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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와 삶 4] 밤에 시골길 달리기

반딧불인 줄 알았는데
[자전거와 삶 4] 밤에 시골길 달리기

2006/6/5
최종규 기자 hbooklove@empal.com
하나ㆍ둘ㆍ셋ㆍ넷… 어, 이렇게 많나?

저녁 아홉 시 칠 분, 음성군 생극면에 있는 시골 버스역에서 내립니다. 고속버스 짐칸에 넣었던 자전거를 꺼내어 펼칩니다. 불이 제대로 들어오는지 살피고, 바퀴에 들어 있는 바람 세기, 자전거 손잡이 들을 한 번 살펴본 뒤 탑니다. 짧은 거리를 타든 먼 거리를 타든, 자전거를 타기 앞서 꼭 이리저리 살펴봅니다. 조그마한 고장이나 문제가 있더라도 길에서 타다 보면 크게 다치거나 아슬아슬할 수 있거든요.

최종규기자
제 발이 되고 짐꾼이 되기도 하는 자전거 가운데 하나. 이 자전거는 스트라이다라고 하는 녀석으로, 접어서 대중교통을 타기에 참 좋습니다. 어제 서울에서 고속버스에 싣고 충주로 오기 앞서 모습입니다.

어느덧 어두워졌고, 거리등이 거의 없는 시골은 더 어둡게 느껴집니다. 오가는 차도 적고, 저처럼 자전거로 살림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모두 잠든 듯이 보이는 저녁길입니다. 이 저녁 시골길을 자전거로 달리면 벌레들 우는 소리 하나하고 자전거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 둘만 들립니다.

앞등과 뒷등을 켜고 시골길을 달립니다. 달리는 동안 앞쪽에서 반짝 하고 지나가는 작은 것이 있습니다. 뭐지? 하고 잠깐 쳐다보려 하지만, 어두운 시골길을 달리다가 뒤를 돌아보면 자칫 논바닥에 자전거가 처박힐 수 있으니 고개를 돌리지 못합니다. 그렇게 내처 달리면서 모두 열두 차례 반짝이는 것을 봅니다. 반딧불인가? 아, 내 사는 산속 살림집에서 더러 반딧불을 보는데, 여기에서도 그 반딧불을 보는 셈인가?

달린 지 십 분쯤 될 무렵부터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이번 서울 나들이에서 산 책은 제법 많아서 세 번 택배로 시골집으로 부쳤습니다. 그런데도 들고 갈 짐이 가방 가득입니다. 자전거 짐받이에도 묶었는데 가방은 거의 터질 듯합니다. 이번 책짐은 얼추 25kg이 넘겠다 싶군요. 그래, 이런 짐을 메고 신나게 자전거를 밟으니 금세 땀이 나고 이마에서도 땀이 물줄기처럼 흘러내리겠지요.

톡ㆍ톡ㆍ톡… 턱까지 흐르는 땀은 방울이 지며 자전거로 떨어지고 길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사이사이 반짝이는 벌레가 스쳐 지나갑니다. 가끔 뒤에서 자동차가 지나가기도 하는데, 밤길을 달리는 자전거를 보고 멀찌감치 돌아서 지나가 줍니다. 뒤에서 시끄러이 경적을 울리며 자전거를 위협하는 운전수가 아무도 없습니다. 마음이 놓입니다.

이렇게 달리는 동안 길가 두 쪽 모두에 자리하고 있는 무논에서는 개구리들이 신나게 웁니다. 왼쪽에서도, 오른쪽에서도 신나게 웁니다. 이곳 음성-충주도 모내기를 다 끝마쳤고 논마다 물이 가득 고여 있습니다. 개구리들은 알 낳기 좋고 올챙이 까기 좋고 무리지은 개구리들은 저녁이 되면 아주 목청높이 신나게 울기 좋겠지요. 다만, 사람들 눈길을 벗어나려고 낮에는 좀 움츠리고 있던 멧새와 들새가 이 밤에 우는 개구리를 노리며 사냥할 때만큼은 덜 좋겠지만요.

이웃마을 어귀를 하나ㆍ둘ㆍ셋 지납니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페달 밟기가 힘듭니다. 아무래도 등에 짊어진 짐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다지 먼 길을 달리는 셈이 아니라서 쉼 없이 달립니다.

드디어 음성군 생극면을 지나 충주시 신니면 세거리 앞까지. 훅 훅 훅.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며 휴게소 앞 언덕길을 오릅니다. 이 언덕길은 예전에는 땀 빼며 가까스로 올라가던 길이요, 한때는 자전거로 못 오르기도 하던 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기어가 없는 자전거를 타고도 그다지 어려움 없이 오르내리고 있어요. 그동안 허벅지에 힘살이 많이 붙었습니다.

훅 훅 훅. 입으로도 숨을 쉬고 싶지만, 밤길에 불 켜고 달리는 자전거에 모여드는 날벌레 때문에 입은 꾹 다물고 코로만 숨을 쉽니다.

야, 이제 다 올랐습니다. 주머니에서 손전화를 꺼내 열어 봅니다. 저녁 아홉 시 이십팔 분. 21분 걸렸군요. 밤길이라 조금 천천히 달렸고, 짐 무게 때문에 힘들었다고는 하지만, 여느 때 낮에 달릴 때보다 많이 늦었습니다. 여느 때 낮에는 15∼17분 걸린 길이거든요. 아무튼, 조금 더 빨리 달렸으면 어떻고, 조금 더 늦게 달렸으면 어떻습니까. 이렇게 자전거로 내 갈 길을 달렸으면 그만입니다. 길섶에 잘 달라붙으며 조심조심 달렸고, 뒤에서 앞지르는 자동차들이 빵빵거리지 않고 지나갈 만큼 잘 달렸구나 싶기도 하고, 찻길을 달려오는 동안 개구리나 여러 벌레를 바퀴로 밟고 지나오지도 않았으니 됐습니다.

히유. 이제는 마을 들머리까지 죽 내리막입니다. 시골 버스역에서 이곳, 못고개라고 하는 데까지는 비스듬한 오르막이었는데, 여기부터는 내리막이니 가볍게 달릴 수 있습니다. 싸아아악. 여태까지 달리며 고단했던 몸이 확 풀립니다. 다른 분들은 오르막을 썩 달가이 여기지 않는 편이지만, 저는 이런 오르막을 즐깁니다. 오르막을 오르면 내리막이 있거든요. 내리막만 달리면 얼마나 좋으냐 말씀하는 분도 있지만, 오르막을 힘겹게 오른 뒤에 시원하고도 짜릿하게 내려가는 내리막이 참맛이지, 내리막만 내려간다면 아슬아슬하기만 할 뿐, 자전거 타는 맛은 안 난다고 생각합니다.

마을 어귀에서 빠르기를 늦춘 뒤 다시 부지런히 페달을 밟습니다. 어귀에서 굴다리 하나 지난 뒤 퍽 가파른 오르막길이 하나 있어요. 그렇지만 이 오르막은 끝까지 못 갑니다. 아무래도 힘듭니다. 자전거에서 내려 숨을 몰아쉬며 끌고 오릅니다. 다시 내리막. 마을길에도 등불 하나 없습니다. 퍽 가파른 내리막이지만 빠르기를 늦추며 마을 어귀 집들을 다 지나가고, 집이 끝난 뒤 나오는 논길을 타고 제 살림집으로 갑니다. 논길을 달리면서도 제 자전거를 스치는 반짝이는 벌레를 봅니다. 그러다가 문득, 어, 왜 이렇게 많이 보이지? 반딧불이 이렇게 많았나? 반짝이는 벌레가 지나갈 때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날개를 퍼덕이는 녀석이 보입니다. 조금 넓은 논길이요, 앞에서 오는 차도 없고 하니 슬슬 달리다가 뒤를 돌아봅니다.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아하, 이 반짝이던 벌레는 반딧불이 아닌가 보구나, 그냥 날벌레인데 불빛이 비치면서 잠깐 반짝하듯 보였을 뿐이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면 찻길에서 본 그 반짝이던 벌레도 모두…

마을 어귀에서 10분쯤 달려 산속 살림집에 닿습니다. 창고에 자전거를 들여놓고 짐받이에 묶은 책을 풉니다. 자전거에서 내리고 보니 온몸에서 열이 후끈후끈 달아오릅니다. 책보따리를 들고 집으로 들어와 내려놓고 등과 가슴에 멘 가방 셋을 풉니다. 몸이 아주 가뿐합니다. 짐이 꽤 무거웠나 보군요. 등이고 다리고 팔이고 얼굴이고 온통 땀투성이입니다. 가방을 멜 때는 몰랐는데, 벗고 나니 아주 덥습니다.

옷을 훌러덩 벗고 설거지대에 다리 한 짝씩 올려놓고 씻습니다. 바닥에 떨어지는 물은 걸레로 닦습니다. 샘가에 가서 멱이라도 감을까 싶지만, 배도 고프고 힘들기도 해서 다리와 등짝과 얼굴과 목 둘레만 씻습니다.

푸아. 밥그릇에 물을 담아 거푸 마시고 방바닥에 드러눕습니다. 헤헤, 오늘도 잘 달려서 왔구나 싶어 마음이 푹 놓입니다. 지난주에 처음으로 충주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로 달렸는데, 다가오는 금요일에도 자전거로 서울까지 가 볼 생각입니다. 저번에는 길을 좀 헤매느라 애먹었지만 이번에는 길을 헤매지 않고 끝까지 잘 달리고 싶습니다. 가방에는 깃발도 하나 매달 생각입니다. “충주 ↔ 서울, 자전거 만세!”라고 몇 글자 적어 볼까 합니다.

최종규 기자 hbooklov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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