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일반 관련자료

법원은 ‘환경권’의 보루가 될 수 있을까

법원은 ‘환경권’의 보루가 될 수 있을까
‘새만금 소송’과 ‘도롱뇽 소송’이 환경단체에 던지는 의문
강재규(lawkang) 기자

▲ 천성산 고속철도 터널공사구간 모습. 2004년 8월 상황이다.

ⓒ 안현주

지난 6월 2일 대법원 3부(주심 김영란 대법관)는 ‘도롱뇽 소송’이라고 불리는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원효터널)’ 공사 착공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재항고심에서 “공사를 중단할 이유가 없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2003년 10월부터 2년 8개월간을 끌어온 이 소송은 결국 지율 측의 패배로 끝났다. 대법원은 새만금 간척사업에 이어 또다시 ‘환경보호주의자’보다는 ‘개발주의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로써 이미 지난 11월 말부터 시작된 천성산 터널공사는 계속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2010년께 13.2㎞의 천성산 터널을 포함하는 경부고속철도가 완공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개발주의자 손 들어준 ‘도롱뇽 소송’ 대법 판결

대법원은 재항고심 결정에서 원효터널 공사가 천성산에 미치는 환경 영향에 대해 “피신청인들이 신청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새로운 환경 영향 평가를 실시했지만, 조사 결과에 따르면 터널공사가 천성산 환경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결론내렸다”고 했다. 또한 “지질적 특성이 반영된 새로운 공법이 적용되는 등 터널공사로 신청인들의 환경 이익이 침해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대법원은 “환경권은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이지만 이러한 기본권을 근거로 직접 다른 개인에게 공사 중지를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 학설과 대법원 판례의 입장”이라며, “신청인은 피신청인에게 공사 중지를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도롱뇽이 소송의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신청인의 주장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도롱뇽이라는 자연물이나 자연 자체는 사건을 수행할 당사자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하급법원의 결정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피신청인은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그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후손에게 이를 물려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결정하였다.

물론 이상과 같은 대법원의 재항고심 결정은 지금까지 ‘환경’과 ‘개발’에 대한 대법원의 태도를 미루어볼 때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도롱뇽 소송’을 제기했던 지율 역시 대법원에서 승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상했던 바와 같이 대법원은 ‘환경’과 ‘개발’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전혀 바꾸지 않았다. 헌법상의 기본권이 구체적 권리가 아니라는 점과 준거법주의에 경도되어 신청인이 ‘도롱뇽’을 원고로 내세운 취지와 고뇌를 검토하거나 고민한 흔적조차 결정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단적인 증거이다.

일본 ‘아마미의 야생토끼 소송’과 우리나라의 ‘도롱뇽 소송’

▲ 지율스님은 천성산과 도롱뇽을 살리기 위해 3차례나 단식투쟁을 벌였다. 사진은 2004년 8월 단식 때의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러나 일본에서는 2001년 1월 22일 국가의 천연기념물인 ‘아마미의 야생토끼 소송’ 판결이 있었다.

가고시마 지방법원은 비록 소를 각하하였지만, 판결이유에서 “자연이 인간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생각을 계속해도 좋을지는 국민의 지혜를 모아 검토하여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판시해 ‘자연의 권리’의 인정 필요성에 대한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자세야말로 소송을 제기한 사람에 대한 배려이자 법리의 발전 가능성을 열어두는 법원의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도롱뇽 소송’은 일반 국민들로 하여금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 환경의식을 고취시켜, 우리나라 현행 법령과 소송제도의 한계를 법정에서 부각시키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본다. 물론 천성산 보호를 위해 지율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의 결과치고는 하찮은 성과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도롱뇽의 친구들’은 이번 소송을 의회-행정기관-법원 등 책임있는 국가기관이 환경보호를 위한 현행 국가 법령의 문제점과 소송제도가 가진 결함을 진지하게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환경보호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법령을 정비하고, 소송제도의 개선을 이루어내기 위해 일종의 기획소송으로 제기했던 것이다. ‘도롱뇽 소송’에 환경법 전문가로서 법률자문에 참여하였던 필자 역시 그러한 입장이었다.

결국 2년 8개월을 끈 ‘도롱뇽 소송’이나 이전의 새만금 소송에서도 대법원은 연이어 ‘개발주의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올해는 임기가 끝나는 대법관 5명이 새로이 교체된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권’이나 ‘환경’에 보수적인 법원의 기존 시각이 조만간에 바뀔 가능성은 여전히 낮아 보인다. 여기에 환경단체들의 고민이 있는 것이다.

법원은 환경보호의 마지막 보루가 될 수 없다

▲ 2004년 11월 5일 과천 환경부 앞 1인시위를 마친 지율 스님이 ‘도롱뇽의 친구들’과 함께 수놓은 작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 도롱뇽소송시민행동

지금까지 환경단체들은 법원을 ‘환경보호를 위한 마지막 보루’로 생각하여 적극적으로 환경소송을 제기해왔다. 하지만 ‘환경’에 대한 법원의 보수적인 인식과 그에 따른 환경단체들의 잇따른 좌절은 환경보호를 위한 법원의 기능에 의문을 제기하게 되고, 환경보호를 위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60~70년대에 있었던 미국의 사례는 우리나라 환경단체에 좋은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1960년 후반부터 그동안의 개발의 악영향으로 환경보호의 중요성이 크게 대두되었다. 이에 환경단체들은 연방 헌법의 환경 관련 조항의 해석을 통하여 재판상 권리를 승인받고자 노력하였다. 그러한 노력은 보수적인 법원으로부터 거부되었고, 연방 헌법을 수정하려는 제안도 국가의 현실과 사회 상황 아래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환경권 제창자들과 국민은 또다시 국가환경정책법(NEPA)의 제정을 통해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려 하였다. 물론 이 법률이 제정되어 국가가 각종 정책을 결정할 때에 환경 요소를 고려하도록 국가에 다양한 책무를 부여하고, 허가관청이 의무적으로 환경영향평가서(EIS)를 작성하게 함으로써 제정 초기에는 이 법률의 제정이 환경보호주의자들의 승리, 환경을 위한 권리장전(Magna Carta)이라고 기뻐하였다.

하지만 법률 제정 당시의 정치 현실과 기업 측의 강한 로비에 밀려 그 내용이 국가의 단순한 정책선언과 도의적·정치적 책무를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는 해석론이 나올 정도로 그 내용이 추상적·불확정적 개념을 내포하고 있었다.

또한 이 법률을 통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확인받고자 했던 여러 시도가 보수적인 판사 앞에서는 이 법이 한낱 ‘이빨빠진 호랑이’라는 사실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쾌적한 환경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연방에서 주로, 주법원에서 주 의회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러한 운동들이 결실을 맺은 것이 바로 미국의 여러 주가 주 헌법으로 환경권보호를 규정하게 되고, 그것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다양한 환경보호법을 제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미국인들은 어떻게 그들의 환경권리를 지켜냈나

▲ 21일 오후 1시경 15년만에 새만금 방조제 공사가 완공됐다. 이날 농림부는 제1공구(가력도 부근) 1.6km의 개방 구간 중 마지막 남은 500m 구간을 연결함으로써 끝 물막이 공사를 모두 마쳤다. 사진은 방조제로 모두 연결된 가력도 부근 모습.

ⓒ 전북도청 제공

이러한 노력으로 연방의 많은 환경법과 주 환경법이 제정되었으며, 이들 법률에는 시민소송제도(citizen’s suit)가 규정되어 있다. 시민소송제도는 연방이나 주, 사업자 등의 환경파괴행위에 대하여 누구나가 소송을 제기하여 법 위반을 다툴 수가 있다. 그리고 이들 법률에서는 피해자의 입증책임을 크게 완화하고 있다.

더구나 미국 법원은 원고적격을 대폭 완화하여 ‘하이킹할 권리’ ‘낚시할 권리’ ‘산책할 권리 등 경제적 이익이 아닌 심미적 이익을 침해받은 사람도 ‘사실상의 이익(injury in fact)’이 침해 되었다고 하여 원고적격을 인정한다. 그리고 환경단체에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자격을 널리 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미국에서는 시민이나 환경단체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여 법제화하였으며, 특히 환경법의 입법과정에서도 이들은 아주 중요한 역할은 수행하였다. 미국의 법원 역시 이들 법률을 근거로 환경보호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각급 법원들은 연방이나 주 환경정책의 전환을 촉구하는 중요한 판결을 내리며, 이를 계기로 실제 법제도의 개정이 이루어진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개성이 강하고 확신에 찬 이들 판결은 미국의 환경보호사에 획을 긋는 중요한 구실을 하였으며, 이는 법원이나 법관이 환경보호와 관련하여 가져야 할 자세가 무엇이며 어떠한 구실을 하여야 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

이와 같은 미국의 사례는 우리나라 환경단체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좋은 시사점을 제공하리라 생각한다.

admin

정책·일반 관련자료의 최신글

댓글 남기기