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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뇽 소송’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도롱뇽 소송’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분석] ‘천성산 터널’ 대법원 판결의 의미와 파장

2006-06-02 오후 6:04:34

결국 2년 8개월을 끌어 온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을 둘러싼 법정 공방이 ‘개발’의 승리로 끝났다. 그간 지율 스님이 다섯 차례 단식을 하는 것을 포함해 환경단체들은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개발’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막아내지 못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그 파장은 무엇일까?

대법원 판단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영란 대법관)는 “피신청인들이 신청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실시한 새로운 환경영향 평가와 (과거에 실시한) 대한지질공학회 등의 환경영향조사 등을 참조한 결과 터널 공사가 천성산 환경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결론 내렸다”며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로서는 터널 공사가 지하수, 고산 습지의 환경에 큰 피해를 준다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

이런 대법원의 판단은 2005년 진행된 민·관 환경영향공동조사의 결과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않은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2월 28일 발표된 민·관 환경영향공동조사의 최종 보고서는 터널을 뚫을 때 지하수가 유출될 가능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철도시설공단과 환경단체 양 측은 이렇게 유출된 지하수의 양과 그에 따른 환경 영향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해석을 내려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다.

▲ 6월 2일 대법원의 판결로 천성산 터널 공사는 가속도가 붙게 됐다.

이번 대법원의 판단은 이렇게 상반되는 결론에 대해서 한국철도시설공단 측 전문가의 주장을 적극 수용한 것이다. 또 이런 판단 과정에서 환경단체 측의 불신을 받고 있는, 이전에 실시된 대한지질공학회 등의 환경영향조사 결과도 비중 있게 참고했다. 이 때문에 ‘천성산을 위한 시민·종교단체 연석회의’는 대법원 판결 직후 낸 논평을 통해 “대법원 판결에서는 주요한 근거로 고려돼야 할 ‘민·관 환경영향공동조사’의 결과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지율 스님도 대법원의 판단을 전해들은 직후 <프레시안>과의 전화 통화에서 “정말 놀랍다”며 “법원이 참고했다는 대한지질공학회 조사는 한국철도시설공단이 단독으로 조사를 계약한 후 이뤄진 것일 뿐만 아니라 터널과 지하수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언급도 안 하고 있다”고 대법원의 판단 과정에 강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런 점에서 한정된 판단자료를 통해 터널 공사와 지하수 유출의 함수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린 대법원의 판단이 과연 ‘현실’을 반영하는 것인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대법원의 결정을 전해들은 ‘도롱뇽의 친구들’을 포함한 환경단체 측은 “천성산 인근에서 나타나는 지하수, 계곡수 고갈이 터널 공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이 ‘입증’되면 공사 금지 가처분 소송을 다시 제기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지율 스님과 환경단체는 본격적으로 터널 인근 지하수, 계곡수 고갈 문제를 수 개월 전부터 추적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과정이 앞으로 3, 4개월 정도 더 진행되면 이번에 대법원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던 그 터널공사와 지하수 유출의 상관관계가 뚜렷한 데이터를 통해 입증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 환경단체 측의 판단이다. 이렇게 될 경우 가처분소송을 거쳐 경부고속철도 공사는 또다시 중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이와 관련한 갈등이 본격화하고 있다. 천성산에 이어 터널이 뚫리는 금정산 산성마을 주민들이 지하수 고갈을 이유로 한국철도시설공단을 상대로 공사 중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 이 신청은 현재 1심에 계류 중이며, 법원은 지난 1월 산성마을에서 현장 검증을 실시하기도 했다.

‘자연의 권리’ 인정할 기회 차버린 대법원

대법원은 신청인의 터널 공사 중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도롱뇽의 원고 적격 여부에 대해서도 “도롱뇽이라는 자연물이나 자연 자체는 사건을 수행할 당사자로 볼 수 없다”는 1, 2심 결정을 그대로 유지했다. 대법원이 이번에 가처분 신청은 기각하더라도 도롱뇽의 원고 적격 여부에 대해서는 달리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다는 점에서 이 결정은 특별히 좀 더 아쉽게 보인다.

2003년 10월 지율 스님이 신청인으로 도롱뇽을 내세울 때만 하더라도 동물과 식물 같은 자연물에 법적 권리를 주는 것은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일이었다. 1971년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법조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법정에 선 나무들>(크리스토퍼 D, 스톤 지음, 허범 옮김, 아르케 펴냄)이 국내에 30년 만에 소개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소송 덕이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일본 홋카이도의 다이세스 산 인근 주민과 환경단체가 터널 공사를 저지하기 위해 이 산에 서식하는 ‘우는 토끼’를 원고로 소송을 제기해 30년 만인 1999년 3월 승소한 사례를 비롯한 자연물에게 법적 권리를 준 수많은 사례가 있다. 미국의 예만 봐도 하와이 빠리야새 소송(1979)을 시작으로 점박이올빼미 소송(1988, 1991), 그레이엄 산 붉은다람쥐 소송(1991), 하와이 까마귀 소송(1991), 플로리다 사슴 소송(1994), 바다오리 소송(1996) 등 한두 건이 아니다. 이 중 하와이 까마귀 소송의 경우만 제외하고 모두 동물에게 원고 지위가 인정됐고, 이것이 소송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1998년 3월 녹색연합이 낙동강 재두루미의 떼죽음과 관련해 재두루미를 원고로 천연기념물 보호에 소홀한 문화재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원고 부적격으로 곧바로 기각됐다. 2000년 5월에도 녹색연합이 새만금 간척사업을 중단시키기 위해 어린이들을 원고로 내세워 ‘미래세대 소송’을 진행했으나 그 해 6월 초 서울고법의 2심 재판에서 기각된 적도 있다.

만약 대법원이 도롱뇽의 원고로서의 지위를 인정했다면 어떤 파장이 있었을까?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법 테두리 안에서 자연물을 법적 당사자로 인정함으로써 새로운 세기에 걸맞는 환경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법적 당사자로 인정하는 ‘법인’만 하더라도 처음에는 판사들을 헷갈리게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염두에 두면 이젠 ‘자연의 법적 권리’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일어나야 할 때다.

대법원으로선 “피신청인이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그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후손에게 이를 물려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립 서비스’ 수준에서나마 ‘환경’의 가치를 인정하긴 했으나, 이렇게 획기적인 환경의식의 기폭제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는 스스로 박차버리고 만 셈이다. 뻔히 소송에 불리한 줄 알면서도 도롱뇽을 신청인으로 내세운 지율 스님과 환경단체의 배려를 법원은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법에 호소해 온 환경운동, 이젠 변할 때

마지막으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새삼 법을 ‘마지막 보루’로 보고 그에 호소해 온 환경단체의 전술을 심각하게 수정할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새만금 간척사업에 이어 천성산 터널 공사마저도 법원이 ‘개발’ 편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사실상 법에 호소하는 것이 ‘환경’을 지키는 데 과연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최종적으로는 정책적 판단보다는 법리적 판단에 의존하는 법원으로서는 대규모 국책 사업의 중단 여부를 결정할 때 현재 제시된 확실한 증거(환경 파괴의 증거)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애초 정책 추진 과정의 문제점, 미래에 발생할 환경 파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반대 운동을 해 온 환경단체의 입장과는 상충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실제로 새만금 간척사업, 천성산 터널 공사에 대해 법원이 판단할 때도 “‘현재’ 환경을 훼손한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중요한 근거로 들었다.

따지고 보면 권력의 3부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법원에 시대를 선도하는 가치에 기반을 둔 판결을 기대하는 것부터 잘못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정부, 의회가 개발주의에 경도돼 있는 것 만큼이나 법원 역시 개발주의에 포박돼 있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일단 막고 보자는, 또 뚫고 보자는 식의 공세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최후 수단’으로 법원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그 결과를 염두에 두면 마지막까지 다른 ‘수’를 찾아보는 게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일단 대법원에서 어떤 식으로든 패한 뒤에는 여론의 지지를 얻기가 대단히 어려워진다는 현실을 염두에 두면 더욱 그렇다.

다들 ‘망각’할 때 ‘기억’하는 사람이 소중하다

이번 천성산 도롱뇽 소송은 결국 기각됐지만 환경단체와 지율 스님의 ‘천성산 지키기’가 멈출 것 같지는 않다. ‘천성산 지키기’의 중심에 서 있던 지율 스님은 이미 수 차례에 걸쳐 “설사 터널이 뚫리더라도 30년에 걸쳐 그 환경 영향을 지속적으로 살펴 꼭 책임 추궁을 할 것”이라고 얘기했었다.

지율 스님은 이날 전화 통화에서도 “대법원의 판결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이었다”고 전제한 뒤 “진행하고 있는 계곡 유량 조사도 계속 하는 등 터널과 지하수, 계곡수의 상관관계 등에 대한 증거를 계속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율 스님은 또 “앞으로 본격적인 터널 공사가 시작되면 그에 따른 환경 파괴도 눈에 띄게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계속 천성산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지율 스님 탓에 잃어버린 연간 수조 원의 손실이 있었다”는 식의 개발주의자들의 근거 없는 주장에 부화뇌동할 게 아니라 한 세대가 넘도록 감시의 눈길을 줄 것을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켜가고 있는 지율 스님과 그의 친구들을 격려하고 지켜보는 것이 아닐까? 다들 ‘망각’할 때 ‘기억’하는 사람이야말로 소중하다.

강양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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