없는 향기를 지녔습니다.

그러므로 산의 아름다움은 깊은 계곡과 험악한 벼랑에 뒤 따라 오는 감탄사 이지요. 곡절과 사연 없는 강이 강이 아니듯이, 일그러진 역사가 없는 흐름은 그저 흐르는 물일뿐, 강이 아닙니다.

꺼져버린 바닥을 거쳐 가파른 바위 언저리를 빠져 나가는 여울목이 없는 강은 그저 데워진 물이 담긴 호수 일뿐, 강이 아닙니다.

정미경기자
부딪히고 깨어지고 휘둘린 물은 자체로 정화 될 수밖에 없어요.

지구별의 중심을 향해 수직으로 솟구친 바위절벽은 아슬아슬 하긴 해도 지극히 안정되어 있어요. 고르지 못한 강바닥은 거친 흐름을 만들어 내지만, 수서생태계의 연쇄망은 놀라울 정도로 풍요롭습니다. 부딪히고 깨어지고 휘둘린 물은 자체로 정화 될 수밖에 없어요.

격렬한 몸살을 앓으면서 신열을 앓듯 흐르는 강속의 생태계와 강변의 생태계는 그래서 안정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아름다움입니다.

정미경기자
차가움과 끓어오르는 열망을 안으로 삼키며 요동치는 한탄강은 흘러가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은 가꾸어 지는 것이 아니라, 몸부림 치고 거스르는 분노하는 격랑의 틈새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한 떨기 고뇌의 불꽃입니다.

차가움과 끓어오르는 열망을 안으로 삼키며 요동치는 한탄강의 흐름을 막는다는 것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선택 일수 밖에 없습니다.

한탄강은 흘러가야만 합니다. 천만년의 그리움을 막아 버리는 날, 드넓은 철원평야는 갈가리 찢겨지고 저주를 받을 것이 너무도 분명 하기 때문이에요.

정미경 forest@ngotimes.net

2006년 6월 22일 오후 23시 27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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